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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카 Oct 25. 2018

선인장이 레고처럼 가족을 만드는 이유

혼자보다는 함께를 선택한 선인장의 생존전략



지난 3월, 작고 귀여운 선인장 하나를 방 안에 두고 키우기 시작했다. 이름은 귀면각 선인장.

내가 아는 보통의 선인장들은 거의 변화가 없고, 아주 조금씩 자라는데 우리 집에 온 이 아기 선인장은 조금 달랐다. 마침 봄이 왔고, 봄기운에 맞춰 폭풍성장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딱 맞춰 우리 집에 온 것이다.


6월이 되자 키가 훌쩍 커졌다. 키만 커졌다. 성장기 청소년처럼 온몸의 살집이 모두 키로만 가서 가운데가 홀쭉해졌다. 햇빛이 부족해서 웃자라는 건가? 왜 이렇게 키만 커져서 아슬아슬하게, 못생겨지다니...

물을 주면 다시 통통해지리라 생각하고 하루 동안 저면관수로 물에 담가 두었다.


홀쭉해진 귀면각 선인장
저면관수로 물을 준 날 (2018.6.24)
물을 주고 난 뒤  24일 후 (2018.7.18)


헐렁하게 비워진 자리에 아기 선인장들이 통통하게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고, 왜 키만 훌쩍 크느라 잠시 못생겨졌는지를 알게 되었다. 잠깐 못생겨진 그 모습은 아기 선인장들을 나오게 하기 위해 넉넉한 자리를 만들고, 활동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이제는 어엿한 가족이 된 (2018.10.23)


혼자 있으면 편한데,

왜 식물은 힘든 에너지를 써가며

가족을 만들까?


식물과 동물을 비교했을 때 확연히 다른 점은 바로, 몸의 구조가 레고처럼 모듈 Modularity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이다. 레고 블록처럼 반복되는 모듈(뿌리, 잎, 줄기, 가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부분을 잃어도 죽지 않고 살아나간다. 그래서 반복되는 모듈을 더 많이 만드는 것이다. 조그만 레고 블록이 점점 많이 모이면 튼튼한 집도 만들 수 있듯이.


 가지치기를 하면 더 많은 가지가 나오는 것처럼, 어떨 땐 일부분을 잃는 것이 몸을 더 크게 만드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식물은 몸의 90~95%를 잃어도 생명에 지장이 없다. 그래서 식물은 '한 마리의 동물'보다는 '벌떼나 개미떼와 같은 군집'으로 묘사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군집을 이루어 집단지성을 발휘하는 것 같은 아주 전략적인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Illustration by kimpaca



자연을 깊이 들여다보면 모든 것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Look deep into nature, and then you'll understand everything better.

- 알버트 아인슈타인 Albert Einstein



아인슈타인이 그랬듯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면 우리 스스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좋은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작은 화분에서 자라는 식물만 봐도 바뀐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는지, 아픈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새로운 것은 어떻게 나오는지, 어떻게 성장하는지.. 와 같은 작고 느린 변화들을 보며 감정이입을 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하니까.


선인장의 시간은 정말 느리게 간다. 하나의 아기 선인장이 더 많은 가족을 늘리려고 하는 이 짧고도 긴 시간은 최소한 두 계절은 묵묵히 견뎌야 한다. 함께하기 위한 과정은 비록 못생겨지고 힘이 들지만, 선인장이 혼자보다 함께하는 걸 선택한 이유. 함께여야 잘 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Illustration by kimpaca




참고도서 : 스테파노 만쿠소 & 알레산드라 비올라, <매혹하는 식물의 뇌>, 행성 B,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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