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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ie Coree Feb 15. 2022

자기 감수성 정도는

自分の感受性くらい

  77년 전 오늘은 윤동주가 마지막으로 하루 24시간을 남김없이 살았던 날이다. 그날의 그보다 나이를 훌쩍 넘긴 지가 언젠데 아직도 나는 뭐 이렇게 한 점 두 점 셀 수도 없이 부끄러운 점이 많은 건지.


  그가 생전에 만났다면 좋았을 것 같은 시인이 있다. 이바라기 노리코. 윤동주를 좋아해 일본에 널리 알리는 데에 결정적으로 큰 역할을 한 인물.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 문학에 관한 책들을 내기도 했다. 그녀도 분명 그의 시를 읽다가 자기 심장 소리를 듣고는 했겠지. 


  이바라기의 존재를 처음 알았던 건 학부 시절에 한국어 과외를 해 드렸던 분께서 내 졸업 후 귀국 선물로, 좋아하시는 시 한 편을 카드에 필사해 주셨을 때였다. 재학 기간이 겹친 적은 없지만 10년 정도 선배시기도 했던, 유능한 역사 교사였던 그는 아예 휴직을 하고 반년 정도 한국어학당으로 유학까지 올 정도로 열성이셨다. 써 주신 시를 한국어로 번역해서 답례로 써 드렸으면 공부에도 자극되고 기뻐하셨을 텐데,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게 괜히 아쉽다. 아니, 아마 한글로 직접 번역해 보시라고 숙제를 내 드리는 편이 더 좋았겠다. 얼마나 환하게 웃으셨을지 눈에 선하다. 




自分の感受性くらい      -茨城のり子-

자기 감수성 정도는       -이바라기 노리코-


ばさばさに乾いてゆく心を

ひとのせいにはするな

みずから水やりを怠っておいて

파삭파삭 말라 가는 마음을

남 탓하지 마라

스스로 물 주기를 게을리 해 놓고


気難しくなってきたのを

友人のせいにはするな

しなやかさを失ったのはどちらなのか

서먹해진 사이를

친구 탓하지 마라

유연함을 잃은 건 어느 쪽이냐


苛立つのを

近親のせいにはするな

なにもかも下手だったのはわたくし

짜증 나는 것들을

가족 탓하지 마라

무엇이건 서툰 건 나였으니


初心消えかかるのを

暮らしのせいにはするな

そもそもが ひよわな志にすぎなかった

초심 사라지려 함을

먹고살기 탓하지 마라

애초에 약해 빠진 의지에 불과했다


駄目なことの一切を

時代のせいにはするな

わずかに光る尊厳の放棄

안 되는 일 모두를

시대 탓하지 마라

가까스로 빛나는 존엄을 내버리고


自分の感受性くらい

自分で守れ

ばかものよ

자기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켜라

바보 같으니라고




1977년 시집 『자기 감수성 정도는自分の感受性くらい』에 수록.



  아직 많이 읽어 보진 않았지만, 이바라기 노리코의 시에서는 시린 가슴과 따뜻함, 섬세함과 강인함, 좌절과 일어섬, 배려와 솔직함, 수용과 자율성 같은 것들이 동시에 느껴졌다. 겨울과 봄이 섞인 시기의 바람처럼. 같을 수는 없지만 윤동주의 시에서도 다분히 느껴지는 것들. 아마도 공명했던 것 아닐까.



  초벌 번역 후 시의 전체 느낌과 원저자에게 짐작되는 배경 및 기품을 고려해서 조금씩 수정했는데, 개인적으로 마지막 행은 처음 썼던 이쪽도 좋다.


자기 감수성 정도는

스스로 지켜라

바보 멍청아


그냥 

바보야도 깔끔해서 괜찮지만 운율이 아쉽고,

바보 녀석아도 괜찮으려나 싶지만 녀석은 일단 사전상 사내를 일컬을 때 쓴다는 규정이라, 만약 한국어 학습자가 보면 혼선을 빚을지 모르니 혹 개정되면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한다. 현대인들은 이미 여성에게도 많이 쓰니까.






