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없는데, 어쩌면 있을지도?

by 손찻잔

김애란 작가와의 만남을 간 적이 있었다.

여러 이야기 중 유독 와 닿았던 표현은 방에서 살다가 집으로 이사를 갔다는 것이었다.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할 수 있는 말일수도 있다.

대학을 서울로 오면서 지방에서 이사한 후,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다.

집이라하면 왠지 침실, 옷방, 거실, 주방, 화장실이 갖춰져있는 공간같달까?


내가 사는 곳은 현관문 열면 바로 방이 보이고 그곳에

거실, 침심, 주방, 옷장이 오밀조밀하게 놓여있다.

마치 긴 막대기 하나만을 기다리는 테트리스같달까.


그래도 서울살이가 길어지면서

바닥에서 친구 2명이 잘 수 있던 공간에서

친구 4명 정도가 잘 수 있을만큼 공간이 넓어지고, 베란다도 생겼다.


그래도 여전히 현관문을 열면 온 집안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방'인건 다름없다.


이런 형태의 집에 살면 선택권이 두가지가 있다.

1. 어차피 남의 집, 들어간 그대로 살다가 나올 때 그대로 나오기

2. 잠깐 살더라도 내 마음에 들게 고쳐서 살기


내 선택은 2번.

나무색 싱크대와 먼지가 내려앉은 손잡이는

하얀색 시트지와 나무 느낌의 원목 손잡이로 바꿨다.


보고 있으면 할머니 집이 떠오르는 화장실 문은 페인트를 사서 발랐다.

2번이나.


안전을 위해 문고리를 추가로 달고,

열쇠로 돌려서 여는 문에는 전자 도어락을 설치했다.


바닥엔 러그를 깔고, 베란다에는 의자를 뒀다.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와 다른 안락한 느낌.


건물주의 집은 내 손을 닿으면서 내 방이 되었다.


사실 집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면서 들어간 그대로 나온 게 대부분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이사 전날 친구가 함께 시트지와 페인트 작업을 해주었다.

집을 소중히 할 줄 아는 지인이다.

그래서일까

이 곳에서 만들어 내는 내 삶이 조금은 더 따뜻하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서울에서 집은 live를 위해 꼭 buy해야 하는 것 중 하나라고들 한다.

일단 집만 사면 큰 산은 넘었다며.


그런 개념이라면 난 언제 집을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집은 힘든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곳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집을 갖고 싶어하는지 모르겠다.

온전히 나를 위한 곳으로, 걱정하나 없는 곳이 필요하니까.


그런 의미라면 난 '집'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사지 못할 것 같으니 럭키비키한 사고로 정신 승리한 것일지도 모른다.

뭐, 그러면 어때.

내일 죽는다 치면 자기 집을 사놓고도 불행한 사람보다는

지금 살고 있는 공간에서 행복한 사람쪽을 선택할 것 같으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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