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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Sep 14. 2022

전통은 사실 생물이라는 읊조림

미드나잇 아시아 - 서울


링크드인을 통해 초면인 촬영감독 한 명과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의 포트폴리오 중 가장 흥미로워 보인 것이 이 작품이어서, 언젠가 볼 영상으로 기록해 두었던 것 같다. 중요한 선택을 한 기념으로 사치스러운 소고기와 사치스러운 위스키를 마신 어젯밤. 왠지 그 식사에 이 다큐를 페어링 하면 좋을 것 같아서 넷플릭스를 켰다.



아시아 도시들의 밤을 모아둔 보물 창고



전통이란 멈춰있는 게 아니라 움직이는 것
서울의 밤은 앞으로 나아가는 걸 잠시 멈추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 짓는 시간



다이나믹 아시아의 서울 에피소드는 "뉴트로"라는 말로 대표되는 "전통의 흐름"에 대한 생각들을 전한다. 



이태원



이태원에서 통닭집을 해 온 노부부는, 그들의 20년 인생이 곧 서울의 역사라고 말했다. 휴가 가시라는 젊은 손님들에게 이태원만큼 재미있는 곳이 어디 있겠냐는 할머니라니. 이태원엔 할머니가 어울리지 않는데? 라는 선입견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를 곧 깨달았다. 이태원 토박이에게 이태원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말이 어딨어. 사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원주인인 것을.



성수



핫 플레이스로 여겨지는 성수에서 막걸리에 뉴트로를 들이붓는 사람도 있었다. 별 것 아닌 저렴한 술을 고급화하면 그 안에 담긴 역사도 고급화되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한국인처럼, 샤이하지만 열정적인 성격이라 자신을 소개하는 막걸리 대표가 말했다. 예전 같았으면 꾸며낸 포부라 생각했을 텐데. 창업의 목적은 오직 돈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하지만 이제, (적어도 창업 세계에서만큼은) 이상적인 꿈이 없다면 성공도 없다는 걸 알고 있다.



홍대



이날치의 현재는 보컬 이나래 할아버지의 과거와 연결된다. 그래서 그들의 발자취는 모두의 것이 된다. 하긴, 국악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다는 시도부터 이미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지 뭐야.



강남



강남의 전통 시장은 70년간 골목의 정체성이 유지된 공간이다. 빠른 공간(서울) 중에서도 가장 빠른 공간(강남)에서, 유일하게 멈춰있는 공간(영동 시장)을 멋지게 흘러가도록 만들고 싶다는 칵테일바 장생건강원의 레오 서 대표. 왜 너는 너희 나라 술로 칵테일을 만들지 않아? 라는 질문이 유명 호텔의 바 매니저였던 그를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들었다.






전반적으로 전통이라는 개념에 활동성을 더한다는 발상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전통이라는 건 그 위에 젖은 빨래처럼 걸쳐져 있는 줄 알았는데. 마치 생물처럼 살아 숨 쉬며 같이 발돋움하는 존재였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무척 빠르게 움직이는 이 거대 도시에서 너도 뒤처지지 않으려고 제법 노력 중이구나, 그렇다면 나도 그 노력에 숟가락 하나쯤 얹어 볼까, 생각보다 재밌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서울에 사는 우리 모두가 그 일을 이미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우스꽝스럽지만 진지한 생각을 곰곰이 하며, 소고기와 위스키를 마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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