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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Sep 14. 2022

코로나를 보고 간 시간여행자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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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이나 자연재해 같은 끔찍한 소재의 콘텐츠를 접할 때면 상대적 안도감이 차오르기 마련이다. 결코 겪고 싶지 않은 일들을 관망하는 특별한 경험에 더하여, 그 안도감은 모종의 기쁨마저 선사한다. 무섭게 몰아치는 전염병은 어떻게 인간 삶을 잠식하는가. 그 과정을 영화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 책을 끝낸 날. 애석하게도 나는 코로나 확진 문자를 받았다.



코로나라는 짙은 여운을 남겨준 책



물론 책 속의 전염병은 현실에서 마주한 코로나보다 훨씬 무자비하다. 감염되자마자 눈의 흰자위게 붉게 물들고, 호흡이 가빠지면서 이삼일 내로 사망하는 인수공통 전염병. 발병부터 사망까지의 속도와 증상, 그리고 사망률을 견주어 보면 코로나는 아무것도 아닌 듯한 착각에 빠진다.


서서히 죽어가는 도시를 전지적 시점이 아닌, 그 내부에 있는 사람들과 개들의 시선으로 바로 옆에 서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역사적 순간보다도 절망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다못해 먼 과거의 독립군에게도 희망이라는 건 있지 않았을까. 소방차를 이곳저곳으로 달려도 어차피 모두가 죽어야만 끝나는 상황. 그저 버텨볼 뿐 결코 탈출할 수는 없는 현실. 오직 좌절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이 소설 속 화양시의 설정은 가장 깊고도 깊은 고통의 끝이다.


재밌는 건, 그 속에서도 욕망과 신념 사이에서 싸우는 인간들이 갈등하고 반목하고 대화하고 싸워나간다는 점이다. 썰매를 타고픈 욕망과 개들을 지켜야 한다는 본분으로 대표되는 재형의 마지막은, 고통의 끝에서도 욕망 또는 신념을 기어코 지켜내고야 마는 인간 본성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저 장면을 그리기 위해 이 대서사시를 끌고 온 것인지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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