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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un 08. 2021

오늘도 Another Beautiful Day!

아름다운 하루를 만들기로 마음먹다.

위층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할머니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소리이다.

서둘러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옷을 입는다. 침대에서 조금 뭉그적거리다 보면 벌써 십분, 십오 분이 지나있다.

할머니방에서 기척이 있기 전에 일어나 먼저 해야 할 일들을 하기 시작한다.

할머니로인해 나의 일상이 조금 바뀌었다. 조금더 일찍 하루를 시작하고 더 늦게 하루를 마감한다.

이젠 7시 30분, 할머니를 깨울 시간이다.

다양한 병력을 가지고 있으나 아직 멘털은 괜찮으신 할머니의 케어는 내가 담당한다.

보청기, 틀니, 녹내장 안약, 얼굴단장 등 세심하고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케어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할머니, 굿모닝!! 잘 주무셨어요?"

창문의 블라인드를 쫙~ 올리며 건네는 내 인사에 단잠이 묻어있는 웃음을 짓는 할머니.

그러면서 노래처럼 읊조리는 할머니의 멋진 아침 인사.


" Another beautiful day!!"

 



지난 한 달간 어떤 분보다도 조심스럽게 그리고 세심하게 할머니를 보살펴야 했다.

무려 18가지의 약을 드시고 가슴에 심장박동기를 달고 계신 분.

내가 보살폈던 어떤 분보다도 드라마틱한 삶을 사셨던 분.

어느 한 이슈만 제외하고는 "모든 삶은 다 드라마"라고 담담히 웃을 수 있는 분.

그 한 문제조차 "할머니, 이젠 그것조차도 다 내려놓으세요. 자녀들에게 맡겨버리세요."라고 말하는 나에게 "그래야 할까?" 하면서 내 눈을 쳐다보시는 분.



할머니는 돌아가신 우리 엄마와 같은 나이이다. 

엄마처럼 자그마한 체구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것도 비슷하다. 

20 초반의 나이에 전도양양한 청년을 만나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루고 멋진 청장년기를 보낸 것도 닮았다.

그 멋진 남편으로 인해 화려한 젊은 날을 보냈다가, 또다시 그 남편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된 것도 유사하다.

우리 엄마와 다른 점이 있다면 엄마는 중년에 닥친 고난을 이겨내지 못하고 너무 일찍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면 할머니는 한동안 코마 상태로 자신의 자아를 놔버렸을지언정 끝내 살아남았다는 사실이다.


살아남은 할머니는 삶의 순례길에서 조금은 낯설지만 친근한 환경에서 새로운 일상을 마주하고 있다.

자신을 깨우는 누군가의 도움으로 일어나 틀니를 닦아 끼우고, 잠옷을 벗고 오늘 입을 옷을 고른다.

세안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며 부어오른 눈두덩이를 어루만지고 물기를 꼼꼼히 닦아낸다.

그런 할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내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과 할머니 자신이 보는 거울 속 모습이 다를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날. 

거울앞에서 숱 없는 머리카락을 빗질 해주는 나에게 할머니가 묻는다. 

"내 머리 위쪽에 아직도 머리카락이 많아?

"음~  아직 많아요. 왜요??'

"흉하면 위그(가발)라도 사다가 뒤집어 써보게. 히히히.."

"하하하.. 안 그래도 할머니는 아직도 이뻐요. 하하하"




나의 친정엄마에게는 없었던 노년의 삶이 할머니에게는 선물처럼 주어졌다.

더없이 총명하고 예뻤던 젊은 날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작은 일상도 남에게 의존해야 하는 주름진 모습의 시간이다.

차를 운전하고 비행기를 타던 삶의 행동반경은 네 바퀴 보행기에 의존해야 하는 제한된 삶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노년의 삶이 주는 기쁨과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듯하다.

저녁나절, 마주한 뒷마당 화톳불의 너울거리는 불꽃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회한을 불태울 수 있는 시간.

뒷마당 귀퉁이에 토끼가 낳아놓은 어린것들을 위해 뒷마당 나들이를 양보하는 너그러움이 있는 시간.

아침인사를 나누는 동료 레지던트들에게 웃음을 전할줄아는 친밀함이 있는 시간.

무엇보다도 오늘 새로 시작되는 하루를 "another beautiful day!!"로 맞아들일 줄 아는 지혜의 시간들이다.

맞닥뜨린 삶의 파고에서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나 되찾은 삶의 마지막에 누리는 숯불 같은 시간이다.

더 이상 활활 타오르지 않아도, 장작을 휘감는 열기와 불꽃으로 빛나지 않아도 뭉근히 잦아드는 시간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우리 엄마의 못다한 시간까지 누리셨으면 좋겠다.

아직까지 내려놓지 못하는 그 무엇도 이제는 부디 놓아버리셨으면 좋겠다.


아침 햇살처럼 고운 미소와 함께 맞아들인  오늘 하루.

오늘은 할머니의  "Another Beautiful Day"이다.


초여름 Patapsco State Park 의 아름다운 어느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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