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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Aug 07. 2022

세상에서 가장 슬픈 농담을 해보라

책 <글쓰기 좋은 질문 642> 중 256번째 글감 '세상에서 가장 슬픈 농담을 해보라'에서 시작한 글입니다. 이번 편은 픽션이 혼재된 하이브리드 에세이입니다.

 책 <글 쓰기 좋은 질문642> 중 256번째 글감책책 <글 쓰기 좋은 질문642> 중 256번째 글감

우리 아빠는 이거 없어. 의사가 잘라낸 울 아빠 장기는 의료 폐기물로 버려졌겠지. 구워먹게 나나 주지.


갓 익은 막창을 입에 넣던 A가 욱 하고 헛구역질을 하더니 엉엉 울어버렸다. A는 대장 끝에 붙어있는 직장을 잘라낸 아버지의 병구완을 막 마무리하는 차였다. 오늘 자리는 그런 A를 위로하기 위해 B가 만들었다. 대장부 같은 외양과 달리 속앓이 잘하는 B는 '왜 오늘 나는 곱창이 당긴 것인가' 공연히 자신을 탓했다.


'나는 그런 유사과학 따위에 휘둘리지 않는다'며 끝까지 자신의 MBTI 유형을 밝히진 않지만 초면인 사람이 봐도 'T(논리형) 오브 T' 일 게 분명한 C가 말했다.


야, 울려면 제대로 울어. 네가 지금 먹고있는 건 똥주머니가 아니라 위(胃)라고, 위. 소는 위가 네 갠데 그 중 마지막 위가 막창이고, 곱창과 대창이 각각 사람 장기로 치자면 소장과 대장이란다. 대창 하나 시켜줄 테니까 실컷 울어라.


"아, 그래?" 눈물을 훔친 A가 꿀떡 막창 한 점을 삼켰다. C의 냉소적인 핀잔에도 여전히 눈치를 보던 B가 생뚱맞은 고백을 했다.


"내가 얘기했었나? 우리 집 재혼 가정이잖아. 엄마가 나 임신했을 때 친아빠가 돌아가셨어. 지금 아빠는 그때부터 주욱 지금까지 엄마랑 같이 사는 거고. 나에게는 새아빠니 뭐니 할 것도 없었지. 태어나보니 지금 아빠가 우리 아빠였으니까. 우리 엄마 삶을 생각하면 난 요즘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 내 위로 오빠 하나 있잖아. 엄마는 내 나이에 애 하나 딸린 상태에서 홑몸도 아닌데 남편도 잃고 그 해에 부모님도 줄줄이 돌아가셨어. 나는 어쩌면 그 상실감을 덕지덕지 붙이고 태어난 존재였을지도 몰라. 그 겹경사를 겪고도 선보며 재가해야 했던 우리 엄마..."


3초의 정적 후 세 명 다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먼저 웃음을 터트린 쪽은 A였다.


풉, 겹경사가 아니라 줄초상이겠지. 패륜이네 이거.


"저기요, 저는 씨다른 동생 있거든요?" C가 급발진했다. "너 외동 아니었니?" A와 B가 동시에 눈을 동그랗게 뜨자 C가 말을 이었다.


부모님이 나야 워낙 어릴 때 낳았고, 각자 일찌감치 헤어져서 가정 이루고 사시잖아. 엄마랑 새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여동생 하나 있지. 엄마의 유전 정보를 공유하는. 난 그동안 걔를 이복 동생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웃기잖아. 씨가 다른 거지 배가 다른 건 아닌데. 그래서 '씨다른 동생'으로 부르기로 했어. (대체 내 존재는 뭐길래 이 글에서도 '씨'로 등장하는 거야? 그놈의 씨씨씨...)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를 요구하는 요즘 세태는 상관하지 않는 듯 C 간혹 유교보이 같은 우스개를 건네곤 했다. C 부계를 통해서만 이어지던 한국 사회의 가계도를 뒷걸음질 치다 위트있게 지적한 셈이다.


식당 TV에선 마침 요즘 전 세계적으로 핫한 드라마가 재방되고 있었다.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고 자신을 버렸던 엄마를 만나는 장면이었다. 셋은 동시에 자신들의 삶이 드라마이자 농담 같다고 생각했다. 서로 알고 지낸 지 10년 만에, 앉은 지 10분 만에 꺼내보인 가정사였다. 놀랍게도 술 한 잔 오고가지 않은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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