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의 성분을 아는가? 당연히 물이 주이고, 약간의 염분, 미네랄, 당 등이 포함되어 있다. 각각의 성분이 어우러져 눈을 보호한다.
이런 유물론적인 분석 말고 형이상학적으로 보면 사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다. 다들 슬픈 드라마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고 다 큰 성인남자도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눈물을 흘린다. 하지만 남자는 세 번 우느니 어쩌니 하는 말을 차치하고서라도 사실 어른이 돼서는 특히 남자들은 그닥 눈물을 흘릴 기회가 많지는 않다.
영업사원은 언제 눈물을 흘리는 줄 아는가?
영업사원에게 있어 가장 일반적인 오해는 울고불고 수단 가리지 않고 고객에게 구걸하며 물건을 파는 사람들이라는 오해다. 절대 그렇지 않다. 영업사원은 고객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아니 흘리면 안 된다.
이걸 사주지 않으면 내가 죽습니다라고 우는 게 아니라 이걸 안사면 당신이 죽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 간혹 영업을 잘 못 배운 친구들이 무조건 살려주십시오 하면서 매달려야 영업을 잘하는 줄 아는 경우를 볼 때면 내 새끼들은, 내 팀원들은 밖에서 저러고 다니면 안 되는 데 하는 생각도 한 적이 많다.
그럼 다시 한번, 영업사원은 언제 눈물을 흘리는가? 그리고 어디서 눈물을 흘리는가?
영업사원은 혼자 있을 때 운다. 변기를 붙잡고 화장실에 있을 때나, 혼자 차를 몰고 운전을 할 때 영업사원의 눈물은 흐른다.
내가 선생님들이 쓰는 업무관리시스템 문서보안 솔루션을 영업할 때였다. 오래전이라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5억이 넘는 프로젝트였고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소프트웨어의 5억은 일반기업에서 하는 영업의 50억이 훨씬 넘는 규모이다.
온갖, 갖은 우여곡절을 겪고 그 프로젝트를 수주했을 때, 난 앞서도 얘기했던 영혼의 제안서 책임자와 얼싸안고 춤을 췄다. 그때 결과를 기다리는 게 너무 초조해서 도저히 사무실에 앉아있을 수 없어 그 친구와 당구를 치고 있었는데 이때의 징크스로 이후에도 수주결과를 기다릴 때는 항상 당구장엘 갔다. 근무시간에 당구를 쳐도 되냐고? 바보 같은 소리 하지 마라. 우린 영업사원이다.
아무튼 엄청난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우선협상대상자가 된 뒤에, 보통은 계약 전에 최종적으로 기술협의를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제안내용을 검토하고 서로 이의가 없으면 계약을 하는 것인데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이 단계에서 엎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근데.. 하필.. 하필 이 특별한 일이 나한테 일어난 것이다. 전에도 말했듯이 수백 페이지의 제안서를 쌩으로 쓸 수는 없어서 이전 것을 복붙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전 사이트에서 제안했지만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당연히 빠져야 하는 제품하나가 아주 작게, 거의 보이지 않는 위치에 떡하니 적혀 있었던 것이다.
그 기능하나만으로도 이번 프로젝트 공급 솔루션만큼의 비용이 드는 그런 제품이었는데 그걸 그만 지우지 못한 것이었고 그걸 그만 경상도에서 파견온 선생님이 하필 발견해 버린 것이다. 모르고 넘어갔으면 모르지만 제안서는 그 자체로 약속이고 보증이기 때문에 물릴 수도 없고 화이트로 그 부분만 지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영업사원은 모든 책임을 진다. 제안서를 잘못쓴 건 사업관리팀의 실수지만 최일선에서 고객들과 해명하고 비는 역할은 당연히 영업사원의 몫이다.
난 죄송하다고, 이건 실수라고, 양해해 달라고 계속 빌었다. 상식적으로 선생님들도 그 기능이 이번 제안요청에(RFP에) 포함되는 게 아니라는 걸 아니까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16개의 사투리로 공격당해 본 적 있는가? 16개 시도에서 파견된 대표 선생님들은 각각의 억양으로 날 공격했다. 내가 오나라 신하들을 상대하는 제갈량이 된 심정으로 그 공격들을 받고 다시 빌고 다시 혼나고(사실은 다음업체로 넘기자는 협박까지) 어떻게 몇십 분이 흘렀는지 모른다.
