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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Oct 30. 2022

찾아올 인연이 찾아오는 이야기

시절인연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참 좋다. 모든 사물의 현상은 특정한 시간과 공간이 맞아떨어져야 일어난다는 뜻이라는데, 참 불교 용어답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유아세례를 받은 카톨릭 집안의 사람이지만, 모든 것엔 운명과 인연이 있고 그 인연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불교 특유의 사상엔 언제나 매력을 느낀다. 학교 다닐 때에는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말에 꽂혀서는 친한 친구들 (그리고 계속 친하게 지내고 싶은 친구들) 의 옷소매에 내 옷소매를 괜히 부비고 다녔더랬지. 아무튼 그래서 이 영화를 본 것 같다. 포스터에 큼지막하게 실린 탕웨이 얼굴도 좋았지만 그 위에 아름다운 필체로 적혀 있는 이 네 글자가 좀 더 마음을 끌어 주었다는 이야기다.



가을의 탕웨이 & 오수파 시리즈 첫 번째



영화에서 북경과 시애틀이 만난 것은 지극한 우연이다. 돈을 가졌지만 위험한 이륜차에 오른 채 위태로운 사랑을 하는 천방지축 북경. 못생긴 감자처럼 뜻하지 않게 어그러진 가족 환경 때문에 못내 힘겨워하는 점잖은 시애틀. 그들이 이상한 우연으로 만나지 않았으면,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둘 사이의 거리를 좁혀준 산후조리원 사람들이 있지 않았으면, 그들이 시애틀 한가운데에서 다시 만날 일은 아마 없었을 거다. 물론 영화에서는 언제나 영화 같은 우연이 나온다. 하지만 그러니까 영화지, 라기보다는 종종 현실에서도 일어나는 그런 우연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높은 밀도로 채워진 우연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필연이겠지만 사실 우리 삶은 온갖 우연 투성이니까. 그리고 삶이란 원래 수많은 시절인연이 실타래처럼 얽힌 채 흘러가는 존재이니까.



불꽃놀이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이 사실 불꽃놀이는 끝나지 않는다는 걸 알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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