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강 Aug 24. 2021

온라인 결혼식

코로나 상황 속에서  딸이 결혼을 했다.

하얀 원피스를 입은 내 딸 곁에 양복을 입은 예비사위가 서있다.

더운 날씨 탓에 지나치다 싶게 틀어놓은 에어컨에도 사위는 땀을 흘리고 있다. 사위가 더위를 많이 타는 탓도 있겠지만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깨끗하고 심플하게 인테리어가 되어있는 에어비앤비 숙소의 거실엔 커다란 티브이 모니터가 벽면에 설치되어있고 두 사람은 그 모니터를 바라보고 서있다.

잠시 뒤 모니터에 시청 혼인신고 담당 직원이 나오면서 결혼 선서식은 시작된다.

넉넉하게 생긴 흑인 여성 담당관이 아침인사를 하며 신랑 신부의 긴장을 풀어준다.

곧이어 두 사람 본인 확인을 한 뒤 신랑 신부 각자에게 "나 누구는 상대방 누구를 배우자로 맞아.."로 시작되는 선서를 따라 하게 한다. 

마주 보고 서있는 두 사람은 주저함 없이 "my husband, my wife.."로 상대방을 지칭하며 서로를 법적인 배우자로 선언하고 받아들인다. 

둘의 서약이 끝나자 담당관은 둘의 결혼이 성립되었음을 우리들을 바라보며 선포한다.

그렇게 10여분의 온라인 결혼식으로  두 사람은 워싱턴 DC에서 합법적인 부부로 맺어졌다.

내 큰 아이가 결혼을 한 것이다.




처음 계획은 올 가을에 결혼식을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작년 3월 약혼후 뚜렷하게 나아지지 않는 코로나로 올해 결혼은 일찌감치 물 건너갔다고 판단했다.

하는 수없이 사회적 결혼예식은 내년으로 미루고 법적 혼인 신고식을 먼저 갖기로 한 거다. 

그것도 온라인으로.

 

"엄마 아빠, 그날 시간을 내 실수 있을까?"

"????? 너희들 온라인으로 한다며? 그 시간에 엄마 아빠가 온라인 조인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

"휴우~~, 그럴 계획이었는데, J네 엄마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네. 온라인으로 해도 우리는 DC에 있어야 해서 에어비엔비를 잡아야 하고, 숙소를 잡을 거면 양쪽 가족 모두 참석해서 축하해야 한다고.."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집을 비울 수 없는 상황이라 온라인 결혼 선서식을 은근히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마침 레지던트 중 한 분의 딸이 같은 방식으로 결혼하는 것을 보면서 15분 정도의 초스피드 결혼식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다. 어차피 정식 결혼식에 앞서 하는 법적인 절차아니겠는가??


"그럼, 시간 내야지. 어떻게든 참석할 수 있도록 할 테니 걱정 마."

이때부터 우리는 온라인 결혼 선서식 참석 비상대책을 고심하기 시작했다.

임시직원에게 그날 함께 자리를 지켜줄 친구를 찾아봐달라고 부탁해놓고 아들은 근무 일정을 조정했다.

"딸, 엄마 아빠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니?"

"엄마는 치마 입으면 어떨까?, 아빠는 아무 양복이나 입으면 될 것 같고요. 나는 흰색 원피스를 입을 거예요."

온라인 결혼식이라고 건성으로 생각했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공사로 엉망진창인 지하층 한구석에 쌓아놓은 옷상자를 뒤져 두어 벌의 옷을 찾았다.

남편은 그런대로 재작년에 입던 양복이 맞았지만 코로나로 외출할 일이 없었던 나는 맞는 옷이 없었다.

겨우 뱃살이 조금 가려지는 옷을 하나 찾아 입고 우리는 집을 나섰다.

아참, 그래도 꽃다발은 하나 있어야겠지?

꽃다발조차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가 집을 나서며 근처 그로서리에서 두 다발을 샀다.


에어비앤비에 마련된 온라인 결혼식장은 신랑 신부의 준비와 신랑 어머니의 손길로 예쁘게 꾸며져 있었다. 

한아름이나 되는 큰 화병이 두 개나 놓여있고 한편에는 케이크와 마들렌 같은 간식과 음료가 준비되어있었다. 결혼 당사자들이 전날부터 묵으며 준비한 것이다.

작년 약혼식 이후 만나는 사위 가족들과 마스크를 쓴 채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서로 축하를 해주었다.

우리도 첫 결혼식이지만 그 집도 형과 누나를 젖히고 막내인 사위가 치르는 첫 결혼식이다.

딸을 결혼시키는 나보다 아들을 결혼시키는 안사돈이 더 들떠있었다.

안사돈은 아이들이 혼인서약을 하고 반지를 나눠 끼고 케이크를 자르는 모든 순간들을 셀폰으로 찍느라 분주했다. 그녀의 들뜸과 분주함이 너무나 단출한 혼인서약식을 유쾌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내 자녀의 첫 결혼식을 상상도 못 했던 방식으로 치렀다.

비록 온라인으로 하는 공식적, 법적 초간단 혼인서약식이지만 아이들은 거쳐야 할 과정은 다 거쳤다.

양쪽 부모 집에서 하룻밤씩 묵으며 부모에게서 듣고 싶은 덕담을 청해 들었고 서로의 가족을 받아들였다.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의 주인공과 주체는 아이들이었다. 우리들은 그저 결혼식에 초대된 손님들이었다.

부모인 우리들이 한 것이 있다면 한 곳에 모여 축하해주기위해 한시간 거리의 DC에 모였다는것과 꽃다발뿐이었다.


되돌이켜 생각해보니 결혼하는 딸의 엄마로서 내가 너무 무심했다. 겨우 시간내어 참석만 했을뿐 친정엄마로서 걸맞는 마음씀과 도움을 주지못했다. 온라인이라는 낯선 방식과 아이들이 주도하는 상황에서 내 역할을 못찾았던것같은데 이것도 변화된 시대상인걸까? 아니면 나의 무심함 때문일까?

아니 어쩌면 너무나 독립적인 아이들덕에 부모로서 해야할바를(부모인 내가 갖는 관점에서) 찾고 그 역할을 위해 시간과 정성을 쏟지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내년 결혼식에서는 아이들에게 줄 선물을 고민하고, 예식에서 하게될 스피치를 생각하고, 딸의 웨딩드레스와 내가 입을 옷을 고르며 '딸의 결혼식'을 함께 준비하다보면 '딸을 시집보내는' 특별한 감정이 들지않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위 가족들과 음식점에서 식사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오며 새삼 실감을 한다.

내 딸이 장성해서 자신의 가족을 이루었다는 사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 딸의 가족도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또 살아갈 것이라는 사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은 온라인으로 결혼을 하는 낯선 세상에서 가족을 이끌고 살아가야 할 것이라는 사실.


이민을 오면서 내 성을 버리고 남편 성을 따랐던 나와는 달리 결혼하면서도 자신의 성을 그대로 간직한 딸.

부디 자신의 가족을 잘 가꾸어가길 바란다. 

그 가족 속에서 한 인간으로 더 성장하며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 가족이 이 세상을 조금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데 참여하며 살아가길 바란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너무 다른 사람과 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