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검사, 5년의 숙제
억지 희망은 품지 않아요
솔직히 말하면 나는 항암치료보다 3개월 마다 있는 추적검사에 가는 일이 더 꺼려진다. 당사자인 아빠에겐 항암치료가 무엇보다 두렵겠지만 타인이 몸으로 느끼는 아픔에 공감하기란 제아무리 가족이어도 쉽지 않다. 당장 재발과 전이를 불안해하는 내 마음의 고통이, 한 단계 걸러 들어오는 아빠의 신체적 고통보다 더 크게 느껴진다고 하면 너무 섭섭하게 들리려나.
아빠의 근황을 묻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으로서는 더 치료할 것은 없고 3개월마다, 시간이 더 흐르면 6개월, 1년으로 그 주기를 늘려가며 추적 검사를 하는 일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5년을 무사히 보내면 의학적인 완치 판정을 받는다. 눈 감았다 뜨면 아무 일 없이 2026년 12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대개는 “그래, 잘 될 거야” 위로를 건넨다. 그러나 오로지 나와 아빠만이 공유하는 불안이 있다. 아주 객관적인 아빠의 상태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아빠가 앓고 있는 암종은 재발률이 굉장히 높고, 아빠의 기수에서는 그 확률이 약 50%이며, 이미 아빠 몸에 전이됐던 림프의 개수는 평균치를 훨씬 넘어선다고. 그래서 앞으로 남은 수 년간 재발과 전이를 각오하는 편이 더 현실적이라는 것을. 어떤 장기로의 전이는 사실상 수술이 어렵고, 그러한 이유들이 겹쳐 아빠와 비슷한 암을 겪은 사람들은 5년 후 절반 조금 넘게 살아남는다는 사실.
이건 진료실에 같이 들어가본 아빠와 나만 공유하는, 차마 언급하지 못하는 불안이다. 엄마는 이를 모르는건지, 아님 알면서도 낙천적 천성 덕에 덜 불안해하는 건지 모르겠다. 대책 없이 잘 될 거라고 믿는 가족 구성원을 보면 가끔 화가 오르기도 한다.
아빠는 언제 한 번 고백했다. 실은 암 진단 이후 다른 사람의 위로는 고맙긴 했지만 전혀 와닿은 적이 없었다고. 닥칠지 모르는 좋지 않은 상황을 함께 따져보고, '만약 이렇게 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이 올라올 때마다 다음 단계를 미리 일러주는, 불안을 공유하는 당사자인 나와의 대화만 위로가 됐다고 했다.
그렇다고 나와 아빠가 매사 닥치지도 않은 불운에 사로잡혀 있지만은 않다. 대개는 아무렇지 않은 듯한 하루를 보낸다. 만약 최악의 상황이 온다 할지라도, 그 상황에선 불안해하지 않고 흘렸던 일상들이 더 소중해질 테니까. 나에게 긍정성이란 어떤 천성보다는, 상황을 최상의 상태로 바꿔 나에게 확신을 주는 힘에 가깝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추적검사일이 다가오면 침대에 머리만 대도 이런 저런 잡생각이 든다. 특히 CT를 찍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더더욱 그렇다. 완치라는 이름표는 그 시간을 십수 번 견뎌내야만 주어지는걸까. 다시 치료를 시작하고 또 견디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또 무엇을 얻고 잃을까.
치료 기간 중 철저하게 몸 관리를 하던 아빠는 요즘 슬쩍 느슨해졌다. "빵 먹지마", "누워 있지마", "나가서 운동하자" 같은 잔소리가 가족의 일상이 됐다. 그러다 문득 당장 다시 치료에 들어가야 할 경우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그 좌절감을 이겨내는 데엔 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들까 아득해지기도 한다. 역시 느슨해진 보호자인 나는 전만큼 미래를 깊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은 억지 희망을 품기보다는 그저 주어진 일상을 충실히 이어가는 기쁨을 누리는 데 집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