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 노트_백수의 미션 임파서블: 자존감 지키기

근거 있는 자존감만이 진짜인 걸까?

by 유됴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만족하고 있는지에 대한 지표를 뜻하는 단어―자존감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라며 확신하면서 살아왔다. 타인을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했다.

자존감이란 단어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한 오래된 시점부터 한 번도 이를 의심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명함을 뗀 그즈음 공교롭게도, 우연히 스치듯 보게 된 한 문장을 보고 근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자존감의 기반은 영원히 변치 않을 가치에서 얻어야만 건강한 것이다.”

그 가치의 예시로는 이미 이뤄낸 성취, 성공 경험, 쌓아온 지식 등이 쓰여 있었다. 당장의 내가 가진 젊음이나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현 상황에 기대어 살지 말고, 아무도 내게서 앗아갈 수 없는 조금 더 본질적인 가치를 품고 살라는 뜻이었다. 분명하게도 좋은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이 문장으로 인해 나는 처음으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자존감이 진짜 높은 사람이 맞나?
만약 그렇다면, 내가 가진 것 중 무엇을 근거 삼아 자존감이 높은 거지?


차라리 그 문장을 그냥 넘겼어도 괜찮았을 텐데. 아무리 좋은 뜻으로 건네는 말이라도 받아들이는 쪽이 준비가 되지 않았으면 상처로 남을 수 있듯이, 그 문장은 내게 날카로운 비수가 되었다.

퇴사와 방학이라는 결정이 맞았다고 끊임없이 나의 불안을 달래던, 남에게 나를 또렷이 설명하지 못하는 순간에 들어서던 시기였다. 당연히도 평소보다는 자신감이 떨어져 있던 상태였다. 그래서 이미 내가 이뤄낸 것을, 그러니까 저 문장에서 말하는 나의 본질적인 가치를 쉬이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나의 자존감의 근원은 내가 가졌던 그때그때의 환경에서 왔었나 보다.’라는 결론이 났다.




커리어와 사랑, 내가 삶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이다. 그 두 가치가 모두 흔들리던 환경에 놓여있었고, 그보다 더 본질적인 가치는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당장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근간을 외적인 가치에 두기 시작했다. 더더 예뻐져야만 내 자존감을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존감은 변치 않을 가치에서 와야 진짜’라는 글을 보고, 모순적이게도 제일 변하기 쉬운 가치인 외모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변치 않을 가치를 당장 만들어낼 수는 없었고, 뭐라도 잘난 게 있어야 나의 자존감을 설명할 수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나 보다.


요즘 말로 하면, 외모정병―외모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스트레스로 인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심리적 상태. 나는 그 문턱에 있었다. 퍼스널 컬러 진단, (왕복 3시간이 넘게 걸리는 유명하다는 헤어샵에 찾아가) 헤어 컨설팅, (유명 인플루언서들이 공구하는) 뷰티 디바이스 구매 등등등... 다행히(?) 백수였기에 고가의 시술 단계까진 못 갔지만, 그 아래로 할 수 있는 건 다 하려고 했다. 관리하기 시작하니, 주변에 이미 관리하고 있었던 사람들만 보였다. 나 빼고 다들 이렇게 미리미리 잘하고 있었구나. 나만 너무 소홀했나 싶은 자책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은 매일같이 내게 더 예뻐지는 방법을 가져다줬다.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내용의 관리법들, 홈 케어 방법, 페이스 요가, 윤곽 관리, 림프 순환 마사지, 눈썹 탈색, 두피 마사지, 바디 케어, 화장법,....


매일 눈이 빠져라 그런 것들을 보느라 하루가 짧을 정도였다. 제발 좀 그만하자고 외치면서도, 내 손은 그런 뷰티 컨텐츠만 클릭했다. 겉이 반질반질 해질수록 속은 바스러졌다. 웃긴 건, 그래서 지금의 내 외모는 어느 시절의 나와 비교해도 가장 베스트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왜 이렇게 예뻐졌냐로 첫인사말을 건네곤 한다. 바야흐로 리즈시절이다.


나의 그 스트레스가 남긴 것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들 때, 앨범을 타고 올라가다가 나의 지나온 사진들을 봤다. 여름 쿨 라이트인 내가 확신의 봄웜이라고 믿었던 시기였다. 머리색도, 화장법도 나와 꼭 맞는 게 없었고, 지금보다 더 통통했다. 그런데도 사진 속의 나는 충만해 보였다.

지금보다 덜 예쁘고 덜 세련되었을지라도, 나를 나 자체로 이유 없이 사랑했던 내가 훨씬 행복해 보였다. 나를 사랑함에 대한 의심이 없던 얼굴을 가진 그때의 내가 부럽고, 지금의 내가 서글퍼졌다.




그러다 떠오른 물음 하나.

“자존감이라는 게 꼭 이유가 있어야만 진짜인 걸까? 어떠한 멋지고 괜찮은 분명한 가치에 근거를 둬야만, 나를 사랑하는 게 합리적인 걸까?” 그 물음에 답을 찾고 싶었던 때, 유퀴즈에 출연한 허준이 교수(한국계 최초 필즈상을 수상한 수학자)의 인사이트를 조우했다.


근거 없는 자신감이 중요하죠. 근거가 있는 자신감은 너무너무 연약해요. 어떤 근거를 자존감의 원동력으로 삼으면 언젠가는 힘든 시기를 겪을 수도 있으니까...


허준이 교수의 통찰과 맞물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외모에 집착하던 시기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내가 누구인지 곱씹는 문장들 사이에서 나에 대해 깊이 사유하면서, 흔들리던 자존감이 스스로의 믿음을 되찾기 시작했다.


좋은 가르침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지금, 내게 비수를 꽂았던 문장을 다시 본다.

변하지 않을 본질적인 가치라는 것이 꼭 무언가를 이룬 성취, 성공 경험에 국한되는 게 아니란 것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의 막내딸, 귀여운 댕댕이의 누나. 이러한 진정한 의미의 ‘본질’만으로도 충분함을 이제는 안다.



근거고 뭐고 간에 그냥 나를 사랑하는 마음.

스스로 자랑스럽지 않은 시기를 지나갈 때도,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잠 못 이루는 밤에도, 보여지는 것에 다시 집착하게 될지라도. 그 모든 모습의 나를 통틀어 사랑하겠다는 다짐. 이 다짐만은 아무것도 없는 백수일 때도 내가 꼭 지켜내야 할 미션 파서블이다.


그래서 결국 이 글은, 나는 나를 사랑한다는 공개 고백이자 나 자신에게 쓰는 러브레터다.


내 삶을 누구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어마무시한 다짐도, 자의식 천국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 이슬아, 『끝내주는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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