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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제 Nov 08. 2022

일상의 틈에 깃든 행복 이야기

크루아상 사러 가는 아침


겨울에서 여름까지의 시간이 걸렸다. 겨울 여행으로 강릉을, 여름 여행으로 부산을 다녀왔으니 강릉부터 부산까지의 거리감만큼이나 오래 달려 읽어온 셈이다.


고백하건대, 읽기를 멈추었던 건 조금 지루해서였다. 전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문장들의 형용을 견디기에, 지난 봄의 나는 마음이 무척 조급했다.


봄이 흘러가고 한여름이 지나면서 크루아상을 다시 떠올렸다. 어두운 새벽에 일어나 따뜻한 크루아상을 사서 돌아오는 아침 산책길의 묘사.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강낭콩을 씻고, 주머니칼을 만지작거리고, 익은 사과 향을 맡고, 신문을 읽고, 영화관에 갔다가 몽파르나스 역의 무빙워크를 타고 돌아오는 일련의 일상을, 하루의 흐름과 계절의 흐름에 따라 담담히 기록하고 있었다.



잘하면 정원에서 점심 먹어도 될 것 같은데. 이 말은 매번 같은 순간에 떠오른다. 예정을 바꾸기에는 이미 늦은 것처럼 보이는, 식탁으로 이동하기 직전이나 채소 샐러드가 식탁 위에 놓인 다음에야 말이다. 너무 늦었다고? 미래는 당신이 하기 나름이다. 아무튼 정원에서건 실내에서건 그건 그닥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잘하면 정원에서 점심 먹어도 될 것 같은데" 라는 짧은 문장이 떠오른 그 순간이다.

조건법 시제로 표현할 수 있는 삶은 멋진 삶이다. 어렸을 때 우리는 모두 "네가 ~ 이 되었다고 상상해봐" 라며 놀지 않았던가. 하나의 소박한 판타지라 할 수 있는 그 삶은 집 안에서 치러지는 절차의 순서를 바꾸기만 하면 얻을 수 있다.

< 잘하면 정원에서 점심 먹어도 될 것 같은데 > 중에서


겨울에도 이 부분은 좋았고 한여름이 된 지금도 좋다. 집을 마음껏 정돈해 나가며 느끼는 활력과 자유. 가장 일상적인 행복에 대한 부분.


옮긴이의 말처럼 이제 우리에겐 행복도 의무이자 부담이다. 비교에 발을 딛고 행복을 전시하는 세상을 비난할 수는 없을 만큼, 그것은 이미 무척 가치로운 일이 되어 버렸다. 어쩌다 보니 동시에 의무이자 부담이 되었을 뿐이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일상성은 행복을 죽이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책의 저자 편에 서고 싶다. 회사에는 없는 행복. 내 시간에서 찾는 행복. 딱히 대단하지 않은 그런 행복은 결정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없어도 충분히 소중한, 일상의 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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