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며 미국고등학교에 적응하다.

미국 고등학교 방과 후 운동 이야기

by 유강




운동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아들은 베컴 같은 멋진 운동선수가 되고 싶었다.
미국 와서 처음 잡아보는 라크로스 스틱도 쉽게 익숙해질 수 있었고,
축구는 성당 어린이 축구부에서부터 다져진 실력으로
쉽게 미국 아이들과 어울릴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축구나 라크로스 같은 팀 운동은,
영어와 미국 문화에 낯선 아들이 친구들을 사귀고 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좋은 의사소통 채널이 되어주었고,
새로운 삶의 필드가 되어주었다.
아들은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면서 미국에 점점 적응해나갔다.



한국과 미국의 고등학교를 비교할 때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방과 후 활동이다.

모든 학과 공부가 오후 3시면 끝나는데 방과 후 활동은 그 이후에 이루어진다.

미식축구, 라크로스, 축구, 농구, 야구, 테니스 같은 스포츠와 밴드, 코로스, 오케스트라 같은 음악활동, 그리고 연극, 아트 같은 예술활동, 그리고 디베이트 같은 프로그램들.

아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적성에 맞게 학기별로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학과 공부만큼 열심히 참여한다.

그리고 그런 가운데 진짜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탐색하고 경험해나간다.


아들은 운동경기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았고 팀 경기 속에서 친구들과 격의 없이 소통하고 어울렸다.

미국에서 중학교 7학년부터 시작한 아들은 어느 날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낯선 운동을 발견했다.

운동복과 헬멧은 미식축구와 비슷한데 납작한 작은 검은색 볼과 스틱으로 무장한 선수들의 과격한 플레이는 순식간에 아들의 마음을 사로잡은듯했다.

라크로스였다.


여름방학중 지역 내의 라크로스 클럽활동에 조인을 하면서 처음 스틱을 잡아보았다.

미국 아이들의 경우 어려서부터 지역사회에 있는 클럽활동을 통해 운동을 처음 시작한다.

여름이면 공원 이곳저곳에서 유치원생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훈련과 팀 경기를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코치들 중에는 학교 코치들도 많다. 자연스럽게 아이들과 코치들이 몇년전부터 서로를 알고 배우고 가르치며 학년이 올라간다.

그런 미국 아이들 틈에서 어설프게 그물망이 달린 스틱을 휘두르던 아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주니어 발시디팀에 들어갔다. 주니어 발시디는 고 9-10학년들 중심으로 팀이 꾸려져 훈련을 하고 경기를 한다.

하고 싶다는 욕망과 해내겠다는 열의가, 어려서부터 훈련된 미국 아이들과 어깨를 맞대고 경기할 수 있을 만큼 뛰게 만들었나 보다.


하지만 라크로스와 달리 축구는 어린 소년의 꿈이었다.

어렸을 때 성당 어린이 축구부에서 뛰었던 경험과 늘 운동장에서 차던 축구공이니 쉽게 적응할 수 있는 종목이기도 했을 터였다.

아들은 축구를 자신의 진로로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스포츠는 학기 초반에 어느 정도 훈련이 되고 나면 다른 학교 팀들과 경기를 한다.

홈경기도 하지만 away경기도 한다. 경기 관람은 자녀들을 서포트하는 중요한 이벤트이다.

아이들은 관중석의 환호와 박수소리에 용기를 내어 열심히 달린다. 어떤 부모는 간식을 만들어 가지고 와서 주변의 부모들에게 나누어주고 같이 먹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서둘러 퇴근을 하고 옷도 못 갈아입은 채 자녀를 격려하러 온 모습들이다. 나 역시 운동장 관람석에 앉아 여름날의 땡볕을 무릅쓰고 열심히 달리고 있는 아들을 목청껏 응원한다.

아들이 공을 받아 멋지게 패스하는 모습도 흐뭇하지만 중간의 쉬는 시간에 동료들과 게토레이를 마시며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더 미덥고 흐뭇하다.

아들이 잘 적응해나가고 있다는 소리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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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들은 서점에서 베컴 자서전을 샀다. 축구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한 아이는 베컴처럼 되고 싶었다.

많은 축구 소년들의 꿈이 그렇듯이.

하지만 Junior Varsity, Varsity를 거치며 자신보다 잘하고 주목받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에 용기가 꺾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라크로스팀의 코치는 열심히 하려고 하는 아들을 지지하고 격려하는 행운이 있었지만, 축구팀의 코치는 그렇지 않았다. 실력대로 경기에 투입하고 평가했다.

결정적으로, 학기 초반에 발목 부상을 입는 큰 불운까지 겹쳤다.

그렇게 축구의 꿈은 현실에서 멀어져 갔다.

하지만 베컴 같은 축구선수가 되고 싶었던 야무진 꿈은 사라졌어도, 또 다른 꿈을 찾아 나서려는 용기와 의지는 어느새 베컴을 닮아가고 있었다.




아들은 라크로스를 하면서, 축구를 하면서 소년에서 청년으로 자라나 갔다.

아니, 운동이 있었기에 어느 날 시작된 미국의 낯선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증조할머니, 이모할머니, 친할아버지 할머니 등 네 명의 조부모와 함께 살며 응석받이로 컸던 아들이었다.

그런 아들은 더 이상 아무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는 낯선 이방인에서, 미국 아이들과 함께 공을 차고 스틱을 휘두르는 가운데, 그들 가운데에 있는 자신의 존재를 새롭게 찾아갈 수 있었던 것 같다.


축구와 라크로스는 그런 자신의 언어였으리라.
인종도, 영어 발음도 상관없이 열심히 뛰고 또 뛰면 되었으니까.
멋진 경기를 해내는 자신을 확인하고 동료들과 함께 있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방과 후, 운동장에서 열심히 뛴 뒤 땀에 절은 채, 친구들과 밖으로 나오는 아들의 모습은 여느 미국 고등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그런 결과였을까.

아들은 학교생활을 재미있어하고 잘해나갔다.

어떤 때는 학생회에 출마하기도 했고 어떤 때는 프롬 파티 전, 인기투표에서 일등을 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아들은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소년으로, 청년으로 자라나 갔다.

타인을 생각할 줄 아는 것, 생각할 힘이 있다는 것,

그것은 아이가 그만큼 자신의 문제를 넘어 성장했다는 표시 아니겠는가.

운동도, 재즈밴드 활동도, 공부도 열심히 한 아들은 그렇게 자라서 청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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