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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Jul 08. 2021

나는 너무 다른 사람과 산다.

이 시점에 파티라니!!

동네 이웃들 단톡방에 앞집 럭키네에서의 파티 공지가 떴다.

4th of July, 미 독립기념일 축하 파티!! 라지만 사실은 이런저런 이유로 연휴를 집에서 보내기로 한 동네 사람들 몇몇이 모여 맥주 한잔 하는 파티이다.

이번에도 나는 집을 지키고 남편만 가기로 했다. 

그렇게 뚤레뚤레 앞집으로 건너갔던 남편이 두 시간이 넘어 얼큰해져 돌아왔다.

이런 황당한 소식을 가지고...


" 오늘은 버드네, 타드네, 럭키네만 모였더라, 모두 우리랑 친한 사람들이잖아, 그래서 다음 주엔 우리 집에서 파티하기로 했어."

"무어엇??,,, 지금 뭐래는 거야???,,, 지금 정신 있어???,,, 이 상황에 우리 집에서 파트락 파티라고??? "


남편이 제대로 사고를 쳤다.

우리 집에 한국사람들도 아닌 동네 미국 사람들을 초대한 거다.

평소 오다가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들이 모인 데다가 기분 좋게 마신 알코올 탓일 수도 있었다.

가끔 동네 파티에 다녀올 때면 언젠가는 우리 집에도 초대를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은 늘 하고 있었다.

하지만 파티야말로 우리의 영어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느끼게 해 주었고 그들과의 격의 없는, 농담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가 되지 않으면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막연히 '올해 말고 내년쯤'으로 매년 미루며 준비 안된 탓을 해오고 있었던 거다.


"내가 다음 주 토요일 우리 집 어떠냐고 묻자 다들 스케줄 보더니 OK 하더라고."

"그러면 초대하는데 어느 누가 안된다고 하겠어?? 어휴, 정말!!"

"근데 소주는 꼭 준비해달라고 그러던데?."

"소주고 뭣이고, 지금 수습이 안되네. 나한테 물어라도 봤어야지!!"

"그러네, 내가 생각이 없었네, 젠장."


어이가 없었다.

왜 어이가 없냐고?, 그동안 미루고 미루던 초대를 지른 건데 내가 너무 화내는 것 아니냐고?

아니다. 지금 우리 집은 비상상황이다.

스텝 두 분이 바로 그다음 주부터 한국 여행을 가서 한 달간 휴가이다.

이를테면 토요일 늦은 시간까지 파티를 갖고 바로 다음날부터 우리 둘은 케어 일과 주방일로 뛰어다녀야 할 판인 거다.

두 분의 공백이 여전히 다른 분들로 채워지지 않은 상황에서 가뜩이나 심란한 나에게 더 심란한 일거리를 안겼으니 할 말이 없어진 남편은 화난 나를 피해 일찌감치 잠자리로 도망을 간다.




나와 남편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충분한 정보를 갖고, 충분히 생각해보고 할 말과 할 일을 생각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상당히 즉각적이다.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그 즉시 행동으로 옮긴다. 

내가 판단하느라 꾸물거리는 동안 남편은 이미 판단을 끝내고 행동에 돌입한다.

성공률? 살면서 보니 반반이다. 절반은 그의 빠른 판단이 옳았고 절반은 나의 신중함이 옳았다.


융의 유형론에 따르면 남편은 프로메테우스적 기질에 가깝고 나는 에피메테우스적 기질에 가깝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만물이 창조될 당시 프로메테우스와 에피메테우스는 모든 사물에 그 능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맡았다. 좀 모자라고 생각하는 게 굼뜬 에피메테우스는 모든 동물에게 각각의 재능과 능력을 부여하였는데 그러다 보니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인간에게는 부여해줄 재능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다. 답답해진 에피메테우스는 형 프로메테우스에게 하소연했고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주었다. 인간은 이 불을 다룰 줄 아는 능력으로 인해 다른 동물을 압도하고 번성하게 되었다.