  도쿄에 갈 기회가 생겨서 우리 곧 만나 놀자며 서로 신났었는데... 아직 원전 사고로부터 1,2년이 채 안 된 시기였다. 아부지가 먼저 지인 따라 일본 갈 일 생겼다고 나도 데려가 주신다 했던 건데, 주변에서 말린 건지 뭔지 결국 방사능이 우려된다며 취소하셨다. 나는 2,3일 정도는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혹시 모르니 책임질 수 없는 주장을 고집할 수도 없었다. 쓸데없이 솔직하게 아부지가 원전 사고 때문에 걱정되는지 취소하셨다고 얘기해 버렸고, 선배는 티 내지 않았지만 도쿄에 쭈욱 살 입장에서 들으면 아픈 곳을 헤집는 격이었다. 그럼 그냥 혼자 갔다 올게요 하고 훌쩍 다녀오기도 뭐했던 상황이라 짜증만 났다. 서툴게 솔직하기만 했던 내 잘못인데. 그럴 거면 애초에 말을 꺼내지 마시지라며 아부지 탓만 했고, 원전 사고만 괜히 원망스러웠다. 선배와는 그길로 점점 서로 먹고살기 바쁜 듯 연락이 뜸해졌다. 이런. 초심이...ㅜㅜ 그래도 그다음 해 즈음인가 결혼식에는 조금 무리해서라도 도쿄까지 가길 정말 잘했다. 코로나 같은 방해물이 없을 때라 그나마 다행이었지. 

  사람은 언제 어떻게 소원해질지 모른다. 해마다 반편성을 새로 하는 교육 제도 속에서 봄을 보내고(그러고 보니 그가 가르치는 고교는 3년 내내 같은 구성원으로 클래스가 유지된다고 했다.) 유목민처럼 살았던 여름날 탓인지, 살면서 겪는 만남의 대부분은 서로가 서로에게 스치고 오가는 접점 혹은 교차점이구나 싶지만, 그렇기에 더욱 그 소중함을 제때에 알아야 한다. 뒤늦게 후회 말고. 

  몇 년 전 다른 선배를 통해 소식을 전해 듣기도 했는데, 따님도 분명 사랑스럽겠지. 살짝 궁금하지만, SNS는 나 이상으로 안 하던 분이라 혹여 바쁜데 부담 드릴까 싶어 뜬금없이 사진이나 동영상 보여 달라고 연락할 생각은 들지 않는다. 활발히 교류하던 시절엔 스스럼없이 기념 사진들을 먼저 보내 주셨는데 유연함을 잃은 건 어느 쪽이냐. 나는 딱히 보여 드릴 게 없어서인가. 

  생각해 보니 선배는 이바라기 노리코랑 생김새의 분위기가 닮았다. 이바라기는 윤동주와 표정이 닮았다. 세 사람 다 눈이 맑고 미소가 담백하면서 멋지다. 솔직하고도 사려 깊게 표현한다. 사람은 자신과 닮은 사람을 자연스레 좋아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닮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또 내가 한국어를 너무 잘 가르쳐 드려서 삘 받아 유학까지 결심하셨나 했더니, 이바라기의 행적을 닮고 싶으셨던 건지도 모르겠다.

  K 언니의 가정이 언제까지고 행복하셨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기도한다. 내 마음에 물을 주는 기분으로. 





윤동주께 3.1절에


사는 동안 한 움큼만이라도 

당신의 시심을 닮기를

별이 반짝이는 속삭임에도

나는 부끄러워했어요

달빛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모든 살아 숨쉬는 것을 사랑할 수 있기를

그리고 내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갈 힘이 주어지기를


오늘 밤 하늘은 

바람 소리에 숨죽여 울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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