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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천 Jul 22. 2021

3. 4년 7개월 만의 재회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 도쿄, 2014년 7월 22일

오전이었다. 이케부쿠로의 또 다른 '나카우' 지점에서 K 점장님과 재회했다.


오랜만에 재회한 것 치고는 허무할 정도로 별 말 없으셨지만, K 점장님께서도 꽤 반가우셨는지 주방 일이 조금이라도 한가해지면 수시로 카운터 석에 앉아 있던 나와 이야기하러 나오셨다. K 점장님을 만나기 위해 다른 지점 분들에게 물어물어 찾아왔다는 말에 진심으로 고마워하시고 기뻐해 주셔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일본에서 외국인이 방을 구하기 위해서는 일본 현지인의 보증이 필요하다. 어학원을 졸업하면서 한국인 기숙사에서도 나올 예정이었던지라 급하게 방을 구해야 했던 나는, 많은 고민 끝에 어렵게 K 점장님께 부탁을 드렸었다. 부탁할 아는 일본 사람이 달리 없었다.


K 점장님께서는 생면부지의 외국인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나의 부탁을 들으시고는, 별 다른 말씀 없이 흔쾌히 그러겠다고 하셨다. 워낙 말수가 적은 분이라 부탁을 들어주시는 이유 같은 걸 구구절절 말씀해 주시지는 않으셨지만, 그간 성실하게 일했던 모습을 지켜보셨으니 믿을 수 있는 아이라 판단해주셨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 일정이 없던 날이라 그날은 K 점장님의 보증 약속만 받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낯선 나라에서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다.


4년 7개월 만의 재회는 냉우동 한 그릇과 짧은 대화 몇 마디로 끝났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또 다른 일터였던 '나나시 라멘'이 있던 자리엔 뭐 하는지 알 수 없는 다른 가게가 들어서 있었고, 가게의 흔적은 안내 간판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글자 자국밖에 없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돈코츠 라멘을 먹기 위해 점심도 간단히 먹고 배고픈 채로 찾아갔었는데. 가게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흩어졌을까.


요요기 공원에서 할 일 없이 멍하게 경치를 감상하며 직장 동료 M 씨와 카톡으로 회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팀은 여전히 어수선한 상태인 것 같았다. 사실 이젠 그만둬도 별 상관없는 기분이다. 팀과 나의 앞날보단 공원의 바람과 그늘에 정신이 더 팔려 있었다.


메이지 신사에서 여행운을 비는 부적을 샀다.

앞으로의 일본 여행도, 그리고 그다음의 여행에도 행운이 따르기를.


내일은 요코스카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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