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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강 May 08. 2021

백신 접종후 이루어진 가족방문

코비드 일 년의 공백으로 잊혀진 얼굴을 다시 기억할 수 있을까?

할머니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안녕하셨어요? 저의 어머니 잘 계시지요? 저희 식구들 모두 백신 2차 접종 마쳤습니다."

아드님은 인사말이 떨어지자마자 백신 2차 접종 결과를 알려온다.

이젠 방문할 수 있게되었다는 말이다.

나 역시도 망설일 필요가 없다. 

"그러셨군요. 잘하셨네요. 그러면 언제든지 방문하셔도 됩니다."라고 흔쾌히 대답해드린다.




할머니는 일찍 이혼한 아들과 손주들과 함께 살았다. 

할머니 역시 젊어서 혼자되어 하나 있는 아들을 아버지처럼, 남편처럼, 친구처럼 의지하며 사셨다.

며느리 대신 키운 손녀들이 성장해서 나가자 집에는 할머니와 아들만 남았다.

그렇게 할머니와 아들은 오랜 세월을 함께 살았다.

할머니의 치매를 더 이상 아들이 감당하기 어려워지기까지.


할머니가 우리 집에 입소할 때 가족들이 가장 걱정했던 것은 바로 아들과 함께 살았던 오랜 세월이었다.

할머니에게는 아들과 함께 산 집이 '우리 집'이었고 아들이 '나의 가족'이었다.

그 때문에 아들은 혹시 할머니가 따라나선다고 할까 봐 드러내 놓고 방문하는 것도 어려워했다.

할머니를 방문하더라도 손녀들과 함께 방문했다가 슬그머니 먼저 자리를 뜨곤 하셨다.

게다가 코비드 상황이 되자 그조차도 어려웠었다.

입소 후 두어 달 정도까지 누군가를 찾고, 저녁마다 "종로에 있는 우리 집에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지??" 하며 걱정스럽게 묻던 할머니의 기억도 점차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젠 더이상 '종로의 우리집'을 찾지않으신다.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이 지났다.

우리 집 어르신들은 모두 백신을 맞았고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1,2차를 맞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왔다.

이미 70대에 접어든 할머니의 아들도, 교사이거나 상담가인 할머니의 손녀들도 우선적으로 백신을 접종하고 있었던가보다.


가족 대부분이 1차를 맞고 난 후의 어느 날, 할머니의 가족들은 마스크를 쓰고 할머니를 방문했다.

쌀쌀한 봄 날씨에 할머니를 뒷 덱으로 내보내기는 조심스러웠지만 2차까지 맞지 않은 사람들이 섞여있는 그들을 집안으로 불러들일 수는 없었다.

세명의 손녀와 아기까지 여러 사람들에 둘러싸인 할머니는 반가워하며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 우리가 누구야??"

"응응,, 그래 그래,,"

할머니는 손녀의 물음에 대답을 잘 못하신다. 그들이 누군지 잘 모르시는 거다.

다시 한번 "할머니, 내가 누구야?"라고 손녀가 묻는다.

"응,, 내 친구.."

할머니는 그들이 누구인지 잘 모르지만 자신과 아주 가까운 사람들인 것만은 기억하고 있다.

자신들을 친구라고 하는 할머니를 손녀들은 "그래, 할머니 친구, 할머니 손녀 00야"라고 대답해준다.


그때 할머니 눈에 저만큼 떨어져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아들이 눈에 띄었다.

할머니는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손녀에게 나직이 묻는다. 

"저기 저 사람은 나하고 무슨 사이지??"

"????............"

순간 할머니를 둘러싼 손녀들도, 멀찍이서 어머니를 쳐다보고 있던 아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다.

"할머니, 우리 아빠잖아, 할머니 아들!!"

"아, 그렇구나."

하지만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이라고 일러주는 그 존재가 아직 누구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는듯하다.


일년 가까운 공백의 시간동안 애타게 찾던 '우리집', '내 아들'은 그렇게 서서이 잊혀져갔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손을 맞잡고 눈을 맞추며 함께 기억해나가야할 기억의 조각들이 떨어져나가버렸다.




이제 2차 백신까지 모두 접종한 가족들이 내일 Mother's Day를 맞아 할머니를 방문할 예정이다.

그들은 이제까지 얼굴의 반을 가렸던 마스크를 모두 벗고 올 것이다.

할머니 역시 어설프게 쓰고 계시던 마스크를 쓰지 않을 것이다.

모자와 선글라스에 마스크까지 쓰고 할머니에게 자신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못했던 아들도 선글라스와 마스크 없이 오실 것이다.


일 년 동안의 조각이 빠져버린 기억의 도미노는 내일 어떤 모습으로 이루어질까?

할머니는 끝내 아들을 아들로 기억하지 못할까?

손녀들이 친구로 바뀌었던 것처럼 아들도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져 있을까?

아들이 아들로 기억되지 않을 때 아들은 무슨 느낌으로 어머니를 대하게될까?

할머니가 그들을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들이 내 인생의 친구들'이었음을 기억하는 것만이라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할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일은 비도 오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는 따뜻한 봄날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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