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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이영 Mar 27. 2022

워킹도터인 내가 잃은 것과 얻은 것

희생만 하지는 않습니다

원래 이 시기에 하려고 계획했던 일이 있었나요?


누군가가 아빠의 암 진단 이후 부모님과 함께 지내게 된 내게 물었다. 어떤 상실을 전제한 질문이었다. 가족을 돌보는 일에는 당연히 희생이 필요하기에 내가 잃은 것은 무엇인지부터 말하게 되었다.


'나만의 안식년'을 보내려고 했어요. 하지만 그 와중에 세 번째 책으로 강렬히 쓰고 싶은 주제가 있었기에 슬슬 몸을 풀려고 했죠. 아빠가 아프다는 순간 그 주제는 바로 폐기 처분 됐어요. 앞으로 나는 내가 닥칠 현실을 쓸 수밖에 없을 거라고 직감했달까요. 작가로서 욕심나는 제안을 거절할 때, 아빠의 컨디션이 안 좋아 연차를 쓸 때 내 커리어에 스크래치 나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동료들과의 사소한 수다도 그리웠고요. 그래도 괜찮았어요. 내가 선택한 우선순위가 있으니까. 그런데 그건 좀 서럽더라고요. 사랑하지 못하는 것. 조금 더 열린 마음의 공간으로 사람을 대하고 싶었거든요. 서울과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고 또 내가 감염을 조심해야 하는 상황이 되니까 누군가를 새로 만나는 게 부담스러워졌잖아요. 별로 마음이 크지 않아도 한 번쯤 만나볼까 생각했던 이를 밀어낼 때 내 나이에 누려야 하는 무언가가 손가락 사이로 스르륵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느낌이었어요.

 

아빠가 암에 걸리고 가족 중 일상이 가장 뒤집힌 사람은 나였다. 아빠는 환자로서 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업무량을 줄여서라도 여전히 직장을 유지하고 있다. 엄마 역시 늘어난 일은 많지만 부모님의 일상에 내가 흡수되는 식으로 변화가 생겼다. 서울에 있는 짐을 캐리어에 싸서 부모님이 있는 본가로 내려왔다.


나는 1인 생활자의 일상을 주제로 책 한 권을 엮어냈을 만큼 혼자서 잘 살다가 부모님과 동거를 하기 시작했다. 본가가 있는 지방과 서울을 오가는 생활이 시작됐다. 3주에 한 번은 아빠의 치료에 동행하기 위해 연차를 내고 있다. 그래서 친구도 동료도 웬만하면 만나지 않는다. 올 들어 연차는 모두 병원 일과 관련한 데에 썼다.


동생들은 크게 변한 게 없어 보인다. 그게 내가 원하는 바이기도 했지만 어쩐지 심사가 뒤틀릴 때가 있다. 친구와 술을 마시고 있다는 동생의 소식을 들을 때, 어디 좋은 곳에 다녀온 듯한 모습이 동생 프로필 사진에 걸릴 때 나는 박탈감을 느꼈다. 내게는 모두 특별한 일이 되어버린 일상이었다.


이렇게 보면 억울한 일들만 있는 것 같지만 '원래 계획했던 바가 있었느냐'는 질문은 며칠간 내 마음에 강한 파장을 일으켰다. 자꾸만 반박하고 싶어졌다. 부모님과 함께 지내기로 한 나의 선택을 옹호하고 답변을 수정하고 싶어졌다.

 

부모님과 식목일에 심을 나무를 고르는 평범한 일상, 계획하지 않았지만 내가 얻은 것이다.


나는 나와 부모님을 재발견하는 중이다. 우리는 그동안 서로를 너무 몰랐다. 아빠는 항암치료 후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스무 살 이후 유이영은 언제나 유이영이었는데, 나만 그걸 몰랐네. 아빠 잘못이야" 했다. 지난 10여년간 우리 부녀 사이에는 불통의 벽이 단단하게 쌓여있었다. 허물어지는 데는 채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다.


아빠는 생각보다 훨씬 귀여운 사람이고 또 나를 많이 사랑하고 있다. 당연히 나도 알고 있었는데 한편으론 몰랐다. 나는 장녀 말고 재롱둥이가 되었다. 주말 낮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거하게 낮잠을 잘 때면 동생들이 태어나기 전인 세 살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얻어갈 것은 분명했다. 보호받는 감각. 겉으로는 내가 아빠를 돌보는 것 같지만 정말 오랜만에 부모님에게 돌봄과 사랑을 받는 느낌이 든다. 석 달 새 살은 5kg이나 붙었다. 장녀로서 항상 갖고 있던 결핍을 요즘 듬뿍듬뿍 채우고 있다. 일어나자마자 거실에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엄마가 차려놓은 밥을 아빠랑 셋이서 도란도란 먹는 장면이 행복의 전형처럼 느껴진다.


아빠와 나 사이에 있던 오해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아빠는 4년 전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이따금 보고싶다고 했다. 두 분은 끝까지 화해하지 못했다. 아빠는 할아버지를 볼 수 있다면 지금 나와의 관계처럼 친구같이 얘기해보고 싶다고 했다. 어렸을 때 받은 상처에 대한 원망도 쏟아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아빠에게 다 하고 있다. 그래서 마음의 상처가 가끔 소금 녹듯 사르르 흘러내리는 경험을 많이 한다. 내 인생에서 중요한 화두는 언제나 아빠였고, 그래서 지금 이 시기가 여느 때보다 중요하다.


비록 쓰고자 했던 주제가 있었지만 폐기해도 아깝지 않다. 정신없는 와중에라도 이렇게 일주일에  편씩 꼬박꼬박 써내려가는  다른 주제가 생겼으니까.


주말에 부모님과 집 근처 산림조합에 들러 금송을 샀다. 아빠는 식목일에 내 애칭을 딴 '소야 나무'를 심어주겠다고 했다. 내가 얻은 건 강렬한 애정이었다. 그리고 그 애정을 앞으로도 계속 요구하고 받아먹을 것이다. 계획하지 않았지만 흡족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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