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 보세요"

by 능소니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가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대학원' 관련 밈은 학생 수에 비해 어디에나 넘쳐난다. 해당 밈들에서 대학원은 대체로 가면 안 될 곳, 교수에게 속은 순진한 학생들이 갇히는 곳처럼 묘사된다. 옛날 망태할아버지 괴담처럼 수업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학생들은 교수가 '잡아간다'는 것이 공통된 표현이다.


그리고 나는 전공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좋아하는 과목만 열심히 했기에 전체 성적은 평범했지만, 동기들과 비교하면 그 누구보다 전공에 진심이었다고 자부했다. 나의 전공 사랑이 어느 정도였는가 하면, 익명 뒤에 숨어 강의평가로 교수님께 수업시간을 늘려달라고 했을 정도였다. 시험기간이 아닌 평소에도 도서관에서 전공 도서를 탐독하고, 과제는 받은 당일부터 열과 성을 다해 제출했다. 그 결과 교수님들의 칭찬도 많이 받았고, 내 과제는 다음 연도 학생들에게 제공할 강의 자료에 포함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대학원으로의 진로를 고민할 때 어머니의 반대만 생각했을 뿐, 내가 잘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걱정은 그다지 생각하지 않았다. 전공이 순수학문에 속하는 만큼, 대학원으로 진학하는 수가 많지 않으니 교수님들도 나를 반길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여러 교수님들과 면담을 하는데,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세요."


아니, 무릇 교수님이란 존재는 어떻게든 학생들을 대학원으로 끌어모으고자 혈안이 된 사람들이 아닌가? 대학원에 들어오는 것을 말리다니?


교수님들의 요지는 요약하자면 이랬다- 이때 나의 전공은 '사회학'이었는데, 공학도들과 달리 문과, 그중에서도 순수학문은 가방끈이 길어진다고 해서 나의 미래를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 매우 힘들고 지난한 과정이 될 텐데, 그 기간 동안 취업을 한 다른 또래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작아지지 않을 수 있냐는 물음이었다. 그러면서 한 번이라도 뒤를 돌아보지 않을 자신이 있을 때 대학원에 들어오라고 나를 돌려보냈다.


당시 나는 그 흔한 휴학도 한 적이 없는 학생이었고, 오로지 대학원만 바라봤던 차였다. 여러 명의 존경하는 교수님들이 엄청나게 겁을 주자 내가 정말 세상물정을 모르나 싶어 도망쳤다. 그후 비상경 계열의 많은 학생들이 으레 그렇듯 고시 공부도 잠깐 해보고, 회사도 다녀보았다.


고시 과목은 내용 자체가 크게 어렵지는 않았으나 시험 합격을 위해 사소한 부분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게 적성에 맞지 않았다. 회사 생활은 특별하지 않았다. 학생 신분에서 막연히 부풀려 상상한 '직장인'의 무게가 막상 접하니 별 게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정해진 일과대로 흘러가는 회사 생활에 익숙해지자 대학원 진학에 대한 미련이 다시 생각나기 시작했다.


연애와 결혼에 별 뜻이 없으니 자금도 빨리빨리 모였다. 이 정도면 이제 열정만 넘치던 애송이는 아니지 않을까? 웬만한 경험 다 해본 셈이 아닐까? 대학원에 입학해도 되지 않을까?


몇 년 만에 다시 교수님들을 찾았을 때 교수님은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았고, 그렇게 20대 후반에 나는 대학원에 입학했다. 대학원 수업을 위해 근무시간을 조정해 주겠다던 회사를 아예 때려치운 채 '전업 대학원생'이 되었다.


그리고 펼쳐진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경험도 각오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매일매일이 고비고 흑역사였다. 전력으로 달려야 제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앨리스의 이상한 나라에 갇힌 것 같았다. 석사 과정을 막 마친 이제야 진정으로 대학원 밈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나아가 공대생들 위주의 대학원 후기와 다른 지점들도 몸으로 부딪히면서 깨달을 수 있었다. 살면서 해 본 적 없던 후회를 대학원에 들어와서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 수가 너무나 적어 김박사넷에도 존재를 찾아보기 힘든 문과 대학원생의 삶, 미래의 누군가는 참고할 수 있기를 바라며 피땀눈물로 기록을 남긴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