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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천 Jul 27. 2021

1.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러간다

[9288km] 부산, 2018년 7월 26일

내일 러시아로 떠난다. 김해 국제공항이랑 몇 정거장 떨어진 사상역 근처 숙소에서 일기를 쓰고 있다.


김해 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게 20만 원 이상 싸서 오랜만에 내려오게 된 부산은, 위쪽보다도 훨씬 더 무더워서 굉장히 힘들다. 러시아에 다녀오는 사이에 극장에서 내릴지도 몰라, 전포역 근처에 있는 서면 CGV에서 <미션 임파서블: 폴아웃>을 보고 왔다. 러시아에 제법 오래 있을 예정이다. 내일 떠나는 게 실감은 나지 않는다. 늘 그렇지만, 여행지에 도착해 낯선 풍경에 얼이 빠져야 비로소 일상에서 이탈했다는 걸 실감하겠지. 


이번 여행은 유난히 계획하는 데에 뜸을 들이고, 망설이고, 도망치려 했었던 것 같다. 오랜만의 제법 긴 여행이라 그럴까.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바이칼 호에 들렸다가 모스크바로 향한다. 우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해 바이칼 호가 있는 이르쿠츠크까지 갈 계획이다. 운 없으면 굉장히 불편하다는 2층 칸에서 자게 될 것 같아 기차표는 미리 예약을 했다. 혹시 몰라 모스크바를 제외한 곳의 숙소도 예약해두기는 했지만, 유연하지 않은 여행 플랜은 싫어하는데.


즐거운 B 플랜을 기대해본다. 기차 안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기를, 그리고 100일간의 배낭여행에서 얻었던 가르침인 '카르페디엠'과 '메멘토 모리'처럼, 먼 길을 떠나온 보람을 내 추억 속에, 인생 속에 새기기를.


횡단 열차 안에서 스코틀랜드 '웨스트 하이랜드 웨이' 트래킹 여행기를 적어보려고 몇 년 전의 일기장을 꺼내어보니, 100일간의 배낭여행을 떠나기 전의 나도 참 망설이고 있었다. 지금이 과연 여행을 갈 때인지, 이렇게 많은 돈을 써도 되는 건지. 어쩌면 그때의 나보다 많이 성장하지는 않은 것 같다. 솔직히 거의 그대로 인지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들였던 돈보다는 인생 속에서 강렬하게 남는 기억, 추억들만 남는다는 걸 깨달았기에 용기를 내서 또 떠나본다. 횡단 열차 안에서 글을 쓰고 바이칼 호에서 별을 찍을 생각이지만, 항상 생각 못한 일이 일어나는 게 여행이니까. 횡단 열차 안에서 별을 찍고 바이칼 호에서 글을 쓸지도 모르겠다.


아침 비행기라 새벽에 일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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