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 대학의 현실

by 능소니

수능이 끝난 후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고 많은 사람들은 곧바로 대학에 들어가지 않는다. 보통 정식으로 개강하기 전 OT(오리엔테이션)라는 사전 모임 자리를 갖는다. 학교에 따라서는 미니배움터나 새로배움터라고 부르기도 한다. 보통 OT에서는 학교의 지리와 편의시설 안내를 비롯하여 수강신청 하는 법 등 대략적인 학교 생활을 위한 노하우를 전수받는다. 그 과정에서 선배와 동기들과 안면을 트며 소속감을 다진다.


그럼 대학원은 어떨까? 사실 학부 새내기 시절은 한참 지난 뒤라 처음에는 OT라는 존재를 떠올리지도 못했다. 그래서 아무런 생각 없이 털레털레 OT를 진행하는 강의실로 들어섰다. OT는 교수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에서 내 또래로 보이는 학생 한 명이 PPT로 진행을 하였다. 발표는 단 한 가지 명확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진행되었다.

어떻게 학기를 연장하지 않고 제때 졸업을 할 수 있는가?


OT에서는 졸업을 하기 위한 요건을 소개하고, 적절한 시기 졸업을 위해 각 학기 별 해야 할 일을 나열하고 있었다. 대학원의 학기는 수업 수강논문 작성- 투 트랙(two-track)으로 진행되는데, 이 두 과정을 동시에 나란히 끝마치기 위해 해야 할 일들을 시간 순서대로 일러주었다. 해야 할 일에는 놓치기 쉬운 사소한 행정 절차들도 꼼꼼하게 포함되어 있었다.


이어지는 내용에는 각 과정을 동시에 끝내지 못했을 경우에 일어나는 일들과 밟아야 할 추가 절차가 있었다.

- 수업 수강 (X) , 논문 작성 (X)

- 수업 수강 (X), 논문 작성 (O)

- 수업 수강 (O), 논문 작성 (X)

각각의 경우에 따라서 내야 하는 등록금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학생 신분 또한 달라지고 그에 따라 어떠한 변화가 생기는지 등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졌다. 심지어는 석사와 박사과정 모두 '제한 연한'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해당 기간 내에 졸업하지 못하면 입학금을 한 번 더 내서 1년을 연장할 수 있다는 팁(?)까지 있었다. 여기서 제한 연한은 석사 7년, 박사 9년으로 갓 입학한 새내기에는 까마득한 수준이었다.


대체 다들 얼마나 졸업이 미뤄지길래 이토록 꼼꼼하게 일러 주는 거지? 그 답은 발표가 끝난 후에 알 수 있었다. 교수님들이 강의실을 떠나자 나처럼 충격 먹은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모여 방금 들은 내용에 대한 소회를 나누었다. 다만, 모든 이야기는 중국어로 이루어졌다. 그렇다! 나를 제외한 모든 입학생이 중국인인 것이었다.


나는 유일한 한국인 입학생이었고 발표를 진행한 학생은 나 이전의 유일한 한국인 학생이었다. 사실상 내 직속 선배나 다름없던 발표자는 석사 졸업식을 막 마친 상태였다. 그는 새로이 취직한 연구원으로의 첫 출근까지 남은 여유를 이용해 발표 자료를 준비해 준 것이었다. 요약하자면 근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발표자는 석사과정 중 유일한 한국인 학생이었고, 나 역시도 그렇게 되었다. 내가 석사를 수료할 동안 단 한 명의 한국인 후배도 생기지 않았다.


결국 OT는 점점 벌어지는 한국인 학생의 입학 주기로 인해 생기는 소통의 간극을 메꾸고, 매 학기 대여섯 명씩 꼬박꼬박 들어오는 외국인들을 위한 필연적인 가이드라인이었다. 참고로 내가 다니는 대학은 대학평가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이다. 그럼에도 서울대와 연세대를 제외한 많은 한국 문과 대학원에서 나와 같은 사례는 드물지 않다.


잠깐 사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자면, 나는 토종 한국인치고는 중국인에 대한 혐오가 없다시피 한 사람이다. 중국어를 할 줄 알고 그들의 문화를 알며, 소수자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의식적으로도 차별을 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실제로도 중국인 동기 및 후배들과 친하게 지내는 입장에서, 대학원에 들어오는 중국인들은 학부 때의 흔한 이미지의 중국인들과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현실은 현실이다. 왜 이렇게 중국인이 많으냐? 대학 입장에서는 몇 년째 동결 중인 한국 학생들의 등록금 대신 외국 학생들을 비싸게 뜯어먹을 수 있다. 그리고 외국인이 많아지면 대학 평가 항목 중 '글로벌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며, 높은 대학 평가는 더 많은 국가 보조금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그럼 외국학생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우리나라 대학이 비싼 등록금에 대응하는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할까? 그 정도 가성비는 아니다. 등록금 외에도 한국 생활에 필요한 부대비용 등을 생각할 때 결국 올만한 학생들은 근접 국가 학생뿐이다. 그렇다고 공학을 전공하기는 겁나니 상대적으로 만만해 보이는 문과 대학원으로 몰리는 것이다.


무엇보다 현재 중국은 5~10년 전의 한국의 모습과 같다. '고령화 속도'만을 놓고 보았을 때 최근 중국이 한국의 기록을 깬 것을 아는가? 급격한 인구 구조와 경제 변화는 한국이 먼저 경험한 선배로서 많은 관련 연구가 진행되었다. 반면, 중국은 이제 막 변화를 체감하는 입장에서 현지 실증 연구는 적고 한국의 사례를 참고하기 딱 좋다. 즉, 문과더라도 한국에서 딴 학위는 본국에 돌아갔을 때 메리트로 작용할 수 있다. 꿈도 희망도 없는 나와 달리 말이다. 그러다 보니 학부 전공과 무관하게 많은 중국인 학생들이 한국에 몰린다.


문제는 나다. 아무리 중국인 학생들이 한국어를 잘해도 모국어가 아닌 이상 배려를 안 할 수는 없다. 세미나 수업? 심도 있는 토론과 논박은 불가능하다. 심지어는 출신 학부 역시 천차만별이다 보니 강의식 수업 내용 역시 기초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아니, 대학원까지 와서 학부 1학년 때와 똑같은 내용의 수업을 반복한다고? 시작은 같을지라도 끝은 다를지니.



다음 편에서는 대학원의 구체적인 수업 과정을 살펴보겠다. 오늘 분량상 미처 다 살펴보지 못한 수업 수강과 논문 작성, 투 트랙에 대한 정보성 설명 역시 앞으로 여러 편에 걸쳐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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