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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Dec 21. 2020

이민 1.5세의 결혼에대해

이민의 경험을 이해할수있는 '그대'를 찾기를.

결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삶의 경험을 가진 두 남녀가 사랑을 하고 결혼이라는 제도속으로 들어가려고할때는 차원이 다른 문제가 발생한다. 

같은 나라에서, 동시대를 살아온 청춘들도 그럴진대 성장기에 '이민'이라는 좀 특별한 경험을 갖게된 이민 1.5세대 청춘들은 결혼에 앞서 '나는 누구인가, 내가 결혼하고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그와 나는(또는 나나 상대방은) 이민자로서의 삶을 잘 통합하고있는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자신들의 인종적, 민족적, 사회문화적 특성을 이해하고 이해하려는 적극적 자세가 있을때 그들은 사랑을 더 키워나가고 관계를 더 성숙시켜나갈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어떤 이유에서건 그런 노력에 어려움이 있을때 두사람은 보통의 경우보다 더 많은 장애에 부딪칠 가능성이 커진다.




아들의 고등학교 친구 중에 엄마와 둘이 사는 친구가 있었다.

같은 축구부 멤버여서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오는 중에 몇 번 마주친 아이의 엄마는 40 중반의 차분한 사람이었다. 이민 초반의 어리버리한 나에 비해 그녀는 모든 게 노련했고 무엇보다 영어가 능숙했다.

어느 날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잠시 나눈 대화를 통해 그녀가 남편과 이혼을 하고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이민 1.5세였다. 한국말도 영어도 익숙한 경계인.

십대 때 부모를 따라 이민을 온 그녀는 중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고 대학에서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한국에서 유학을 온 사람이었다. 한국말이 능숙한 그녀는 남편과 쉽게 사귈 수 있었고 늘 마음속에 고향으로 남아있는 한국 출신의 청년은 충분히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결혼을 했다.

하지만 결혼은 사랑만으로는 유지되지 못했다. 

미국 대학을 나온 남편은 아내 못지않게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중 언어자가 되었지만 늘 두고 온 한국을 그리워했고 낯선 미국의 삶을 힘들어했다. 유학생으로서의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삶은 버전 자체가 다르다.

남편을 사랑한 그녀는 큰 결심을 했다. 남편이 원하는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한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이 힘들었다. 영어를 가르치는 직업과 아내와 엄마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녀는 한국에서의 자신은 뭔가가 맞지 않는다는 느낌 속에서 살아야 했다.

그녀는 특히 대단위 아파트 단지에서의 외로운 삶이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몇년뒤 그녀는 아들만 데리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던 그녀는 "지금은 좋아요. 하는 일도 만족스럽고 아들과의 삶도 행복해요."라고 말했다.




시골에 살 때였다.

어느 분이 아들을 장가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군에 입대해 복무한 뒤 커뮤니티 칼리지를 조금 다니다가 한국에 영어교사로 나가 있었다. 거기서 아가씨를 소개받았다고 했다.

청년은 미처 대학을 졸업하지 못한데 반해 아가씨는 한국에서 대학원까지 다닌 사람이었다.

나는 그들의 결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는 모른다. 다만 단편적인 사실 몇 개만으로도 조금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몇 개월 뒤, 우려는 현실이 되어 그들은 헤어지게 되었다. 그것도 아가씨가 야반도주하듯이 남편을 떠나갔다고 들었다. 남편과 가족은 그녀가 " 공부 많이 했다고 시어머니를 깔보았던 못된 며느리"라고 말했고 아가씨는 남편과 시댁 식구들로부터 abuse 당했다고 말했다.

남편은 한국 아가씨이면 신붓감으로 무조건 괜찮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는 대학원을 나왔으니 미국에 가면 더 공부를 해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무슨 생각으로 결혼을 결정했든 성장배경이 전혀 다른 그들은 '결혼이란 나에게 무엇인가'를 심사숙고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한 선배님에게는 두 딸이 있다.

