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낯선 곳을 향하여
초등학교 3학년 1학기를 마치며, 우리 가족은 아버지 직장 발령으로 인하여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직 장소가 확정되기 전부터 부모님께서 말씀을 해주셨던 덕분에 갑작스러운 이사로 충격을 받기보다는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아무런 걱정도 없이 지냈던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환경으로 나아가 딱딱하게 나를 감싸고 있는 익숙함을 깨는 일련의 과정은 나를 더욱 성장시키는 자양분이 된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성장의 경험보다는 익숙함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나였다.
아파트 담장을 노랗게 물들이며 피어난 개나리는 긴 겨울을 이긴 봄의 승전보 같았다. 개나리의 노란 물결은 곧 민들레로 이어졌고 민들레의 노란색 꽃이 하얀 솜털 같은 씨앗으로 바뀌는 시간만큼 이사도 점점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내가 늘 걱정과 아쉬움,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순간적인 감정을 자주 느끼곤 했다. 마치 가만히 있을 때는 모르지만, 내 눈앞에 둥둥 떠다니는 무언가를 인식하려고 하는 순간 바람을 타고 흩날려 온 사방을 가득 채운 민들레 씨앗처럼 말이다.
익숙한 등굣길, 학교, 동네 구판장과 문구사, 놀이터 등 여러 장소에서 익숙함을 느끼고, 친구들과 재밌게 놀면서 친밀함을 느낄 때마다 이 모든 것과 작별할 시간이 다가온 다는 것은 점차 구체적으로 다가왔다. 이전에 적었던 글 '무너지는 경비실'의 무대가 되었던 집에서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올 때에는 아무런 두려움이 없었다. 오히려 좋았다. 나만의 방이 생기고, 새로운 TV와 VCR이 생겨서 여러 만화영화(공룡시대, 다간, 썬가드 등)를 비디오 대여점에서 빌려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두렵지 않았던 이유는 아닐 것이다. 나는 그동안 정신적, 사회적으로 많이 자랐다. 오늘만 생각하던 내가 내일을 그리게 되었고, 그만큼 내일을 함께하고픈 친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하늘에 떠있는 구름은 어디로든 그냥 흘러갈 수 있지만 뿌리를 내린 나무가 이동하려면 뽑히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 어린 나이임에도 나는 잃을 것이 많아졌던 것이다.
1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이 되었다. 나는 이사를 가기 전, 제일 친구에게 아끼던 장난감 하나를 선물로 주었고 이내 강원도 원주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이삿짐 정리를 하루에 다 끝낸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기 때문에 모든 것들이 새로운 제자리를 찾기까지는 며칠이 걸렸다. 여전히 모든 것이 낯선 나에게 엄마는 내가 가게 될 초등학교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그곳은 바로 엄마의 모교였다. 커다란 그늘로 나를 언제나 덮어주시던 엄마도 초등학교 시절이 있었다는 것에 새삼 놀라며 나 또한 같은 학교를 가게 된다는 사실이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전학 수속을 위해 학교를 방문하는 날. 엄마와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엄마의 커다란 자전거를 나도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뒤따랐다. 엄마와 내 자전거는 쇼바(완충장치)가 없었기에 보도블록이 끊길 때마다 경계석을 넘어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행히 도로는 한산하여 좌측에 바짝 붙어서 조심스레 자전거를 모는 우리를 마주 보고 오는 차량은 별로 없었다. 앞서가는 엄마와 내 머리카락을 스치는 바람, 뜨거운 여름의 태양과 늘어서서 우리를 반겨주는 듯한 가로수. 그날의 풍경은 너무도 평화로웠다. 그런데 학교에 도착하자 평화로움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학교 앞 공원에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명패가 적힌 이승복과 각종 동물상이 서 있었는데 모두 심각하게 변색되어 흉물스러웠다.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높이 자란 나무로 인해 햇볕이 잘 들지 않는 공원은 얼마나 방치되었는지 가늠해 볼 수도 없었다. 기름걸레로 닦아야 하는 나무 마루가 깔려있는 학교 복도, 심지어 강당도 없다. 학급 수는 한 반에 30여 명으로 총 4개 반이었다. 이곳이 바로 내가 다니게 될 학교였다. 이사 와서 엄마와 함께 시내에 나간 적이 있었다. 마치 지하철 개찰구처럼 생긴 지하상가 사거리는 지하철이 없는, 육교대신 설치된 지하통로에 불과했다.
힘 있고 편안한 원주!
원주시에서 설치해 놓은 슬로건을 보며 이게 어딜 봐서 힘 있고 편안한 모습인지에 의문이 들었는데 학교를 보고 비로소 답을 내릴 수 있었다. '아, 여긴 힘없고 불편한 곳이구나..!' 그런데 이런 열악해 보이는 환경을 보자 되려 앞으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학교와 친구들이 문제가 아니라 전반적인 내 삶을 다시 본래의 궤도로 오려놓으려면 최대한 빠르게 이곳에 적응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것을 느꼈다. 이처럼 커다란 변화 속에서는 상대적으로 작은 변화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게 된다. '학교 적응'이라는 하나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원주에서의 삶'이라는 커다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 이것이 나의 첫 목표가 되었다.
당신이 떠나야 했던 익숙함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지금의 당신을 있게 한 낯섦은 무엇이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