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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아르바이트, 행복의 비밀을 알게 되다

때로는 맛보다 마음으로 기억되는 음식이 있다.

by 유화 Mar 21. 2025

어릴 적 나와 비슷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바로 어떤 일을 하고 싶은데 혼자 일을 벌이자니 나중에 부모님께 혼날 것 같고, 제대로 말씀을 드리고 허락을 구하자니 십중팔구 안될 것 같을 때에는 부모님이 주무실 때를 노리는 것이다. 부모님이 누우시고 살짝 잠이 드셨을 때를 노려 허락을 구하면 어지간히 놀랄만한 일이 아니고서는 대개 비몽사몽 중에 허락을 하신다.


중학생 때 내가 용돈을 받는 방식은 제법 독특했다. 바로 내가 성경 잠언 말씀을 한 장 필사하면 부모님은 내게 5,000원을 주셨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에 10장도 쓸 수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해서는 우리 부모님 주머니가 남아나지 않을 것이고, 그것은 나름 만족스러웠던 이 정책이 예산 부족으로 인해 조기 종료될까 봐 알아서 한 달에 2~3만 원 정도로 조절을 했다. 용돈으로 이런저런 간식을 사 먹는 것은 따로 허락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용돈을 모아서 간식이 아닌 다른 것을 사려한다면 어디에, 얼마를, 왜 쓰려고 하는지 부모님의 물음에 대답을 해야 했다. 정말 안타까운 것이 이것이다. 우리가 회사에서 지출결의서를 올렸을 때 승인이 거절될 수도 있는 것처럼 나도 대답만 하면 그 돈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자잘하게 간식을 사 먹는 것으로 쓰나 모아서 번에 쓰나 내가 보기에는 별 차이가 없었지만 부모님이 느끼시는 것은 좀 달랐던 것 같다.


그래서 엄마가 주무실 때 날림으로 허락을 받고 돈을 쓰곤 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엄마가 이거 어디서 났는지를 물으시면 대답할 수 있도록 여쭤봤던 날짜와 시간을 적어두는 치밀함도 보였다. 이렇게 용돈을 받고, 용돈을 쓰는 것에 큰 불편함은 없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나 이러한 허락 따위를 받지 않고 온전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바로, 재정 주권에 대한 갈망이었다.




중학교 1학년 겨울방학이었다. 아침부터 창밖에서 들려오는 매서운 바람 소리를 들으며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문득 아르바이트에 관한 생각이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은 전무했다. 그렇기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라고는 중국집 전단지가 전부였다. 일을 할 수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르지만 뭐든 직접 부딪쳐봐야 안다는 생각이 들자 나는 밖으로 나갈 채비를 했다. 어떤 결과를 맞이하든 나는 이 외출을 통해 무언가를 배울 수 있으리란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주무시고 계셨다.


엄마를 살살 흔들어 깨우고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 곳이 있을지 알아보고 오겠다고 말씀을 드렸다. 엄마는 비몽사몽인 와중에 허락을 하셨다. 현관문을 나설 때는 몰랐는데 1층 공동현관을 나오자 느껴지는 추위는 생각보다 심했다. 아파트 단지 내부는 경비 아저씨께서 넉가래와 눈삽으로 눈을 치워놓으셨지만, 도로는 온통 시커멓게 변한 눈투성이었다. 먼지로 슬러시를 만들어서 바닥에 부어놓았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제일 가까이 보이는 중국집부터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구하시는지 물어보기 시작했다. 현관문 앞에는 치킨집 전단지도 자주 봤는데 오후나 되어야 영업을 시작하는지 모두 문이 닫혀있었다. 그렇게 가게문을 두드리기를 10여 차례 드디어 나를 써주겠다는 중국집을 찾을 수 있었다.


바깥이 춥기도 추웠지만 특히 힘들었던 것은 운동화 안으로 물이 스며드는 것이었다. 발이 시리던 차에 들어온 중국집은 너무 따듯했다. 주인아주머니는 일단 앉으라고 하시더니 전단지 돌리려면 잘 먹어야 한다며 짬뽕과 군만두를 만들어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점심을 먹는 동안 난로 앞에 벗어둔 신발이 바싹 말랐다. 이제 일할 시간이었다. 아주머니는 이 날씨에 맨손으로 어떻게 다니냐며 빨간색 반코팅 장갑을 주셨다.


