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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ul 01. 2021

낙상, 무너짐의 시작

넘어짐, 그것은 곧 삶의 무너짐

"어쩌다 이렇게 되었어요?" 그녀의 얼굴이 어딘가에 부딪혀 멍이 들어있다.

"오줌 누고 휴지 찾으러 일어나다가 넘어져 서랍장에 부딪혔어요."

"휴지가 없으면 말지, 그걸 찾으러 일어나다 또 넘어져요?!!"

"오줌 누고 안 닦으면 안 되잖아요."
"맙소사, 아무러면 넘어져 다치는 것보다 그게 중요해요??!!!"


아무리 수없이 말해야 소용이 없다. 

어떻게 하든지 넘어지지 않으며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도 그때뿐이다.

눈이 안 보이는 그녀는 늘 하던 대로 옷걸이에 가지런히 걸린 옷을 또 새로 정리해 걸어야 하고, 퇴근하는 스텝들에게 일어나 일일이 인사를 해야 하고, 밥 먹으려고 하는 우리에게 걸어와서 밥 잘 먹으라고 인사를 하려고 한다. 아무리 그러지 말라고 말려도 계속되는 그녀의 어쩔수없는 모습이다.

그런 그녀를 나는 늘 조마조마하면서 바라봐야 하고,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고 생각되는 순간 그녀는 또다시 균형을 잃고 넘어진다.




최근 두 달 사이 세 번째 낙상이다.

첫 번째는 아래층에서조차 소리가 크게 들릴만큼 엉덩방아를 찧었었다.

당연히 한쪽 엉덩이가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하지만 걷기도, 앉았다가 일어나기도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러지진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이걸 어쩐다??

그녀가 못 움직이고 많이 아파하면 당연히 구급차를 불러 병원 응급실로 보내야 하지만 광범위하게 멍이 든 정도라 응급실까지는 보내지 않고 urgent care로 데리고 갔다.

urgent care는 예약 없이 진료받을 수 있는 1차 진료시설이다.

그곳에서 두 시간을 기다려 찍은 엑스레이 결과는 '골절 없음, 광범위 엉덩이의 멍'으로 진단받았다.


그 엉덩이의 푸른색 멍이 많이 나아 노란빛으로 바뀌었을 즈음 그녀는 또다시 넘어졌다.

이번에는 발등이다. 

아마도 코모도에서 소변을 보고 일어나다 균형을 잃고 넘어지면서 발을 접질린 것 같았다.

이번에도 발등에 시퍼런 멍이 들었다.

하는 수없이 주치의에게 연락해 상황을 설명하고 엑스레이 오더를 받았다.

이번에는 발이라 urgent care까지도 못 가고 mobile X-ray를 불렀다.

이번에도 결과는 no fracture다.

금이 가거나 부러지지는 않았지만 접질린 부위가 붓고 멍이 많이 들었다.

불편한 한쪽 발 때문에 그녀가 움직이고 싶어 할 때마다 달려가 붙들어줘야 한다. 

계단? 계단은 당연히 stair lift를 사용해야한다.


발을 접질린 지 두 주도 지나지 않아 또 넘어졌다. 발등의 멍도 어느 정도 없어지고 걸음걸이가 괜찮아지면서 또다시 방심을 한 것이다. 

이번에는 얼굴이다.

넘어지면서 얼굴을 근처의 서랍장에 부딪혔나 보다.

한쪽 뺨이 부풀어 오르고 한쪽 눈 주의에 피멍이 들었다.

이번에도 크게 아파하거나 어지럼증 등 다른 이상 증상이 없지만 가장 중요한 머리 부분이다.

곧장 ER로 보낼까 고민하다가 다시 한번 urgent care 신세를 져보기로 한다.

그렇게 간 urgent care 의사는 눈 주위의 피멍을 유심히 보더니 안구 뒤의 출혈이 있을지 모르니 병원 응급실에 가서 CT를 찍어보란다. 


