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아리 뒤에 숨겨둔 비밀
이 이야기는 바로 세뱃돈을 펑펑 쓰면서 아직 엄마에게는 걸리지 않았던 시점에 내 이야기다. 원주로 전학을 오고 나는 빠르게 몇몇 친구들과 가까워졌고 학교에서 돌아오면 친구들과 몰려다니면서 놀았다. 이때 우리는 한창 서바이벌에 빠져있었다. 놀이터에서 아니면 조금 영역을 넓여서 아파트 단지 내에서 서로 편을 가르고 BB탄 총을 쏘며 적진에 세워둔 벽돌이나 나뭇가지를 탈취하는 놀이였다. 딱히 총을 맞은 것이 표시가 나는 것은 아니었기에 맞고도 안 맞은 척 속이는 사람들이 있었고 결국 양쪽 진영은 총을 쏘는 것보다 맞았네, 안 맞았네 말로 싸우는 시간이 더 많았던 놀이였다. 서바이벌에서는 무조건 총이 있어야 했다. 나도 친구들 무리에 끼기 위해 부모님께 권총이라도 하나 사줄 수는 없는지 여쭤보았지만 부모님께서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라는 성경 말씀을 들려주시며 아무리 놀이에 불과할지라도 총을 들고 서로에게 겨누는 것은 좋지 않다고 하시며 반대하셨다.
그러면 나는 친구들이 놀 때 구경만 했느냐? 그건 아니었다. 바로 친구들 사이에서 무기상이라고 불리는 한 친구 덕분이었다. 그 친구네 집에는 권총부터 소총, 샷건까지 정말 다양한 총들이 많았고, 자기가 가지고 놀 총을 제외하고는 총이 없는 친구들에게 빌려준 덕분에 나 같은 아이들도 총 한 자루씩 보급받아서 놀이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해가 바뀌어 우리는 4학년으로 올라가게 되었다. 두둑한 세뱃돈에 내가 정신 못 차리던 시절, 나는 생일에 깜짝 선물을 받게 되었다. 바로 무기상으로 불리던 내 친구가 날 위해 총을 선물로 사준 것이다. 아니 이런 세상에 맙소사! 엄마, 아빠도 사주지 않으시는 게 총이었는데 허름한 권총도 아닌 어깨에 견착 할 수 있는 소총이었다. 휴대하기에는 권총이 좋았지만 그래도 크기와 묵직함이 주는 멋을 무시할 수 없었다. 딱 보기에도 1~2만 원은 족히 넘어 보이는 모습에 날아갈 것처럼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이래도 괜찮은 것인지 걱정이 되었다. 친구에게 몇 번이고 물어봤지만 친구는 부모님에게도 친구 선물을 사줄 거라고 다 말씀드려서 아신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제 문제는 우리 집이었다. 이것을 가지고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 받게 될 무수한 질문들과 결국에는 어머니와 함께 친구네 집으로 총을 돌려주러 가는 모습까지 안 봐도 비디오였다. 하지만 정말 이 선물을 그대로 받고 싶었다. 나는 친구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우리 아파트 화단에 있는 야트막한 언덕에 총을 숨겼다. 우리가 서바이벌을 하게 될 때면 나는 화단으로 들어가 능숙하게 낙엽을 걷어내고 무장을 해서 나왔다. 한 세 번인가 총을 가지고 놀았나 화단에 들어갔는데 낙엽과 함께 내 총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총을 잃어버린 것도 속이 쓰렸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친구의 허탈한 모습을 보는 것이 더 마음 아팠다.
그날 처음으로 나는 세뱃돈을 모아둔 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세 장을 꺼내서 문방구로 향했다. 주머니에 돈이 있으니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분명 전에 내 눈에는 백 원짜리 불량식품만 보였는데 비싼 장난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인아저씨에게 이것저것 보여달라고 해보았지만 너무 비싼 장난감은 구매하는데 입이 바짝바짝 말랐기에 친구가 내게 줬던 선물에는 한없이 못 미치지만 만 오천 원짜리 기관단총을 구매했다. 말이 기관단총이지 실제로 총알이 연발로 나가는 것은 아니고 쏠 때마다 재장전이 필요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엄청난 해방감에 휩싸였다. 이렇게 큰돈을 써 본 것이 처음이거니와 그것이 심지어 총이라니. 내게 이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친구에게는 네 선물 덕분에 우리 부모님께서 마음을 여시고 잃어버린 선물 대신 새로 총을 사주셨다고 말했다. 총이 없는 내 처지가 안타까워 친구가 선물해 준 것이었기에 결과적으로 내게 총이 생긴 것을 함께 기뻐해 주었다. 이번에는 총을 화단에 숨기지 않고, 우리 집 현관문 밖에 놓아둔 고추장 항아리와 벽 사이에 숨겨두었다.
