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릇푸릇에 시작하여 알록달록에 끝냅니다
마지막 날이 안 올 줄 알았다. 프로그램 이수 수료증과 함께 [‘나만의 동화책 만들기’베스트 작가상] 상장, 미션 성공 선물을 받을 때까지만 해도 실감 나지 않았다.
마지막 뒤풀이 때도 늘 그랬듯 즐겁기 얘기를 나누었고, 또다시 이렇게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눌 것만 같았다.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을 흘리는 분들을 보아도 여전히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러다 새벽 5시에 터져버렸다. 잠에서 깨자 파도처럼 아쉬움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다시 월요일에 모여 텃밭 교육을 받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것만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일요일이 되면 두 달간 정들었던 집을 떠나고, 함께 좋은 추억을 만들었던 분들과도 안녕해야 됐다.
홈커밍데이를 기대하며 모두와 헤어졌지만, 언제가 될지도 모르고, 어쩌면 앞으로 남은 평생 동안에 다시는 못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슬픔이 밀려왔다.
시골 살이를 하며 여러 체험에 참여했다. 텃밭 가꾸기, 모시떡/칼국수/청국장/고추장 만들기, 마을구경, 명소구경, 음악회, 풍물놀이 등 다양한 경험을 함께 하며 추억을 쌓았다.
이 중에서 제일 기억에 남는 활동은 아마 다 함께 땀을 흘렸던 텃밭 가꾸기이지 않을까. 9월에 처음 고구마 캐기를 할 때에는 기온이 30도가 넘어갔지만, 10월 마지막 마늘과 양파를 심을 때에는 시원한 가을 날씨가 되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모두가 땀을 흘리며 서툴지만 묵묵히 각자의 역할을 해내는 모습이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그려진다.
처음에는 서로에게 경계심도 있고, 낯가림도 있었지만 함께 고생하고 맛있는 것을 나눠 먹으며 금세 가까워질 수 있었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와 개성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모였지만, 서로에게 선생님 호칭을 사용하며 배려한 덕분이 세대차이, 성격차이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요리를 못하는 나에게 손수 만든 반찬들을 바리바리 싸주셨던 밝은 에너지를 가지신 선생님은 참 오래도록 생각날 것 같다.
젊어서 돈을 많이 벌어도 나이 들면 결국 병원비에 다 쓴다며 미리 관리할 수 있을 때 관리하자는 마인드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폭염에도 매일 만보 걷기를 하시는 애주가 선생님도 잊지 못할 것 같다. 제일 나이가 있으셨지만, 세대차이를 전혀 느낄 수 없을 만큼 편안하게 다가와 주면서 선을 잘 지키셨던 선생님.
시조와 창을 전문으로 하셨던 선생님 덕분에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었다. 예쁜 한복을 빌려 입고, 아리랑과 뱃노래, 변강쇠 타령 공연을 하게 되었다.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는 내가 할머님들 앞에서 우스꽝스러운 연기를 하고, 재미있어하는 할머님들의 반응에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이런 것도 할 수 있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되었고,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평생 이런 추억을 쌓을 수 없었을 텐데 음악회를 추진해 주어 감사하다.
어른스러운 성격을 가진 20대에게 배울 점이 많았다고 마지막 소감을 말씀해 주신 선생님. 체험을 하며 이야기를 깊게 나누지는 못했지만, 항상 남을 배려해 주며 마을 할머님들과도 잘 어울리고 착한 마음을 가지신 선생님도 많이 그리울 것 같다. 더 이야기를 나누지 못해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정식 프로그램 참여자는 아니었지만 누구보다 솔선수범하며 일을 해주신 선생님. 쑥스러우면서 조심스러운 말로 사람들에게 다가갔고, 묵묵히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해주신 선생님의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아빠와 동갑이신 분이었는데, 아빠와는 달리 활동적으로 “뭐든 시켜만 주세요”라는 마인드로 일을 다 해내시는 모습에서 큰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프로그램을 기획해 주신 대표님과 사무국장님에게도 감사하다. 도시와 시골의 다리 역할을 하며, 도시에서 온 사람들이 시골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잘 마련해 주셨다. 동네 어르신들과도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중간에서 자리를 잘 마련해 주셨고, 할머님들에게도 애교 있게 굴며 참가자분들을 예쁘게 봐달라고 하셨다. 20대이신 사무국장님도 젊은 사람들이 시골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세대 간의 다리 역할을 하며 20대부터 60대까지 모두 감동받고 즐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두 달뿐이었지만, 이 분들을 만나게 된 건 정말 큰 복이라고 생각한다.
이외에도 항상 웃는 모습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신 마을 이장님과 소고기와 송이버섯을 몰래 챙겨주신 이웃 어르신, 수줍은 미소와 흥이 넘치는 할머님들, ‘인사만 잘해도 먹을 게 생긴다’ 뭐라도 챙겨주고 싶어 자꾸 손에 먹을 것을 쥐어주신 어르신들, 곧 떠나는 우리에게 손수 저녁상을 차려주신 경로당 할머님들까지 모두 잊을 수 없다.
도시보다 정적일 줄 알았던 시골은 그 어느 곳보다 활발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나에게 주었다.
“오길 잘했다”
“정말 오길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