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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선 Dec 12. 2017

하느님은 정의롭지 않았다,
리스본 지진과 인간의 이성

니콜라스 시라디, 『운명의 날』을 읽고 생각하는 한국사회


니콜라스 시라디, 강경이 옮김, 『운명의 날』, 에코의 서재, 2009.


모든 성인의 축일이던 1775년 11월 11일 만성절 아침, 리스본에는 세 차례의 지진과 해일, 그로 인한 화재가 발생하여 화려했던 이 도시는 폐허가 되고 말았다. 단 며칠 사이에 리스본 에서만 6만명 가량이 목숨을 잃었다. 물질적인 피해도 유럽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였다. 리스본은 여리고, 바빌론, 니네베, 소돔과 고모라 같은 성경 속 도시들에 비견되었다. 



지진이 발생한 시간은 교회의 신자들이 만성절을 맞아 경건하게 기도를 올리고 있던 시간이었다. 그래서 유럽인들은 집단적으로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 도대체 하느님이 신성한 계획 어디에 이런 재앙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자비로운 하느님이 무고한 사람들을 폐허에 깔려죽게 하고 성난 파도와 화마의 불길로 죽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신의 섭리로 세상이 질서있게 움직인다는 낙관주의는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볼테르, 칸트, 루소 등은 유럽 당대의 지식인들은 자애로운 신이 세상과 인간을 주관한다는 그동안의 생각에 의문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리스본 지진은 뿌리 깊은 종교적 통념의 권위를 뒤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하느님은 더 이상 정의롭지 않았고 자연은 더 이상 자비롭지 않았다. 독실한 성직자부터 계몽주의 철학자까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세계관을 다시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재앙은 참혹했지만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었다. 건전한 의심과 이성이 독단적인 종교 교리를 대신했으며, 하느님의 섭리로 주입된 체념적 삶은 인간의 주체적 삶에 자리를 내주었다. 


리스본 지진을 겪으면서 유럽인들은 재난관리는 인간의 몫이라는 점을 깨달게 되었다. 볼테르는 이렇게 말했다. “유럽은 서로 다른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자연 재해는 피할 수 없는 것이지만, 그것들 받아들이고 대응하는 방식에서 그 사회가 가진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자연의 재앙은 참혹하지만 잠들어 있던 인간의 이성을 깨어나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재앙을 겪어야 그 이성이 사후에 발동된다는 점이 우리 인간들의 한계이지만 말이다. 지진에 대한 불안과 공포가 늘어나는 가운데서도 고리 5, 6호기 원자력발전소를 계속 건설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리스본 지진이 각성시켰던 인간의 이성을 오늘 우리는 제대로 작동시키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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