내가 벌 수 있는 돈은 전단지 1,000장을 돌릴 때 만 원이었다. 아주머니는 전단지를 백팩과 손에 드는 종이 백에 잔뜩 담아 내게 주셨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도 참 어리석었다. 그저 일할 수 있음에 기뻐서 전단지 1,000장의 양은 얼만큼인지 알아볼 생각도 못 했고, 백팩과 종이 백에 넣어준 전단지는 몇 장인지도 몰랐으며, 내가 돌리게 될 아파트 단지는 몇 세대인지도 모른 채 중국집을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섰다.


전단지를 돌리다 보니 요령이 곧 생겼는데 먼저 아파트 입구에 있는 단지 배치도를 확인하는 것이다. 총 몇 동이 있는지를 확인했으면 가까운 동부터 시작해서 엘리베이터에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서 계단을 한 층씩 내려오면서 각 집마다 전단지를 돌리면 되었다. 우리 집 문 앞에 붙어있던 광고 자석이었다면 수월했겠지만 이 중국집은 문고리에 거는 얇은 전단지였다. 테이프로 붙여야 하는 전단지가 아닌 것은 감사했지만 장갑을 낀 손으로 전단지를 한 장씩 넘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에 오른손은 장갑을 뺄 수밖에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다가 사람이 집에서 나오는 소리가 나면 내려가지 못한 채 계단 참에서 숨어서 기다리다가 사람이 사라지면 다시 전단지를 돌렸다. 나 스스로가 문 앞에 붙어있는 전단지를 환영하지 않았던 것처럼 나도 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것임을 본능적으로 느꼈던 것이다.


복도형 아파트는 한 층에 여러 호수를 돌릴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복도에 창이 없어서 차가운 바람에 손이 꽁꽁 얼었고, 계단실형 아파트는 상대적으로 따뜻했지만 한 층에 꼴랑 두 세대밖에 없었기에 계단을 내려오는 것에 비해 효율이 없었다. 이처럼 각 단지별로 장단점이 있었지만 단점밖에 없는 아파트도 있었다. 바로 스물 아홉동 짜리 엘리베이터가 없는 5층 아파트였다.


전단지를 돌리다 보니 어느덧 오후 다섯 시가 되었고 주변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중간에 텅 빈 가방을 다시 채우기 위해 중국집에 들렸을 때가 떠올랐다. 주인아저씨는 어디 가서 놀면서 전단지는 버리고 오거나 하는 것은 아닌지 내게 물었다. 나는 아저씨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저씨!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아저씨의 두 눈을 흔들림 없이 마주하며 당차게 말하는 나에게 아저씨는 그런 애들이 종종 있어서 물어본 것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나중에 다 확인하러 가볼 거니까 잘해야 한다는 말을 덧붙인 것 보면 나를 여전히 신뢰하지는 못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 엄마는 늘 사람은 정직해야 한다고 가르쳤는데,
전단지 갖다 버리고 농땡이 피우는 사람으로 나를 생각해?
웃기는 아저씨잖아.


꽁꽁 얼어서 쥐고 펴는 것이 어려운 오른손과, 천근만근인 양쪽 다리를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상한 기분을 혼잣말로 내뱉었다. 그리고 지금 돌리는 아파트 단지만 다 돌리면 집에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때 나는 아파트 현관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경비 아저씨에게 잡히고야 말았다. CCTV를 보다가 웬 학생이 이동 저동 엘리베이터를 타고 계속 보이는 것을 확인하고는 1층에서 나를 기다리신 것이었다. 누구의 허락을 받고 전단지를 돌리는 거냐며 혼내는 아저씨에게 죄송함을 표하며 이제 그만 돌리고 돌아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으나 경비 아저씨는 이미 돌린 전단지를 모두 수거해 오라고 하셨다. 거의 아파트 단지 절반을 돌렸는데 다시 수거할 생각에 눈앞이 깜깜했다.


마음속에는 또 다른 내가 '수거하는 척하다가 그냥 도망가'라는 말을 속삭였지만 혼잣말로 정직을 떠들던 내 모습이 떠올랐기에 나는 결국 3개 동에 돌렸던 전단지를 모두 수거하였다. 경비 아저씨에게 수거한 전단지를 모두 보여드리고 죄송하다는 말을 전하고 나오는 내 마음에는 뿌듯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중국집으로 돌아와서 주인아저씨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아저씨는 마지막 단지는 못 돌렸지만 그래도 수고했으니 만 원을 주겠다고 하셨다. 고마웠다. 이제 저녁 시간인데 짜장면 한 그릇 먹고 가라는 아주머니의 말씀에 저녁밥은 집에 가서 먹겠다며 문을 나섰다. 


