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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Mar 06. 2022

외국계 회사는 처음이라서 2

스마트행 열차에 탑승 중입니다.


공부 못 하는 사람이 도구 탓한다



는 말은 좀 별로다. 도구 탓이 맞을 수도 있거든.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경의 지배를 받지 않나. 외부 자극을 끊임없이 받도록 설계된 것이 인간인데. 당연히 좋은 연필을 붙잡고 질 좋은 노트에 필기하면 멋진 기분이 드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실제로 나는 매년 똑같은 일기장을 구입하고, 손 닿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삼색펜을 놓아둔다. 나에게 딱 들어맞는 메모 앱이나 전자 기기를 찾기 위해 고민했던 시간들도 어찌나 많은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시간들은 전혀 아깝지 않다.


이 회사도 그걸 아는 모양이다. 스마트한 도구를 제공함으로써 업무의 효율을 높여주고자 최선을 다하는 느낌. 이것을 "외국계 회사이기 때문"이라 꼬집어 말하긴 어렵지만, 전반적인 환경이 비교적 스마트하다는 사실은 꼭 기록해두고 싶다.



구글 도구


우리 회사는 기본적으로 구글 도구를 이용한다. 메일이 구글 기반인 것은 물론이고, 구글 드라이브를 통한 문서 공유를 당연시한다. 여러 사람이 한 문서에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보니 최종 / 최종의 최종 / 진짜 최종 같은 문서명으로 혼란스러워질 필요가 없고, 업데이트된 상황을 빠르게 공유받기도 좋다. 구글 캘린더 역시 적극적으로 사용 중인데, 서로의 빈 스케줄을 조회할 수 있기 때문에 미팅 잡기가 편하고, 따로 달력에 수기로 기록할 필요가 없어 무척 편리하다. 이를 통해 전 세계의 회의실을 잡거나 화상 회의 링크를 쉽게 생성할 수 있는 것도 매력 포인트.


이런 시스템 자체가 혁신적이라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사용하고 있는 구글이니까. 중요한 건, 이 도구들의 효용성을 직원들이 충분히 이해하여 범용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고방식을 틀에 맞추는 건 위험하지만 도구의 통일은 확실히 협업의 효율을 높여주니까.

 

아쉽게도 제작팀 안에선 이런 도구 사용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인하우스 피디뿐 아니라 프리랜서 작가팀 & 외주제작사 연출팀이 함께 모여 일을 하는데, 모두들 한글 문서와 카톡을 기반으로 하는 제작 환경에 이미 적응되어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갈아타는 것보다 기존 방식을 유지하는 것이 더 빠를 때가 있지 않나. 지금은 양 쪽 시스템 사이에서 열심히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제작 환경도 조금씩 바뀌리라 짐작해 본다. 벽면에 수기로 적은 달력을 공용 캘린더가 대체하고, 수많은 카톡방 파일함 대신 드라이브를 더 익숙하게 여기는 그날 말이다.



스마트 룰


일을 하는 장소가 자유롭다는 점도 무척 긍정적인 포인트다. 구글 시스템과 줌콜(Zoom Call), 줌챗(Zoom Chat) 등을 업무에 적극 이용하다 보면 내가 있는 위치는 딱히 중요한 것이 아니게 되거든. 최근엔 글로벌 스탠더드에 따라 자유 좌석제까지 도입했다. 모든 자리를 비워둠으로써 누구든지 앉고 싶은 곳에 앉도록 한 것. 직원들은 그날그날 마음에 드는 자리를 선택하면 된다.


어느 자리를 선택하든 모션 데스크를 쓸 수 있다. 출처 Vanguard Interiors


심지어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재택을 장려하고 있어서, 줌 회의를 할 때면 재택근무 중인 사람이 한두 명씩 들어있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코로나를 차치하고라도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대 아닌가. 집이나 카페에서도 충분히 근무할 수 있도록,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일할 수 있도록, 이 회사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다. 자기 주도 하에 일을 할 수 있는 판. 이것은 어쩌면 직원들을 무척이나 믿는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이것도 제작팀은 예외다. 아무래도 한 회의실에 모여 대화해야 아이디어도 나오고 그걸 즉각적으로 버무릴 수 있기 때문. 여러 가지 일들이 유난히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된다는 특징도 모여 일하게 하는 데에 한몫하는 것 같다. 편집을 시작하면 별수 없이 편집실 붙박이가 되는 것 역시 당연한 일.
하지만 여전히, 로마에선 로마 법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일도 많아 정신없는 상황에 시스템까지 건드리는 건 참 힘든 일이지만, 몇 년 걸리더라도 차근차근 변화를 일구어보고 싶다. 좋은 쪽으로의 변화를 장려하는 회사, 새로운 환경을 위한 룰을 계속 만들고자 하는 회사, 그런 외국계 회사로 내가 이직한 이유 중 하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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