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들은 대학원에 지원하기 전에 '컨택'이 필수로 여겨진다. 컨택은 지원하려는 연구실의 지도교수님께 미리 사전에 지원할 의향을 밝히고 면접을 보고 지원을 '허가'받는 과정을 일컫는다. 공식적인 학교의 입학 및 심사 과정의 실질적인 내용이 이 과정에서 이루어진다고 보면 된다. 홈페이지의 입학 요강에 적힌 과정은 형식상의 과정일 뿐이다.
컨택은 왜 필요할까? 현재 취업시장은 구직난이 점점 심해지면서 지원자들의 스펙은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그 결과 무시무시한 대학원생 괴담이 널리 퍼져 있는 데에 반해 정작 전체 대학원생 수는 매년 증가 중이다. 정말로 전공이 좋아서 온 사람들 외에도 당장 취업 전선에 뛰어들기 모자란 역량을 키우기 위해서 대학원에 오는 사람들도 많다는 소리다.
때문에 취업 과정에 도움 될 만한 '트렌디'한 연구 주제를 다루는 연구실은 포화 상태이다. 그러므로 학생은 교수님이 논문을 봐주실만한 여유가 있는지 확인하고, 교수님 또한 지원자가 쓸만한 인력이 될 수 있을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컨택 없이 지원했다가 탈락이라는 쓴맛을 볼 수도 있다. 둘 중 한쪽이라도 사정이 여의치 않거나 비교를 위해서 컨택은 다른 연구실과도 여러 번 이루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문과 대학원생은 어떨까? 문과는 취업 시장에서 지원 가능한 직무는 적지만, 전공자는 넘쳐난다. 대체 가능한 인력이 많은 상태에서 가방끈이 긴 지원자는 오히려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다. 오죽하면 가장 인기인 서울대 대학원 과정마저도 지원 수 미달이 났다. 즉, 비이공계 대학원은 정말로 전공에 진심인 자들, 그중에서도 현실적인 '여력'이 되는 소수의 사람들만 들어온다.
지원 과정에서 경쟁이 없다시피 하니 어디든 지원하면 거의 다 붙는다. 사실상 컨택에서 사전 면접이란 의미는 사라진 거나 다름없다. 대신에 컨택은 몇 안 되는 업계 현직자와의 1:1 Q&A 자리로 탈바꿈한다. 워낙 사람 수가 적으니 *박사넷이라는 유명 커뮤니티에도 연구실의 후기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연구실 생활, 월급 등 전반적인 사항에 대해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가 컨택인 셈이다.
또한, 사회적인 시선에서 문과 순수학문 대학원에 들어오겠다는 것은 대체로 박사 과정이든 연구직이든 해당 학문에 뼈를 묻겠다는 의사로 비춰진다. 교수님은 업계의 선구자로서 컨택 자리에서 학생이 생각하는 다음 목표에 따라서 앞으로의 진행 방향과 전략을 함께 논의할 수도 있다. 결론적으로 문과 대학원에서 컨택의 의미가 통상적인 기준과 약간 다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컨택 없이도 합격은 가능하겠으나 부담은 적고 중요도는 높은 귀중한 기회이므로 컨택을 잘 활용하자.
한편 여기서 나는 전공을 사랑하기만 하던, 대학원에 가서 학문의 경계선을 보고 싶다-라는 막연한 마음만 가지고 있던, 해맑은 인간이었다. 교수가 되고 싶은지, 연구직이 되고 싶은지 아무런 목표도 없었다. 연구실과 지도교수님을 골라야 하는데, 모든 전공 수업이 좋다 보니 세부 전공을 고르지 못했다. 앞서 살펴보았듯 세부 전공이 나뉜다 해도 결국 문과 순수학문의 취업 경쟁력은 거기서 거기이다 보니, 달리 판단할 만한 기준도 없었다.
그나마 떠올린 게 학부 때 가장 좋아했던 수업의 담당 교수님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정한 게 없으면, 우선 모교라는 익숙한 환경에서 마음 가는 연구 주제 방향을 찾아보라는 조언을 그대로 따랐다. 단 한 번의 컨택만으로 내 앞 날을 결정한 것이다. 컨택 자리에서 알차게 콘텐츠를 뽑지 못하고, 해당 교수님의 인품과 능력에 대한 확신만 얻고 냅다 모교 대학원에 지원했다. 그 후 절차는 모교 출신-이라는 이름 하에 큰 문제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합격하고 한참 뒤인, 개강 후 일주일이 지난 대학원 OT 때였다. 대학원에도 OT가 있냐고? 그 뒷 이야기는 다음 편에 이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