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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Dec 29. 2020

우리 모두를 위해 cheers!!!

삶은 본질적으로 축하할 일.

1. 이민 온 지 십몇년만에 집 밖 크리스마스 라이트 장식을 했다.


미국에 와서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가 크리스마스와 연말 집 라이트 장식이었다.

추수감사절이 끝나고 12월에 접어들면 동네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라이트 장식을 하기 시작한다.

집 지붕선을 따라 형형색색 라이트 등이 반짝이고 집 앞마당에는 사슴 모양, 썰매 모양의 라이트 모형이 놓여있고, 나무 위에 주렁주렁 커다란 색 전구가 달리기도 한다.

처음 삼 년 정도는 아파트에 살아서이기도 했지만 거실에 크리스마스트리 정도면 족하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아파트여도 작은 베란다를 또는 현관문을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채우는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그럴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한겨울이면 이른 저녁을 먹고 온 가족이 미니밴에 올라타고 동네 한 바퀴를 드라이브하는 것이 이민 초창기의 소박한 여가 중의 하나였다.

그때 보았던 화려한 라이트 장식들과 분위기는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이다.


15년이 지난 올해. 

남편은 작년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반값에 파는 라이트를 미리 사놓았었다.

드디어 우리도 실내용 장식이 아니라 집 밖의 장식을 시도하기로 한 거다.

유난히 찬바람이 매섭던 어느 날 남편은 길이가 다른 사다리 두 개를 가지고 혼자서 라이트를 달고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뚝딱뚝딱 집 수리일을 하는 사람이라 그러려니하고 쳐다보는데 아무래도 혼자서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하는 수없이 외투를 찾아 입고 밖으로 나가 돕기로 한다.

혼자 힘에 부치던 차에 일손을 보태니 훨씬 수월한가 보다.

집 모서리에서부터 시작해 지붕으로 선을 올리고, 지붕 처마선을 타고 끝까지 연결하고 다시 벽 모서리로 선을 내려 콘센트에 꽂는다. 때마침 어두움이 내리기 시작하던 즈음.

야아!!! 형형색색의 불빛이라니!!! 1959년생 집이 동화 속 집으로 순식간에 변했다.

그동안 미처 준비를 못해서, 미처 마음의 여유를 못 내서 하지 못했던 호사를 누린다.

그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빌미로 '지금의 삶'을 이렇게 예쁘게 변하게 할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2. 삶을 축하하는 마음은 너그러운 마음을, 너그러운 마음은 나눔을 하게 만든다.


한 동네에 살아서, 올 한 해 '더불어' 잘 살아올 수 있어서 감사한 이웃들에게 그런 마음을 전했다.

우리가 준비한 선물은 다름 아닌 우리 집 닭들이 낳은 달걀들!

두어 주 전부터 매일 낳는 7-8개 알들을 18개들이 팩에 담으니 나눠줄 만큼이 모아졌다.

우선 옆집 헤일리네는 매주 일요일 달걀은 직접 와서 가져가게 했으니 특별히 챙겨주지 않아도 이미 매주 선물하고 있는 셈이고, 앞집 올가네 집, 그 옆집 마이클네와 또 그 옆집, 미미네 집, 나탈리네 집, 메어리네 집, 버드네 집, 그리고 길 건너 크리스네 집(크리스네 손녀가 울타리 넘어 집 나갔던 닭을 잡아서 보내준 적이 있다.)에 전해주었다.

식료품점에서 올개닉으로 사면 4-5불이면 살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것들을 매일 모아 '주고 싶은 마음'은 돈으로 살 수 없다. 

그런 우리의 마음에 그들 역시 마음으로 화답한다.

헤일리네는 가족사진을 담은 크리스마스 카드와 쿠키를 보내주고, 마이클네에선 달콤한 캔디와 카드를, 미미는 작은 초콜릿 상자를, 버드네는 할라피뇨를 넣은 사과잼을 건네주고 간다.

어제저녁,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치는 저녁시간. 누군가가 벨을 눌러 나가 보니 나탈리네 네 식구가 와있다.

손에는 걸스카우트 쿠키를 담은 봉지와 eggnog 한 병을 들고, 그 비바람을 몽땅 맞으면서.

그 eggnog는 우리 집에서 준 달걀로 만든 거라는 카드가 붙어있다.

작은 뭔가를 나누는 마음은 그들이 내 이웃임을, 내가 그들의 이웃임을 느끼게 해 준다.

아참, 내년에는 앞집 존이 다시 직장을 찾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이웃들이 보내준 작은 선물들>


3. 한 해는 성탄을 축하하고 기념하면서 저물어간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그리고 끝은 다시 새로운 시작을 불러온다. 

그러니 그 끝을 축하하고 기념해야지!!

가장 밤이 긴 동지를 기준으로 다시 낮이 길어지기 시작하는 때가 바로 성탄절이다. 

예수님의 탄생은 새로운 시작을 알리며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왔다. 


매년 크리스마스엔 목사님 한 분을 모셔오고 간단하게나마 축하예배와 나눔을 했었는데 올해는 그조차도 어렵다. 하는 수없이 우리 스텝들이 진행하기로 하고 유튜브를 열심히 찾아 음악예배 하나를 찾아냈다.

사실 나는 가톨릭이다. 하지만 우리 집 어르신들이 거의 다 개신교인들이니 하는 수 없다.

사회는 내가 보기로 하고 시작 기도는 장로이신 선생님이, 마침 기도는 신앙심이 엄청난 안나 선생님이 맡기로 하고, 음악예배는 소망교회의 것을 선택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의 나름 영성 가득한 예배를 진행하는 동안 말기 치매로 가족조차 못 알아보시는 할머니 한분이 내손을 꼭 잡으신다. 아니 내가 잡아드린 손을 놓질 않고 잡고 계신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신다. 노래로 전해지는 성탄의 메시지를 이해하신 걸까? 

우리가 예배를 보는 동안 어쩌면 아기 예수님이 할머니 가슴에 찾아왔었는지도 모르겠다.


<온라인 음악예배를 보며 가졌던 성탄예배>




어처구니없지만 우리는 특별한 한 해를 보냈다.

처음 겪는 일들이라 당황스럽고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는 용케 코로나에 걸리지 않았고 잘 살아남았다.

그러면서 한 해의 마무리 즈음에  '지금 여기'가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지 새삼 깨닫는다.

신장기능이 2-30%밖에 남지 않았어도 여전히 먹고 자는 일상을 꾸려나가고 있다는 것이,

파킨슨이 점점 심해져도 여전히 몸을 움직이고 가족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

내년 크리스마스엔 가족들과 지낼 수 있을 거라는 소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모든 것을 넘어 우리 모두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감사하다.


지난 한 해 나는 남동생을 잃었고 시어머니가 치매 진단을 받으셨다.

딸이 약혼을 하고 직장을 잡았고 아들이 독립을 했다.

나는 브런치를 시작했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내 이야기를 통해 새롭게 거듭나고 있다.


삶은 그렇게 기쁨과 슬픔으로 짜여지며 지금도 흘러가고 있다. 

이 얼마나 엄혹한 사실인가!

그러니 이런 삶을 '지금 당장' 기념하고 축하하지 않을 수 없지않나!!!

그런 의미에서 "지난 한 해를 살아낸 우리를, 여러분 모두를 축하한다."


자, 우리 모두를 위해 cheers!!!


( 지난 한 해 어설픈 제 글을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무엇보다도 댓글로 서로 격려하고 위로했던 브런치 친구들에게 감사와 사랑을 보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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