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의 크기와 밀도
이 정도 원룸이면 혼자 살기에 괜찮아. 라고 말할 때 이 정도는
침대를 놓고,
식사 겸 일할 스 있는 테이블을 놓고도
요가 매트를 가로 세로 편한 곳으로 펼 수 있는 정도였다.
더해 베란다엔 10kg 세탁기와 원룸형 건조기
이케아 1인 체어도 있어서 봄, 여름엔 나름 밖을 관망할 수 있는 공간도 있다.
더 크면 청소만 힘들지~ 라는 말은 애써 긍정회로를 돌려 나온 말이 아니라,
정말 딱! 이만하면 됐다. 에서 나온 말이었다.
한 때 큰 집을 계획한 적이 있다.
방에서 집으로 이사를 갔다던 김애란 작가의 말이 너무나도 이해가 되며
그림이 딱 그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정도' 공간에서 삶을 살면서 집에 대한 생각이 조금은 마음을 접었다.
그러다가 두 달 전,
집에 조카가 왔다.
20살 넘은 성인이고, 시드니에서 혼자 살며 학교도 다니는데
서울에서 몇개월 혼자 못살겠냐마는
나도, 언니도, 조카 본인도
이 공간을 함께 쓰는 게 기정사실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그렇게 2024년 11월 말부터 두 사람의 동거는 현재 진행형이다.
요가매트를 펼치고 접었던 공간은 조카가 쓸 갰다 폈다 할 수 있는 침대가 들어왔고,
발레바를 놓은 자리엔 2단 헹거가 들어왔다.
내 화장품과 책이 차지했던 5칸 미니 수납장엔 책이 빠지고 조카의 화장품이 자리를 잡았다.
혼자서는 '이만하면' 괜찮았던 공간이
둘이서는 '어떻게든' 살아내는 공간이 된다.
신기한 건,
큰 자기 집보다 이 공간이 더 편하다고 말하는 그녀다.
이중 매트리스를 쓸 정도로 잠자리에 진심인 그녀지만,
침대를 빼고는 자기가 원하는 것이 한 눈에 정리되어 있는 이 집이 더 편하다고.
조카를 맞이할 때
투룸이 아닌 원룸 집이란 것의 불편함을 처음 생각했다.
물론 그간 큰 집으로 '이사가고 싶다. 전세로 옮겨가야겠다' 이런 생각을 종종했지만
전세 이사 = 대출금 공식에 발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간을 나눠 쓰고, 함께 밥을 먹는 구성원이 생기니
아, 이래서 사람들이 큰 집을 선호하는구나 싶지만,
한편으로 만족한다는 그 말에
역시 공간은 크기보다 밀도가 우세하구나 싶다.
집이나 차, 배우자 등
소위 40대 여자라면 응당 삶에 있을 것 같은 그런 류의 것들이 내 삶엔 없다.
가진게 많다는 건 한편으로는 삶이 버겁다는 것이기도 하여, 가지지 않는 쪽을 선택했다.
다만, 다른 선택을 해서일까?
가끔 이 세상 어디에도 '40대' '미/비혼' '적당히 사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느낌이다.
흔히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40대 여성은 두 부류다.
- 결혼을 하고 아이가 있는 워킹맘 또는 전업 주부
- 억대 연봉에 큰 평수의 아파트, 외제차를 타는 임원 이상급 미/비혼 커리어우먼
결혼을 하지 않고, 적당히 나름의 행복을 안고 사는 40대 여자인 나는 세상에 살고 있는데 말이다.
없는 게 뭐 자랑이냐 싶어, 이런 글을 쓰게 될지 생각도 못했지만,
이 공간이 더 좋다는 말에 용기를 내 기록을 해 본다.
20대 그녀와 40대 내가 함께 살며 나눈 대화들,
삶의 흔적으로 남겨두는 건,
이후 내 삶에도 또 올해 말 이 공간을 떠날 그녀에게도
후에 살아가는데 위로와 응원이 될 것 같아서 말이다.
무엇보다 없기에 느끼는 가벼움이 분명 있고,
남들의 기준에 들어가지 않을 뿐, 반짝 반짝 빛나는 나만의 가진 것들도 분명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