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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Aug 13. 2020

패닉으로 죽진 않아. 다만 힘들 뿐.

'죽을 것 같은'증상으로  입원하다.

두 달여에 걸친 감당 못할 스트레스 상황이었다. 
가까스로 버텨내며 꾸려 가고 있던 차에 결정적 한방을 먹었다. 
헤져나갈 방법이 없어 보였다. 완전한 함정에 빠진 느낌이었다.
그때 패닉이 덮쳤다. 패닉은 분명하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왔고 나는 병원 입원과
부인(Denial)을 거쳐 결국 패닉임을 받아들였다.


마지막 펀치를 맞은 날 아침, 나는 '죽을 것만 같은' 느낌 속에 쓰러졌다. 그냥 그대로 죽는구나 싶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가족들이  몇 가지 바이탈 싸인을 체크했는데  내 혈압이 무려 196이었다.

뭐가 잘못된 게 아닌가 싶어 두세 번을 다시 쟀다. 그대로였다.

황급히 전화로 주치의에게 연락해 증상을 이야기하니  무조건 응급실로 가란다.

신분증만 챙겨 서둘러 지역 종합병원 응급실로 갔다. 

앰뷸런스를 타지 않았는데도 혈압이 높으니 우선적으로 치료를 해준다.

무엇보다 높은 혈압을 낮추기 위해 혈압 떨어지는 약을 주사한다.

무슨 약인지 주사를 맞자마자 식은땀이 나고 정말 더 죽을 것 같다. 

더 이상 응급실내의 대기의자에 앉아있지를 못하고 늘어져버리자 서둘러 나를 응급실 침대로 옮겨 눕힌다.


응급실 의사가 뇌혈관에 문제가 있을 것으로 진단하고 뇌 MRI를 찍는다. 

놀랍게도 오른쪽 귀 뒤의 혈관이 찢어져서 뇌수술을 해야 한단다.

큰 병원인 존스홉킨스 병원으로 옮길 거란다. 그곳 병상이 확보되는 대로. 

나는 "아, 이렇게 죽음이 찾아오는구나..."라고 생각한다.

드디어 모든 게 끝나는구나 싶으면서도 이상하게 마음은 차분해진다. 

옆에 서있는 남편과 아들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은 표정이다.


침대에 누운 채 나는 내가 정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남길 말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며 새벽을 맞는다.

뇌출혈치고는 통증도, 의식의 혼미함도 없다. 그냥 평온하다. 죽음에 임박하면 이런가? 하고 잠시 생각한다.

그들은 새벽녘에 나를 다시 검사실로 데려간다. MRI보다 더 정확한 CT를 찍겠단다.

 

하지만 CT 스캔 후 의사가 멋쩍어하며 나타나 핏줄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알려온다. 

뭔가로 가려져서 사진을 잘못 봤대나 뭐래나.

한순간에 삶을 다시 돌려받는다. 하룻밤 사이 죽음의 경계에 넘어갔다 왔더니 내가 한참 커버린 기분이다.

어쨌든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닌가 보다.

 

병원에서는 뇌출혈이나 심장 문제가 아니니 그냥 혈압 변동만 규칙적으로 모니터링하는 것 같다.

그렇게 이틀을 입원하고 퇴원했다. 정식 진단명은 그냥 고혈압. 알 수 없는 이유로 혈압이 급상승했단다.

검사 결과, 혈압 외에는 다른 이상이 없으니 먹던 혈압약을 다른 걸로 바꾸고 용량을 두배로 올리란다.


이때까지도 나의 문제는 그냥 고혈압이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혈압이 오른 거지? 핏줄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닌 거라면? 

심장에 문제가 있는 걸까? 심전도상으로도 문제가 없다고 했으니 심장도 아닌 것 같고.

게다가 '죽을 것 같은'그 느낌은 뭐였던 거지?


응급실에서 의사와 간호사들이 증세가 어떤지 번갈아가면서 묻는데 내 대답은 그저 "죽을 것 같다"였다.

옆에 있는 아들이 "어떻게 죽을 것 같은지를 설명하라"라고 채근하지만 난 그말외에는 다른 증세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저 죽을 것 같은 느낌. 가슴이 뻐근하게 아프고 극심하게 어지럽지만 그것만으로는 '죽을 것 같은' 그 특이한 느낌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나에게는 심장병의 가족력이 있다. 친정엄마가 고혈압이셨는데 평소 고혈압을 등한시한 채 지내시다가 50이 채 안된 나이에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나는 나의 이런 가족력과 최근 들어 이어진 스트레스 상황이 나의 혈압을 갑작스럽게 올렸을 것이라 추측했다. 

어쩌면 강도 높은 스트레스로 일시적 협심증이 온 것이 아닐까? 

인터넷으로 찾아본 협심증의 증상도 정확하게 내 증상과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어느 정도 비슷한 면도 없지 않았다. 가장 유사한 것은 '죽을 것 같은 느낌'과 증상이 있다가는 얼마 뒤에는 그 증상이 사라진다는 거다.

"그래, 아마도 심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친구 언니도 갑자기 죽을 것 같아서 응급실에 갔더니 협심증이라고 했다잖아... " 

나는 스스로를 협심증으로 진단하고 있었다. 십여 년간 혈압약을 먹었으니 개연성은 충분히 있었다.


이렇게 나의 '죽을 것 같은 느낌'은 한동안 협심증이 되어갔다. 아니, 협심증 이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까지 내 주변에서 고혈압이나 심장병은 있었어도 패닉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패닉이란 나 같은 일반인이 아닌 유명인이나 아니면 일반인이라도 뭔가 심리적 외상이 있는 사람들에게나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패닉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막연하고 불안한 자가 진단 속에 어느 순간, 언젠가 한국의 의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심장에 이상이 없다면 패닉일 가능성이 있다."라고 했던 말. 

불현듯 모든 퍼즐이 맞추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패닉 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나는 이제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싸들고 주치의를 만나러 갔다.

그리고 친절한 주치의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며 패닉일 것 같다고 진단해주었다. 

그러면서 처방해준 약, Sertraline 25mg.

패닉은 불안증의 일종이라며 어떻게든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노력하란다.

아니, 최소한 스트레스를 줄여보라고 걱정해준다.


주치의의 처방전을 멍하니 들여다보며 나는 만감이 교차함을 느낀다.

내가 공황장애라니...

살아오면서 나를 지탱시켰던 '강인한'나는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건가?

그만큼 힘들었던 걸까? 나아질 수 있는 건가? 혈압약처럼 이 약하고도 평생 같이 가야 하는 건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면 받아들여야 하겠지..."라고 중얼거리며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른다.


그렇게  나는 패닉이라는 불청객을 공식적으로 내 인생에 맞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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