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라테스를 잘 하기 위해서, 혹은 필라테스를 명확하고 정확하게 안내하는 사람은 현재를 만족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에 아무리 잘 했던 것들도 시간이 지나면 잘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머무르는 것이 될 뿐이다.현재를 만족하면서 살아가면 마음은 편하지만 그저 편하기만 하다.
세상의 진리를 알기 위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수행자들이 편안해 보일까?
그들은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지금의 고통이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하고 성장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이데거는 말했다.
"우리는 세계 안에서 태어나 사유 작용을 통해 우리의 경험들 전부에 대해 반응한다."
하이데거가 탐구하고자 한 것은 우리가 존재하는 인간으로서 사고할 때 사유 작용의 가장 심오한 본성이었다.
<소크라테스에서 포스트모더니즘까지>
언젠가부터 하루를 단순하게 살아가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아무 사유 없이 세상을 힘들게만 살아가는 것이 문제인데, 오히려 ‘힘듦’이라는 형용사 자체를 삭제시키는 것이 옳은 생각으로 되고 말았다. 편안함만 추구하게 되면 인간은 사유하지 못하고 쾌락적이게 된다. 그것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동물과 다를 바 없다.
크리스마스였다. 아내와 장모님과 함께 대구에 있는 팔공산을 찾아갔다. 우리들의 간절한 기도를 위해서 찾아간 것인데, 둘러보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팔공산은 유명해서 전국적으로 찾아오는데,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산의 기운이 영험하다는 것도 있지만 기도를 해야 하는 갓바위까지 올라가는 여정이 유명하다. 가장 가까운 코스를 선택한다고 해도 1시간 소요되는 거리를 걸어 올라가야 한다. 그것도 평지 하나 없는 오르막길이다.
관음 휴게사에 주차를 하고 출발하면 도착까지 무조건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간다. 장모님은 마라톤을 하셨기 때문에 체력이 좋으시고 아내와 나는 필라테스로 단련이 되어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올라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호흡을 거칠게 내쉬며 힘들게 올라갔다. 그곳에는 남녀노소 모두가 있었다.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그들은 어려움, 고통을 이겨내며 정상까지 걸어 올라갔다.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크리스마스에 힘듦과 육체적 고통을 느끼면서 팔공산 갓바위를 올라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사유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이 계속 파괴되는 것을 겪어야 한다. 어제 잘하고 있던 행위가 오늘은 짓밟혀야한다. 그럼 내일은 더욱 성장된 인간으로 변모할 것이다.
여기에는 필라테스 성장도 마찬가지다. 운동은 끊임없는 실패를 통해서 성장을 이루어낸다. 결국 뒤돌아보면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과정 중 겪어야 될 고통일 뿐이다.
거기에는 고통, 좌절, 내려놓음이 있다.
고통을 느끼기 싫고,
좌절은 더욱 싫고,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으면,
과거와 현재가 동일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렇다면 미래에는 동일한 사람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시간이 갈수록 퇴보된 인간이 될 것이다. 성장된 사람들 속에 있다면 평균점이 높아지면서 더욱 퇴보된 인간이 될 것이다. 이것은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다. 성장을 두려워하는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퇴보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영화 바닐라 스카이 주인공 데이빗(톰 크루즈)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의 이상함을 느낀다. 돈과 명예가 충만하고 모든 것을 이룬 인생을 살아가지만 무언가 잘못됨을 느낀다. 그는 실존적이고 사유하는 인간이다. 그렇기에 편안했던 세계를 벗어던지고 고통스러운 자신의 실제 세상을 향해 몸을 내던진다.
다른 시선으로 바로 보았을 때 데이빗의 선택은 무모할 수도 있다. 관념론자 입장에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현실이라고 말할 수 없다. 데이빗이 살아가던 가상의 세계는 데이빗의 관념으로 만들어낸 세상이다. 그렇다면 관념으로 이루어진 세상도 현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하게 "데이빗의 선택은 가상세계에서 현실 세계로 이동되었을 뿐이야." 이렇게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는 현실에서 또 다른 현실을 선택한 것이다. 심지어 편안함을 추구할 수 있는 세상에서 지옥이 될 수 있는 현실로 나아간다.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려고 하면서 당신은 자신을 억압하게 되는데, 사실 진정으로 참된 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당신이다. 만일 다른 사람과 똑같이 자신을 탐구한다면 당신은 항상 남의 말만 듣고 따라가는 이차적인 인간에 머무르게 된다.
<아는것으로부터의 자유, 지두 크리슈나무르티>
운동은, 클래식 필라테스는 어렵고 힘들다. 그리고 인생은 고통스럽다. 앞서 말했듯이 고통은 인간은 성장시킨다. 그리고 맞서야 한다. 정체되어서는 안 된다. 정체된 자신을 마주하고, 고통을 맞서서 스스로의 자아를 성장시키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진정한 삶이다. 모든 것을 가졌던 세계를 벗어던지고 고통스러운 세계를 향해 당당하게 몸을 내던진 데이빗은 진정한 삶을 얻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있어서 필라테스에 대한 성장은 혹은 운동에 대한 성장은, 현재의 삶에 대한 끊임없는 회의와 실존적임을 느끼던 데이빗처럼, 강사로서 겪어야 할 회의, 실존을 느끼며 고통스러운 현실 세계 속으로 달려가는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