결국은 선생님들로부터 회사에 돌아가서 다시 상의하고 오라는 말을 듣고 나오면서, 일단 시간이 많이 흘렀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려고 운전대를 잡았다. 그런데 마음이 너무 복잡했다. 어렵게 수주한 건데 수포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최악의 가정과 윗분들에게 혼날 생각, 열심히 했는데, 그저 실수했을 뿐인데 역시 혼나게 될 제안팀 걱정. 이 모든 게 복합적으로 다가오면서 도저히 집으로 갈 수가 없었다.
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내가 혼자 극복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대표자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다시 한번 선생님들을 뵐 수 없겠냐고. 다시 한번 설득드리고 싶다고 간청을 드렸다.
대표자선생님은 안타깝지만 지금 선생님들은 저녁을 드시러 가셨고 이건 그렇게 설득으로 될 문제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전화를 끊으셨다.그때........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처음으로 느껴보는 감정이 교차되면서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회의장소가 쌍림동이었는데 그때 당시 집이었던 구리까지 계속 울면서 운전을 했다. 이건 무기력과 걱정과 원망과 분노가 겹쳐진 눈물이다.
왜 선생님들은 잘 쓰지도 않을 기능일 텐데 저러나. 어차피 자기돈 아니고 세금으로 도입하는 솔루션인데 왜 저러나. 왜 하이에나처럼 저렇게 까지 하는가. 그때는 분노가 일었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하면 선생님들은 그들의 일을 한 것이니까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는 그 기능을 제공했다. 소프트웨어의 장점이기도 하지만 결국 모듈을 하나 더 설치하는 거니까 회사에서도 잘 얘기가 돼서 제공하는 걸로 마무리가 됐다. 손해가 없는 건 아니다. 추가로 그 제품을 공급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프로젝트는 잘 마무리되었고 지금도 선생님들은 내가 영업한 그 솔루션을 사용하고 계실 거다.
영업사원은 혼자 눈물을 흘린다. 패배감에서 흘릴 수도 있고 무기력으로 흘릴 수도 있지만 혼자 운다. 간혹 이해할 수 있는 같은 일을 하는 영업사원 앞에서 울 수도 있지만 그때도 혼자 운다. 둘 다 울면 모양이 좀 이상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나의 경우는, 아마도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그런 경험이 있겠지만, 접대를 할 때나 회식을 할 때나 주량이 넘는 술을 먹고 변기를 붙잡고 오바이트를 하면서 운다. 그건 약간 생리적인 이유(하품처럼) 일수도 있는데 아무튼 난 눈물이 나더라. 그러면서 드는 생각. 아빠가 이렇게 힘들게 돈 버는 거 아들놈은 알까? 아마도 한 번씩은 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아들이 아니라 그만큼 오바이트 하는게 힘들고 귀찮은 일이라는 거다. 뭔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네. 암튼,
그때의 경험으로 난 더 이상 영업을 하면서 눈물을 흘린 적은 없다. 그 이후로 그런 실수를 안 했다는 게 아니라 아무리 노력하고 눈을 부릅떠도 실수를 안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리라. 비도 오고 날이 흐려서인지 주제가 좀 슬펐다. 그리고 내가 눈물을 주제로 글을 쓰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사족 : 집이 멀다보니 난 차에서의 기억이 많다. 이 글처럼 감성적인 것도 있지만 생각하기도 싫은 생리적인 기억도 많다. 내가 지금도 신기하고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중에 하나는 급똥에 관한것. 강변북로 천호대교 방향으로 잠실가기 전 그냥 차를 세우고 낮은 담을 넘어 이용할수있는 화장실이 있다. 무슨 관리소 같은 곳인데 우연히 찾아낸 보물같은 장소다. 강변북로 같은 큰 도로에서 중간에 빠지지 않고 큰일을 해결할수있는 곳이 있다니. 역시 인간의 염원과 초조함은 못갈곳이 없게, 못 찾는게 없게 만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