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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천 Jul 26. 2021

4. 완벽한 10분을 위한 15시간

[파도의 섬, 안개의 숲] 야쿠시마, 2018년 6월 16일

꼬박 15시간을 걷고 지쳐 잠들었다가 다음날 쓰는 일기.


10시간 정도 걸린다는 죠몬스기 → 시라타니운스이쿄 트래킹 코스는 평소 별 하는 운동도 없이 하루 종일 모니터 앞에만 앉아 있던 허약한 직장인에게는 12시간도 넘게 걸리는 길이었다. 오랜만에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처럼 하루 종일 걸은 탓에 다리 근육이 비명을 질러댔다.


어쩌면 아슬아슬하게 마지막 버스를 탈 수도 있었던 날. 하지만, 다이코이와 위에서의 경치가 보고 싶어서, 그리고 애니메이션 <모노노케히메>의 배경이 되었던 이끼 숲을 보고 싶어서 숙소까지 3시간 정도 더 걸을 각오를 하고, 가려고 했던 맛집도 포기하고 버스를 보낸 채 일단 다이코이와로 오르는 길을 걸었다.

비가 와서 미끄럽기까지 한 제법 가파른 산길을 힘겹게 올라 도달한 다이코이와는 절경이라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곳이었다. 비수기인 데다 이미 대부분의 방문객은 하산한 시간이라 바위 위에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바람소리, 숲 소리, 빗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그리고 나 홀로 있었기에 들렸던 침묵.

이번 여행 중 가장 완벽한 10분이었다.

산복도로를 따라 3시간을 더 걸어 깜깜한 밤이 돼서야 숙소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자판기 콜라 한 캔 따겠다는 일념으로 버텼다. 너무 지친 탓에 콜라가 맛있는지 어떤지도 제대로 못 느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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