그렇게 그녀를 구급차에 태워 지역의 종합병원으로 보냈다.

그리고 네 시간만에 그녀를 다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번에도 no fracture다.


도대체 그녀의 문제는 무엇일까?

60이 막 지난 그녀는 이십 대 때 큰 교통사고로 시신경을 잃고 균형 감각을 잃었다.

희뿌옇게 형체만 구분할 뿐 내 앞에 놓인 음식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그녀는 부족한 시각정보를 다른 감각기관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특히 청각정보)로 보완해서 자신이 본다고 생각한다. 그녀가 자신 있게 자신이 보고 있는 듯이 말하는 것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가 '본다'는 것은 사실은 '눈'이 아니라 우리의 '뇌'가 하는 일임을 절감한다.

문제는 보인다고 생각하는 그녀가 보통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현관문을 열면 일어나 다가가 인사해야하고, (그녀 왈, 외출하는 사람에게 당연히 인사를 해야지요!!)

밥을 먹고나면 걷는 운동을 하고싶어한다.(그녀왈, 밥을 먹었으니 운동을 해야 살이 안찌지요.!!)

그리고 그런 그녀의 바람은 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지는 사고로 이어진다.


그녀의 균형감각 문제가 뇌손상 때문인지 그녀의 신경 문제인지 아니면 걷는 습관 때문인지 알지 못한다.

어쩌면 그 모든 것들의 작용으로 인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이유야 어떻든 그녀는 마치 무용수들이 걷는 것처럼 가슴을 쭉 펴고 일자로 걷는다. 약간 한쪽으로 기운채.

일자로 걷는 것은 보통 사람들도 쉽지 않은 일인데 그녀는 위태롭게 일자 걸음을 고수한다.

그리고 돌아서야 할 때 휙 하고 돌아서다 쉽게 쿵하고 넘어진다.

아무리 어깨넓이로 두 발을 벌리고 걸어야하고, 방향을 틀어야 할 때는 천천히 걸으면서 돌아야 한다고 말해도 행동수정이 되지 않는다. 

아니, 다 그만두고 제발 "워커를 사용하세요" 라고 말해도 그때뿐이다.


그런 그녀의 낙상은 필연적이다.

아픈 한쪽 발이 그나마의 균형을 흐트러뜨려 또 넘어지게 만들었듯이 악화가 악화를 불러올 것이다.

그녀가 일자 걸음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녀가 적극적으로 워커 사용을 마음먹지 않는 한,

그녀가 자신이 실제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처럼 느끼는 것이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

그녀가 여전히 자신이 혼자서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

그녀의 낙상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마치 시지프스처럼 자신의 운명을 되풀이하면서...


낙상은 마지막 내리막길의 첫 관문이다. 

그 관문은 가능한 한 늦게 들어서는 것이 답이다.

그녀가 부디 과거의 습관과 생각을 내려놓고 지금 현재의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나 역시 다시 한번 그녀의 서비스 플랜을 재검토해봐야겠다.

피검사와 필요한 검사를 통해 그녀의 기본적 건강상태를 점검해야 할것같다. 

혹시 낙상을 유발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것은 아닌지 알아봐야할것같다.

응급실을 다녀왔으니 다시 주치의에게 진료를 받고 그녀의 약도 재점검 해야 할 듯하다.

혹시 어지럼증 같은 증상을 유발하는 약은 없는지, 그런 약은 다른 약으로 바꿀 수는 없는지.

하지만 내가 해야할 가장 중요한 것은 낙상이 발생하는 위험한 환경 요인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코모도를 침대 더 가까이 가져다주고, 휴지도 그 옆에 두도록 하고, 비틀거리면서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재조정해줄 생각이다. 

무엇보다 그녀가 아무리 받아들이기 어려워하고 안되더라도 계속 알아듣도록 이야기해주어야 한다.

그게 내가 그녀를 도울 마지막 방법들이다. 

부디 다음 낙상까지는 충분하다고 느껴질만큼의 시간적 간격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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