저녁 여섯 시, 분명 아까만 해도 다리가 너무 아팠는데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두 번 접어서 손에 쥐고 돌아오는 발걸음은 이상하게 가벼웠다. 코끝에 맛있는 냄새가 스친다. 부모님이 종종 사주셨던 왕만두 가게에서 나는 냄새였다. 나는 고기 왕만두와 김치 왕만두를 각각 1인분씩 주문했다. 만 원은 이제 6천 원이 되었지만 매번 부모님께서 사주기만 하셨는데 내가 처음으로 번 돈으로 사드리면 맛이 있었다. 엄마가 얼마나 대견스러워하실지 그 모습이 기대되어 발걸음은 더 빨라졌다.


현관문을 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집으로 들어온 나는 큰 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오시는 엄마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왕만두가 담긴 비닐봉지를 들어 보인 채로 등짝 세대를 맞았다.



도대체 어디 가서 뭘 하다가 이제 와!
아침 10시에 나가더니!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핸드폰은 부모님이나 가지고 계시지 애들은 핸드폰이 없던 시절이었다. 시간은 늦어 저녁이 되어가는데 연락도 없는 아들 걱정에 새카맣게 탄 엄마가 마음이 느껴졌다. 패딩이 두꺼웠기에 등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지만 걱정을 끼친 죄송함에 마음이 살짝 아팠다.



아하하... 알바 찾아보겠다고 했잖아요.



뒤통수를 긁적이며 어찌할 바를 몰라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중학생을 아르바이트로 써주는 가게가 어디 있어!



잠결에 허락하신 줄 알았지만 엄마는 기억하고 계셨다.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고 오겠다는 내 말에 엄마는 '한두 군데 들러보고 안되면 추우니까 곧 들어오겠지'라고 생각하시며 허락해 주신 것이었다.



중국집에서 전단지 아르바이트했어요.
그리고 이거 사 왔어...
우리 맛있게 먹었던 게 생각나서...



나는 손에서 부스럭 거리는 비닐봉지를 엄마에게 멋쩍게 내밀었다. 그걸 받아 든 엄마는 울면서 봉지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나를 끌어안으셨다.



누가 너보고 이거 사 오랬어?!
이렇게 추운데 장갑도 없이!
왕만두를 네가 왜 사 와!



이제는 나도 더 이상 멋쩍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내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와 추운 날 고생한 서러움에 눈물이 터져 나왔다.



만 원 벌었어! 내가 먹고 싶은 거였으면 아까워서 안 샀어!
근데 엄마 사주고 싶어서! 고마운 게 많아서!
같이 먹으면 웃을 것 같아서!
칭찬받을 것 같아서 샀어!
근데 왜 자꾸 뭐라 그래!



엄마와 나는 서로를 끌어안고 울었고 어느새 동생도 달라붙어서 함께 울고 있었다. 한참을 울다가 울음을 그치게 되자 엄마는 바닥에 떨어진 비닐봉지에서 차갑게 식은 왕만두를 꺼내어 입에 넣으셨다.



맛있네. 정말 맛있다. 고마워 아들!


나와 동생도 만두를 받아 크게 한입 베어 물었다. 비록 차갑게 식었지만 그날 먹었던 왕만두는 최고로 맛있는 만두로 기억에 남았다. 그것은 추운 겨울 날의 고생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나만의 것을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썼다는 뿌듯함 때문이었을까. 아무래도 좋았다. 음식으로 배를 채우는 것을 넘어, 마음을 채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이 세상에 감추어진 행복의 비밀을 발견한 기분이었으니 말이다.



훗날 과거를 회상하며 내가 돌린 전단지가 1,000장이 안되었는지 돌렸던 아파트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385세대 + 980세대 + 248세대 + 818세대 = 2,471세대

마지막 단지, 6개 동 중에서 3개 동을 돌렸다가 다시 회수했던 818세대를 제외해도 1,653세대였다. 16,530원은 받았어야 하건만, 나는 겨우 만 원을 받았다. 사회는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눈을 뜨고도 코를 베이는 곳임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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