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고 나가면 신선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숲 속 오두막. 창가 책상 앞에 앉은 나는 간단한 스트레칭 후 차를 한 모금 마신다. 노트북을 열고 손가락을 폈다 오므리며 손을 달군다. 영감을 따라잡기 위해 마구마구 타이핑을 하며 완전한 몰입을 즐긴다. 그러던 중 누군가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에 한숨 돌린다. 어깨 한 번 쭉 펴고 그가 가져온 정갈한 식사를 든다. 산책을 다녀온 사이 방은 깔끔하게 치워져 있다. 조금 피곤하다 싶으면 책상을 등지고 있는 새하얀 침구에 풍덩 하고 몸을 던진다. 거기서 책 두어 권을 뒤적이다 쓰고 싶은 마음이 차오르면 다시 책상 앞에 앉는다.
그런 글감옥을 상상했다. 집안일 할 필요도 끼니를 때울 필요도 없이 쾌적하게 나의 글쓰기에만 매진할 수 있는 시공간을 늘 꿈꿨다. 쓰는 마음이 손가락 사이 모래알처럼 스르륵 빠져나갈 때는 각종 메모와 책들로 혼란한 내 책상 때문이라며 환경 탓을 하게 된다.
백조 모양으로 접힌 수건이 무색하게 등받이 있는 의자를 갖췄다는 이유로 예약한 호텔.
그래서 글쓰기 여행을 많이도 떠났다. 나의 환상에 가깝게 얼추 구색을 갖춘 글쓰는 공간을 찾아 여러 도시와 섬들을 떠돈 적이 있다. 2017년 발리 여행도 그랬다. 신혼 여행지에 노트북과 각종 자료를 끼고 갔다. 호텔 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개 많은 호텔 방이 책상은 있지만 등받이 없는 의자를 쓰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적합한, 등받이가 있는 의자가 있는 방을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매일 밤 부킹닷컴을 들락거린 끝에 위치도 몽키포레스트(난폭한 원숭이가 사는 숲인데 유명 관광지이다. 정작 호텔에 머물며 한 번도 찾지 못했다)와 걸어서 5분이고, 근처에 요가원이 있는 호텔을 찾았다. 그렇게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우붓이라는 동네에 머물기로 했다.
역시 호텔방은 신혼여행지답게 백조 모양으로 접힌 수건과 웰컴 프루트가 있었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수영장이 보였다. 쓰다가 지치면 저기에 뛰어들면 된다! 캐리어를 열어 고이 모셔온 노트북부터 책상 위에 세팅했다.
결과적으로 여행 내내 노트북은 아예 켜지도 않았다. 휴양지에서의 글쓰기는 마치 신라호텔 파크뷰 뷔페에 뚝 떨궈놓고는 단식 투쟁 하라는 격이었다. 그곳에서 장기간 머물며 공유 오피스에서 일을 하는 노마드족도 있었지만 달랑 일주일 휴가 내고 온 직장인에게는 눈 앞의 트레킹과 미식을 즐기는 일이 더 급선무였다. 야심차게 기획한 첫 글쓰기 여행은 자괴 폭탄과 엄청난 신용카드 청구서만 남겼다.
그 후로도 비슷한 글쓰기 여행을 시도해봤다. 바다가 보이지만 주변 편의시설은 하나도 없는 제주도 숙소에 나를 2박 3일간 가둬보기도 하고, 전망 좋은 서울 한 호텔에 떨궈보기도 했다. 여러 시도 끝에 글쓰기 여행은 성립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왜냐면 글쓰기는 내게 어느 정도 '일'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휴가는 글쓰기의 영감을 충전하는 온전한 시간으로만 써야지 거기서 노트북을 꺼내면 안 된다. 괜히 노트북 챙겨갔다가 놀지도 못하고 글도 못 쓰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만 생긴다. 그저 여행지에서는 메모장 펼치고 끄적이는 수준의 글만 써도 충분하다. 내가 써야 하는 글은 집중해서 끝내야 하는 '서울의 시공간'에 더 가깝다. 결국 나를 서울 홍대 앞 토즈 스터디룸에 가두고서야 그때 써야했던 글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삼시세끼 가져다 주고 딱히 방해하는 이 없는, 글쓰기 최적의 환경을 찾았다.
한동안 글감옥에 대한 환상은 접어두고 있다가 최근 쓰기 딱 좋은 글감옥에 입소했다. 병원 입원실이었다. 숲이나 바다 풍경은 보이지 않아도 나름 도심뷰를 자랑하는 7층 병실. 가벼운 교통사고로 입원했고 죽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통증을 줄여주는 주사를 맞고 오면 두 세 시간은 말짱했다. 때 되면 영양가있는 밥상 가져다주고 치료 받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딱히 방해하는 이도 없다. 헤드가 70도까지 올라오는 침대에 기대 오랜만에 다시 쓰기 시작했다. 환자들이 잠든 밤 휴게실 의자에 앉아 쓰는 맛도 쏠쏠했다. 무엇보다 하루 종일 심심하고 갑갑하니 뭐라도 써봐야지 하는 생각이 불쑥 올라오는 것이었다. 뒷목 쩌릿한 통증이 올라올 때면 '나는 왜 재수없게 교통사고를 당해 여기에 있나' 억울하다가도 '이참에 글쓰기 요양원에 온 셈 치지' 하고 쓰기 싫어 죽겠다는 하소연이라도 이렇게 실컷 늘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