꼬리가 길면 밟힌다고 하였던가 이번에도 누가 가져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종종 현관문을 열고 총을 확인하는 내 모습을 동생에게 들켰다. 나와 총을 번갈아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지는 동생에게 나는 둘러대기 시작했다.
1층 현관에 이게 있더라고. 멋져 보여서 가져온 거야!
말없이 나를 바라보던 동생은 이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모든 일이 잘 끝난 줄 알았다. 어느덧 엄마와 아빠는 저녁에 예배를 가셨고 나는 총을 한 번 더 확인하기 위해 슬리퍼를 신고 현관문을 나왔다. 어둑어둑한 복도, 아파트 복도를 밝히는 등은 하등 쓸모가 없음을 느끼며 나는 항아리 뒤로 손을 넣고 더듬거렸다. 어두운 허공을 휘적이는 손에 잡히는 것은 차가운 벽과 항아리의 감촉만이 느껴질 뿐 총은 없었다. 아까 오후만 해도 이곳에 멀쩡히 있던 총이 없다. 나는 이 일에 동생이 관여되어 있다는 의심을 품고 집으로 쏜살같이 튀어 들어갔다.
너! 여기 바깥에 있던 총 어디 갔는지 알아?
천진난만하게 눈을 끔뻑거리며 가져다 놓았다고 말하는 동생에게 나는 어디에 가져다 놓았다는 것인지를 소리쳐 물을 수밖에 없었고 슬쩍 겁을 먹은 동생은 1층이라고 대답했다.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고 그 두근거림은 목덜미와 관자놀이에서 느껴지기도 하고 귀에서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다급하게 슬리퍼를 신고 1층으로 내려갔다. 없다. 동생이 말해준 위치 외에 1층 바닥을 이 잡듯이 뒤졌지만 총그림자도 발견할 수 없었다. 하늘이 무너진 심정으로 집으로 돌아와서 동생에게 총을 1층에 가져다 놓은 이유를 물었다.
잃어버린 그 사람, 많이 슬플 거 아냐...
완벽한 나의 실패였다. 적어도 동생은 내 편으로 만들어 두었어야 했는데 동생에게 사실을 말하지 않았던 나 자신이 후회되었다. 소중한 장난감을 잃어버려서 슬퍼하고 있을 사람을 위해 총을 가져다 놓은 동생은 잘못한 것이 없었다. 나 또한 그것을 알기에 동생을 타박하는 것은 그만두었다. 하지만 그 총은 사실 내가 몰래 산 것임을 고백하며 흐르는 눈물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내가 지금 제일 슬퍼!!
조용히 흐르기만 하던 눈물은 생각할수록 아깝고 서러워서 울음이 되었다. 그리고 목놓아 우는 내 모습에 동생도 같이 따라서 울기 시작했다. 한참이 지났다. 이제 부모님이 교회에서 돌아오실 시간이었다. 서둘러 나는 세수를 했고 동생의 눈물도 닦아주었다.
오로지 내 독단으로 자행된 이 일은 거짓과 후회로 점철되어 아픔만을 남겼다. 부모님의 허락과 지지 속에서 벌인 일이 아니었기에 이 일은 말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동생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며 나는 기관단총을 마음속에 묻었다. 없어질까 전전긍긍하던 것에서 벗어나 시원하게 한바탕 울고 나자 마음이 후련했다. 후련한 마음으로 동생을 바라보니 녀석의 남을 위하는 모습이 제법 기특하게 느껴지던 밤이었다.
이 일은 추후 엄마가 세뱃돈의 사용처를 추궁하실 때 밝혀져 혼났다. 하지만 나는 그날 총은 잃어버렸으되 마음이 불편할 일은 애초에 하지 않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는 교훈을 배웠다.
숨기고 싶었던 선택이 결국 드러났던 순간, 당신은 무엇을 배웠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