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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만 원의 자유, 8천 원의 교훈

달콤한 소비 뒤에 남은 초라한 숫자

by 유화

초등학교 3학년 2학기에 강원도 원주로 이사를 왔다. 원주에서 시작된 3학년 2학기는 제법 성공적으로 이곳 생활에 적응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친한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여전히 원주가 힘이 있다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편안함을 준다는 것에는 동의하게 되었다. 해가 바뀌어 설이 되었다. 이제까지는 모든 세뱃돈을 엄마가 관리해 주시겠다며 전부 가져가셨는데, 이제 4학년이 되었으니 스스로 돈 관리도 해볼 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처음으로 세뱃돈을 내게 전부 주셨다. 그렇게 내 나이 열한 살 나는 처음으로 재정 주권을 얻었다.


그 시절 내가 받은 세뱃돈은 무려 14만 원이 조금 넘었다. 14만 원이라는 액수의 충격이 너무 커서 뒤에 따라오던 몇 천 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는 분식집의 만두가 백 원, 피카츄 돈까스, 떡볶이가 삼 백 원이었다. 그것뿐이랴 문구사에서 파는 대부분의 불량식품(밭두렁, 아폴로, 볼라볼라, 신호등, 맥주 사탕, 페인트 사탕, 하트 초콜릿, 피자 타임, 피져, 쫀디기, 월드컵, 쫄쫄이, 맛기차 콘, 트위스터, 차카니 등)도 백 원이었으니 천 원만 있어도 남부럽지 않게 군것질거리를 쓸어 담을 수 있었으니 말 다했다.


세뱃돈은 내 방 벽시계 옆에 걸려있는 빨강 버스 모양의 헝겊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마치 국가에서 보유한 금처럼 쓰지 않고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 바지 주머니가 두둑한 기분이었다. 돈은 나에게 인심과 배포를 주었으며 나로 하여금 삶에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빈 주머니로 다니면서 두둑함을 느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손에 잡히고 입으로 맛보는 현물이 없으니 내가 부자가 맞긴 한 건가 의구심이 들었다. 하루에 삼 백 원씩 받던 용돈은 너무 감질났고, 슬그머니 마음속에서는 소비 충동이 일어났다. 결국 의자를 밟고 올라가서 세뱃돈 중에서 천 원을 꺼냈고 다음날 등교할 때 입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 나는 전에 없던 행복한 즐거움을 만끽했다. 피카츄 돈까스도 사 먹고, 문방구에서 불량식품도 몇 개 사고, 오락기 앞에 쪼그려 앉아서 오락도 신나게 했기 때문이다. 그 달콤함에 취해 나는 다시 의자를 밟고 올라가서 돈을 꺼냈다. 이제는 혼자서 맛있는 것을 먹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왕 인심을 쓰는 것, 친구들 것도 사주기 시작했다. 어느덧 천 원짜리를 모두 사용하고 이제는 만 원을 꺼내게 되었다. 만 원을 헐자 오 천 원과 천 원짜리 몇 장이 나왔다. 생각보다 컸던원의 가치에 살짝 겁이 났기에 잔돈은 다시 헝겊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다. 그러나 이미 커지기 시작한 씀씀이는 멈추지 않았고 이제 하루에 천 원은 우습게 쓰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어느 날 엄마는 내게 세뱃돈을 잘 보관하고 있는지 물어보셨다. 나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지만 잘 보관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내 목소리의 떨림을 느끼셨는지 엄마는 세뱃돈을 가져와보라고 하셨다. 의자를 밟고 올라가면서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나도 잔액이 궁금했다. 돈을 꺼내서 쓰면서 언제부턴가 잔액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어 지폐 뭉치를 꺼내서 엄마에게 드렸다. 돈을 받아 든 엄마는 당황하신 기색이 역력했다. 액수가 팔 천 원이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다 꺼내봐~!



엄마는 엄마대로 놀라셨겠지만, 나 또한 놀랐다. 팔 천 원 남았다니?! 아무리 뭐 좀 사 먹고 장난감도 좀 샀기로서니 14만 원이나 되던 큰돈은 다 어디로 가고 꼴랑 팔 천 원이 남았단 말인가. 충격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나를 대신하여 엄마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뒤져보셨지만 더 이상 나오는 돈은 없었다.



돈 다 어디 갔어?! 바른대로 말해!



나는 학교 사물함에도 넣어 두었고, 친구한테도 조금 빌려줬다는 등 아무런 말이나 막 내뱉기 시작했다. 곧이어 내 앞에는 종이와 펜이 등장했다. 누구에게 얼마를 빌려준 것인지 적으라고 하셨지만 펜을 만지작거리기만 할 뿐 아무것도 적지 못하는 나를 보시고 엄마는 학교 사물함을 확인할 것이니 앞장서라는 말씀을 하셨다. 이제 나에게는 '여기서 혼날지' 아니면 '학교 사물함 앞에서 혼날지' 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었기에 거짓말을 하였음을 실토했다.


그날 나는 양발에 불이 나도록 맞았다. 그것은 혼나더라도 혈액순환이라도 잘 되어 몸이라도 건강해지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이셨다. 혈액순환이 너무 잘 되어서 벌겋게 후끈 달아오른 얼굴과 귀는 오래도록 식지 않았다. 마치 대단한 부자라도 된 것처럼 돈을 펑펑 쓰던 나는 재정 주권을 얻은 지 채 몇 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빈털터리가 되었다.


옛 속담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속담이 있다. 어떤 일이 이미 잘못되고 나서야 비로소 그 일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뜻이다. 그런데 세상을 살다 보면 소를 잃고도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는 사람들 또한 있다. 이를 보면 잃어 보기 전에 미리 잘못을 고친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요. 잃어버렸지만 그 후에라도 잘못을 고치는 사람은 나름 선방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써도 써도 끝이 없을 것만 같았던 세뱃돈이 사라지는 것에 충격을 받은 덕분에 나는 돈 쓰는 무서움을 배웠다.

그것이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나의 인생 첫 돈 공부였다.



당신이 돈을 쓸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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