그녀들 역시 이민 1.5세이다. 집에서는 부모와 한국말을 사용하고 학교와 직장에서는 영어를 사용하는 이중 언어자들이다. 그들 중 언니는 베트남계 미국인과, 동생은 인도계 미국인과 결혼했다.

우리 부부는 동생이 결혼할 때 초대받아 갔었다. 

신랑 신부가 다녔던 대학의 한 홀에서 치러진 결혼식에는 두 가지 음식이 마련되어있었다.

하나는 한국음식, 또 하나는 인도음식. 

개량한복을 입고 간 우리들처럼 한쪽엔 한국문화를 드러내는 한국사람들이, 한쪽엔 사리를 입고 인도 문화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그들의 결혼을 축하하고 있었다. 

한국과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선배님의 사위들은 한국계인 아내들의 문화에 익숙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고 들었다. 선배님의 딸들 역시 다른 인종의 시부모들과 잘 적응해가고 있다고 들었다. 조금 차이가 있다면 인도계 사돈들보다는 베트남계 사돈들이 더 편하고 익숙한 정도라고 하셨다. 아마도 우리 문화와의 이질성 정도의 차이일 것 같다. 두딸들은 내 예상과는 달리 인종적 차이가 무색하게 서로에게 동화되어 잘 지내고있다.


이들에겐 인종적 배경의 차이보다 이민 1.5세(또는 2세)라는 동질성이 더 강하게 작용하는 것은 아닐까?

다른 인종적, 문화적, 역사적 배경을 가졌지만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확장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동질성 말이다. 

어쩌면 그 동질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인종적 차이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공통성'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아이들도 결혼 적령기에 있고 큰아이는 대만계 미국 청년과 약혼을 했다. 

둘도 이민 1.5세로서 동질성을 갖는다.

1세대 부모가 모국어를 사용하고 가족을 중요시하는 문화를 갖고있으며, 이민과정중 갖게된 강한 성취동기와 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과 자부심이라는 가장 큰 공통성을 갖는다. 


반면 차이는 무지하게 많을것같다. 개인적 성격부터 선호, 가치, 경험, 관계, 가족의 역사등에 이르기까지.

일례로 역사적 경험에의해 우리와 딸은 일본에대해 비우호적 감정을 가지고있는데반해 대만출신인 청년의 가족은 우호적 감정을 가지고있고, 그들이 중국에대해 비우호적 감정을 갖는데반해 우리는 상대적으로 우호적 감정을 갖는 차이가 있다. 


이런 우리들의 공통성과 차이점을 가지고 아이들은 자신들 정체성의 밑그림을 그렸다. 

한국계 미국인 또는 대만계 미국인으로서말이다.

 

"결혼은 두말할 필요 없이 인륜지대사이다. 두 사람의 결혼은 판이한 두 집안의 만남이다. 서로 자신들의 독특한 성장배경을 갖고 다른 환경 안으로 들어가는 거다."라고 말하는 것은 모든 결혼에 해당되는 말이겠다.


여기에 덧붙여 이민 1세대로서 나는 내 아이들이 이민 1.5세대로서의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과정을 먼저 잘 이해하기를 바란다. 평생 함께 하고싶은 누군가를 자신의 삶에 초대하기전에. 

동시에 어릴 때는 한국인이었고, 지금은 한국계 미국인이 되어 한국의 정서와 문화 위에 미국의 문화를 함께 가지고 있는 자신의 독특성을 이해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찾기를 바란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 같다. 

오죽하면 그 가능성을 높히기위해 결혼적령기 자녀들을 한국교회나 성당으로 등떠밀어 보내겠나..

그래도 어쩌겠는가, 사랑외에도 서로의 독특한 삶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수있는 그런 사람을 찾으라고 기회있을때마다 입아프게 말하고 또 말하는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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