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손난로와 따뜻한 기도
사람은 닥쳐올 일을 알 수 없기에 그 불확실함 속에서 삶이라는 꽃을 찬란하게 피워낼 수 있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것은 삶의 본질을 인지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이다. 한걸음 물러서서 자신의 삶을 관조하며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학벌과 재산과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그 삶이 영화롭다. 하지만 그저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나 살다가 밤이 되면 눈을 감고 잠이 드는 삶은 다르다. 삶을 제대로 직시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맞이하는 삶은 영화로움과는 거리가 멀다. 매 순간 분주함과 안일함, 허무함과 무력함에 휩쓸려 하루를 버티고 살아내는 것이 고작이다.
초등학교 6학년이 된 내 삶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안일함에 빠져 내일, 모레, 한 달, 한 해를 바라보지 못하고 그저 계획도 없이 학교 가서 수업을 듣고, 끝나면 친구들과 놀다가 집에 오고 다시 하루를 보내는 삶을 반복했다. 그러던 내 삶은 곧 커다란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바로 따돌림의 시작이었다.
6학년이 된 내 삶에 처음부터 먹구름이 꼈던 것은 아니었다. 4개 학급으로 운영이 되다가 5개 학급으로 반이 늘어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처음 1개월 정도 임시 학급으로 운영되다가 재편성이 되었다. 그때 임시학급 담임선생님은 별로였던 지라 바뀌는 것이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새롭게 반이 배정되고 나는 갓 임용되신 선생님의 반이 되었다. 선생님은 뭐든 해보려는 열정이 있었고, 학생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려는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예쁘셨다. 나는 선생님이 좋아서 말씀도 잘 듣고, 뭐든 도와드릴 것이 없는지 찾고, 수업시간에 발표도 열심히 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나는 앞잡이, 잘난척쟁이, 꼴불견이 되어있었다.
선생님이 싫었던 여자 아이들을 시작으로 그 아이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 동조하는 남자아이들로 이루어진 학급 분위기는 점차 나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 불편해진 내 친구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쳤다. 혼자가 된 것은 그래도 참을만했지만 따돌림은 늘 사람을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발표를 하고 자리에 앉을 때만 조용히 들려오는 수군거림과 키득거림은 이제 쉬는 시간에도 조롱으로 이어지고 학교생활은 점점 더 힘들어졌다.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이러는 것인지 억울해서 눈물이 나다가도 이것을 보고 조롱할 애들이 생각나서 화장실이 아닌 운동장 수돗가에서 얼굴을 씻었다. 눈물은 씻는다고 멈추지 않았다. 마치 제대로 울어보라고 자리를 마련해 준 것처럼 눈을 씻으면 씻은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이 자리를 메웠다. 결국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 소리에 위로를 받으며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우는 수밖에 없었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는 것은 내게 큰 고역이었다. 하지만 내 상황을 알면 슬퍼하실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집으로 돌아오면 더 밝은 모습으로 친구들과 어떻게 놀았는지 없는 얘기를 지어냈다. 어느덧 날씨가 추워지고 겨울이 되었다. 겨울이 되면 아침마다 엄마는 뜨거운 물에 담가 녹인 손난로를 손수건에 싸서 주셨는데, 나는 언제나 주전자에서 꺼낸 온기가 다 식을 때까지 버티다가 비로소 똑딱이를 눌러 사용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교에 가서도 이 삶이 계속되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안고 집을 나섰던 나는 전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를 맞닥뜨렸다. 그런데 너무도 반갑게 인사하는 친구의 모습에,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볼을 꼬집는 대신 조용히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어 보았다. 아픈 것을 보니 이것은 진짜였다. 오랜만에 나눈 반가운 인사에 나는 날이 많이 춥다며 친구에게 손난로를 내밀었었다. 우리는 같이 걸어가며 정말 많은 이야기를 했고 참 많이 웃었다. 비록 내 손은 시렸지만 내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도 따뜻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느새 시간은 우리를 교문 앞에 데려다 주었다. 친구는 나에게 손난로를 돌려주며 자기는 먼저 뛰어가겠다고 말했다. 내 손에 느껴지는 차갑게 식은 손난로의 감촉은 이제 그만 꿈에서 깰 시간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혹시라도 꼭 쥐어보면 작은 온기라도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딱딱하게 굳은 손난로에는 싸늘한 차가움만 남았다. 눈물이 날 것만 같았기에 고개를 들었다. 유난히 높아 보이는 겨울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기도했다. '내일은, 다음 주는, 다음 달, 내년에는 결코 오늘과 같지 않게 해 주세요.'
기도가 이루어졌다. 다시 한번 내 삶에 변화가 찾아온 것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게 될 중학교는 뺑뺑이(무작위)로 배정받게 되었다. 우리 집에서 2차선 도로 하나만 건너면 바로 중학교가 있었는데 그곳이 아닌 아주 멀리 있는 학교로 배정을 받은 것이다. 전교에서 겨우 일곱 명이 그 학교로 배정을 받았는데 나를 제외한 여섯 명도 모두 내가 모르는 다른 반 학생들이었다. 나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선생님 말씀을 특별히 잘 듣지도 않을 것이고,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면 발표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렇게 나는 마치 애벌레가 번데기를 거쳐 나비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처럼 누구도 나를 알지 못하는 그곳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 초등학교 시절에 비해서 장난을 많이 친 탓에 선생님들께 꾸중도 많이 들었지만, 재치와 남다른 말주변으로 내 주위에는 전에 없이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이제야 다시 내 삶에 볕이 조금씩 들게 된 것이다.
마치 허기를 채우려는 듯 나는 말 한마디라도 더 걸고, 얼굴이라도 한 번 더 익히며 친구들을 사귀는 것에 집중했다. 나에게 친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얼굴만 알고 오며 가며 인사만 하는 정도의 관계면 나는 친구라 불렀다. 하지만 이러한 관계는 내게 공허함만 안겨주었다. 요란하고 시끌벅적 하지만 내 마음을 진정으로 알아주는 친구는 없었다. 어쩌다 읽게 된 고사성어 책에 나온 수어지교(水魚之交), 지란지교(芝蘭之交)와 같은 사귐을 부러워하며 더이상 무의미한 친구만들기는 그만 두게 되었다.
고등학생이 되어 나는 백아와 종자기처럼 귀한 우정을 나눌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가고 싶던 남녀공학을 가지 못하게 된 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진정한 사귐은 갈증과 허기를 동반하지 않으며, 오히려 삶에 여유와 평안을 가져다 준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좋았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경험하는 모든 일들이 입가에 웃음을 띨만한 추억이 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을 통해서 나는 배우고 성장한다. 내가 삶의 본질을 깨달았다는 것이 아니다.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이제는 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후회 없이 살게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 추웠던 겨울날 하늘을 올려다 보며 했던 기도가 이루어진 것임을 이제는 안다.
삶은 고민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고민에 대한 답을 발견할 실마리를 찾았다. 비록 슬픔과 아픔을 걷는 힘겨운 시간이었을지라도 이 모든 시간이 그저 아프기만 한 것으로 끝나지 않고 결국에는 나에게도 선하고 다른 사람에게도 선한 결과가 될 수 있다는 것,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것임을 배웠다.
내일은 오늘과 다르길 간절히 바라던 그날, 당신은 무엇을 바꾸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