제우스는 자신의 뜻에 반해 인간에게 불을 사용할 능력을 준 프로메테우스를 괘씸히 여겨 코카서스의 산에 붙잡아 메어놓고 독수리가 그 간을 파 먹게 만들었다. 또한 제우스는 최초의 여자인 판도라를 만들어 에피메테우스에게 주었는데 형 프로메테우스는 아우 에피메테우스에게 제우스와 그 선물인 판도라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에피메테우스는 형의 충고를 무시하고 아름다운 판도라를 자신의 부인으로 삼았다. 당시 에피 메티우스의 집에는 만물에게 재능을 부여하고 남은, 필요 없는 것, 온갖 나쁜 것 들을 담아놓은 상자가 있었는데 하루는 판도라가 그 상자를 열어 버리고 말았다. 상자 안에서는 인간의 불행을 가져올 모든 나쁜 것들이 밖으로 튀어나왔고 그때부터 인간의 모든 질병, 불행 따위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상자에 남은 것은 단 하나, "희망"이었다. ( 출처: 위키백과 )]


제우스에게 거스르면서까지 인간에게 문명을 가르쳐주고 '불'을 훔쳐다준 프로메테우스에게는 "알아내야 한다, 할 수 있어야 한다."가  삶의 모토다. 

프로메테우스적 기질의 남편에게 요즘 가장 중요한 일은 집 지하실 리모델링이다.

그 혼자서 한다. 남편이 핸디맨 또는 건축업자의 경력이 있느냐고? 

아니, 전혀 없다. 그동안 닭장 짓고 울타리 고치고 고장 난 곳 직접 고치던 실력밖에 없다.

하지만 그에게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있다. 유투버들과 홈디포의 직원들이다. 

남편은 그들로부터 배우기를 좋아하고 그렇게 '알게 된 지식과 기술'로 지하실 리모델링에 도전한다.

돈 벌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아니면 절대 나서지 않는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그다.

적당한 업자를 찾아 맡겨서 '얼른 끝내버리자'고하는 나와 충돌하는 부분이다.


반면 에피메테우스에게는 "해야 한다와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모토가 삶을 지배한다.

에피메테우스는 판도라와 함께 극심한 고통을 겪었지만 결코 그녀를 포기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는 훌륭한 분별력을 가지고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여, 이제는 온 세상에 퍼진 이러한 재앙들에 대항하는 방패로서 그를 안내해 줄 "해야 하는 것'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을 추구한다. ( 출처: 나의 모습 나의 얼굴, David Keirsey. Marilyn Bates, 김정택. 심혜숙. 임승환 역, 어세스타 편)


나는 성인이 된 아이들의 울타리가 되어야 하고, 나에게 맡겨진 어르신들의 보호자가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남편에게는 신실한 배우자가 되어야 하고 노쇠한 시부모에게는 부양자가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늘 '해야 할 바'가 넘쳐나는 나는 판도라가 쏟아내 버린 삶의 고통 속에 헉헉거리면서도 판도라(운명)를 끌어안고 상자 속에 남아있던 '희망( 나아질 거야 )'을 붙잡고 있다. 

이런 나에게 파티라는 '현재적 삶의 즐거움과 기쁨'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얻기 어려운 삶의 순간이다.




동네 파티는 직관에 의존하는 남편의 순간적 판단이었다.

그동안 몇 차례 미루어왔고, 마침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이 다 모였고, 자신의  Grill 굽기 솜씨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던 거다. 그답다.

하지만 나는 아니다. 앞으로 한 달간 체력을 낭비하면 안 되는 나에겐 부담되는 일일뿐이다.

영화 미나리와 살인의 추억을 보았고, 소주를 마셔보고 싶고, 같은 나이 또래의 이방인과 어울리고 싶어 하는 그들은 그저 대접해야 할 손님들일 뿐으로 여겨진다. 나다운 반응이다.

( 언제쯤이면 나는 "해야 할 바"를 버리고 삶을 즐길 수 있게 될까?? 가능할까?? )


우리의 삶의 모토가 어떠하든 우리가 함께 한지 거의 40년이 되어간다.

그 시간 동안 너무 다른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상대방의 너무 다른 기질을 이해하기 시작하자 서로의 다른 행동이 조금씩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도대체가 생각이 있냐, 없냐??"에서 "어쩌자고 그런 대형 사고를 치냐?"로 내 목소리의 옥타브가 낮아졌다.

"나를 왜 그렇게 이해를 못해주냐?"에서 "흠, 내가 한 가지만 생각했네. 어쩐다지?"로 그의 반응도 달라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소주와 막걸리 맛을 제대로 보여주자."로 우리의 다름이 어느새 하나로 모두어졌다.

이번 주 토요일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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