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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파카 Feb 26. 2019

식물들은 자기 삶을 살고, 나는 내 삶을 산다

식물과 함께하면서 그들에게 배운 이야기


식물을 키우기 위해 해야 할 일들

그들은 참 조용하고 말이 없다. ‘이것 좀 해줘, 이것도 좀 부탁해!’라고 말해주면 식물 키우는 게 꽤나 쉬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를 지켜보고만 있다. 나는 그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줘야 한다. 그들 역시 이번 생은 화분에 담긴 인생이라 좀 탐탁지 않아도 어쩔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수동적인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다.


예를 들면, 내가 그늘진 곳에 두면 그들은 줄기 마디를 더 길게 늘여서 햇빛이 있는 곳을 찾아간다. 물을 잘 안 주면 공중의 습도를 찾아 흙 속에만 있던 뿌리가 줄기 사이사이로 비집고 나오기도 한다. 화분 사이즈에 맞춰 몸집의 사이즈를 늘리는 속도를 조절하고, 새싹이 나고 꽃을 피울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외부환경에 따라 성공할 확률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하면 그때부턴 에너지를 아낀다. 꽃을 피우지 않는다는 건 때가 안 맞았다는 거다. 내가 그들이 꽃을 피우게 ‘도울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인 것이다.


그들과 소통하는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하다. 집 안에 식물이 있으면 할 일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분명 얻는 것도 있다. 사람마다 얻는 것은 다 달라서 ‘식물을 키우면 이런 게 좋아’라는 정답은 없다. 식물의 공기정화기능을 원하는 사람은 그걸 얻을 것이고, 싱그러운 분위기를 원하는 사람은 그걸 얻는다. 나는 처음엔 식물이 주는 초록 초록함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특히 하얀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있으면 공간의 기분이 좋았다. 꼬물꼬물 새 잎이 나는 걸 보는 것도 재밌고, 어느 날 미묘한 변화를 눈치챘을 때는 뭔가 말하지 않아도 통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내가 가진 공간에서 제일 볕 좋은 자리를 내어줬다




식물들은 자기 삶을 살고, 나는 내 삶을 산다

길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들레는 나의 도움 없이도 매년 꽃을 피운다. 민들레가 까다롭게 아무데서나 자라지 못하고 희귀하다면 사람들은 비싼 돈을 내고서라도 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얼마나 척박한 환경이던 상관없이 알아서 뿌리를 내리기 때문에, 사람의 도움 없이도 잘 자라기만 한다.


민들레는 자기 삶을 살고, 나는 내 삶을 산다.


내가 누군가에게 선택받지 못해서 스스로 어딘가에 뿌리를 내려야 한다면, 민들레처럼 살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어떻게 보면 제멋대로 사는 그런 삶. 민들레뿐 아니라 모든 식물들의 일생을 보면, 우리의 삶과 비슷하다는 걸 느끼기도 한다. 뿌리가 나고 잎이 자라지만 아무도 어떻게 그러는 건지, 왜 그러는지 잘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씨앗과 같다. 언젠가는 죽고, 설령 어떤 봄에 꽃을 피우지 못했다고 해도 꽃은 꽃이다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하다.


누구든지 새로운 환경은 낯설다. 식물도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식물은 우리 인생의 대선배

그들은 말이 없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리보다 훨씬 더 지혜롭게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산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볼수록 나만의 기준을 찾아갈 수 있듯이, 다양한 식물을 접해보고 관찰해보면 보는 눈이 생긴다. 식물과 빨리 잘 지내는 꿀팁 같은 건 없다. 그들과 친해지려면 천천히 보내는 시간이 필요하고, 꽃을 피우는 걸 보기 위해서도 느린 시간이 필요하다. 지구 상에서 인간보다 몇 억 년 전부터 살아남은 인생 대선배로서 그들이 느린 삶의 방식을 선택한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느린 시간이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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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도서

-로버트 풀검,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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