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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공학자 Sep 27. 2016

#76. 켈슈타인 하우스에서 만난 부부

잘츠부르크에서의 둘째 날


잘츠부르크에서의 둘째 날, 일기 예보대로 날씨가 흐리다. 구름이 매우 많고 약간의 빗방울도 떨어지는 쌀쌀한 날씨다.  날씨가 좋으면 오늘 그 유명한 할슈타트에 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흐린 날씨는 나의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었다. 호스텔에서 늑장을 부리며 피로를 풀었다. 그리고 천천히 마음이 가는 대로 움직인다.

숙소를 나서는 길에 같은 방에 묵는 존이 나의 오늘 계획을 묻는다. 그는 내일은 날씨가 좋을 거라면서 나에게 희망을 준다. 존은 호주 멜버른에서 왔다. 어제 처음 만났는데 멜버른에서 왔다는 말에 나는 굉장히 반가워했다. 9년 전 대학교 휴학 시절에서 나는 멜버른에서 5개월 간 살았었다. 한때 가장 살고 싶은 도시 1위를 하기도 했었던 아름다운 도시가 멜버른이다. 나는 그리움과 반가움을 기쁨으로 그에게 표현했다. 휴가로 여행 중이라는 존은 부다페스트에서 열흘 동안 있었는데 7일은 놀고 3일은 쉬었다고 했다. 7일 동안 너무 신나게 놀아서 3일을 강제로 쉬게 되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 기간이면 나도 부다페스트에 있었을 때다. 우린 같은 도시에 있었다가 다른 도시에서 다시 만났다.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

나는 우선 잘츠부르크 기차역 1등석 라운지로 가서 공짜 빵과 커피를 마셨다. 1등석 기차표의 행복은 여행 내내 이어진다. 간단한 아침 식사를 하며 어디로 갈지 고민한다. 나는 자연이 아름다운 작은 도시 베르히스 가덴행 기차에 올랐다. 베르히스 가덴은 독일이다. 여기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면 간다. 여행 책에는 죽기 전에 꼭 가봐할 명소로 아름다운 자연을 소개하고 있다. 알프스 산맥에 속하고 삼면이 오스트리아 영토에 에워싸인 독일의 최고 휴양지라고 한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명소 100곳의 근거는 영국 BBC 방송국이라고 한다. 가봐야겠다.

여행 중에 이미 다녀왔던 사람들의 말도 좋았다. 이틀 숙박까지 할 정도로 좋았고 오히려 할슈타트보다 좋았다는 사람도 있었다. 날씨가 흐리지만 자연은 그대로 아름다운 것 같다. 인생에서 좋은 날이 있으면 좋지 않은 날도 있듯이 여행에서도 맑은 날이 있으면 흐린 날도 있다. 그러나 인생도 여행도 계속 이어진다.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흐린 날은 그 날대로의 멋이 있다. 기차 밖으로 멀리 보이는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산에는 신비로운 안개가 산등성이에 걸쳐져 있다. 더 고요하고 평화로운 느낌이다. 나는 기차의 운율에 맞춰 천천히 여행을 느끼고 즐긴다.





기차는 자연 속을 달린다. 그렇다. 이 기차는 자연 속을 달리는 기차다. 이번 여행에서 정말 많은 기차를 탔지만 이번 기차 역시 나름의 의미를 갖고 있다. 자연 속에 기찻길이 있고 그 위를, 그 속을 달린다. 편안한 자연색에 내 눈은 평온을 얻는다. 이탈리아에서는 해안을 바라보며 달리는 기차였다. 오스트리아에서는 기차의 양쪽 창으로 자연이 펼쳐지고, 자연 속을 달리는 그 기차에 내 몸이 실려 있다. 가는 길에는 강도 보이고 산도 보이고 작은 마을도 지나간다. 자욱한 안개를 헤치며 나의 자연 기차는 열심히 달린다.

베르히스 가르덴 중앙역에 도착해서 켈슈타인 하우스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함께 기다리는 가족 여행객이 보인다. 초등학교 4학년쯤으로 보이는 딸이 엄마에게 뽀뽀를 하며 애교를 부린다. 엄마는 딸의 애교를 받아주며 딸을 안아준다. 잠시 후 아빠는 엄마와 딸을 함께 안으며 셋이 얼굴을 맞댄다. 아빠는 아내의 이마에 입맞춤을 한다. 아빠와 엄마 딸의 헤어스타일이 모두 똑같다. 긴 머리를 묶었다. 아마 이곳 한 마을에 사는 것 같이 보였다. 별 꾸밈없는 이 가족이 참 행복해 보인다.

산악 버스에 올랐다. 올라가는 길에는 절경이 펼쳐진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도로 사이로 안개가 걸터앉은 높은 산이 펼쳐지고 중간중간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도 보인다.





켈슈타인 하우스에 오르니 안개와 흐린 날씨로 인해 장관을 보지는 못했다. 멀리 보이는 건 안개뿐이었기 때문에 안내판에 있는 그림으로 대신 내 눈을 위로했다. 아쉬웠다. 굉장히 멋진 자연의 풍경이 눈 앞에 있는데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다.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높은 곳에 올라 그저 자연을 바라보는 일, 자연과 함께 하는 일을 했다. 날씨가 좋지 않으면 있는 그대로 자연을 바라보는 그 일이 내가 할 일이었다. 다음에 다시 한번 와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안내판의 그림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켈슈타인 하우스는 해발 1,834m의 오베르 살츠 베르크 산에 지어진 별장이다. 히틀러의 별장이라고도 불리는데 부하인 마틴 부어만 히틀러의 쉰 번째 생일 선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 비용만도 현재 시세로 약 1조 원 가까이 들였다고 하는데 정작 히틀러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단 세 번만 방문했다고 한다.




아침에 잘츠부르크 중앙역 라운지에서 작은 빵 조각 두 개만 나의 뱃속에 투입해서 그런지, 높은 곳에 올라서 그런지 배가 고팠다. 시간은 벌써 1시 반이다. 켈슈타인 하우스에 레스토랑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들어가서 추운 몸을 녹이며 배를 채우고 싶었다. 레스토랑 안은 관광객들로 거의 가득 차 있었다. 제한된 여행 일정 덕분에 궂은 날씨에도 오늘 여행을 감행한 나와 같은 사람들이었다. 나는 치즈 샌드위치와 헝가리식 수프를 주문했다. 수프는 따뜻하게 내 몸을 녹여주었다. 빵과 함께 나온 치즈 맛이 좋다. 빵과 치즈 그리고 따뜻하고 구수한 수프가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몇 분이 지났을까. 잠시 후 60대 부부가 나와 테이블을 함께 공유해도 되는지 양해를 구했다. 사람들이 많았고 자리가 부족했는데 내가 앉은자리는 두 명은 더 앉을 수 있었다. 나는 흔쾌히 자리에 앉으라고 손짓했다. 완전하게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먼 아저씨는 내가 먹고 있는 수프가 맛있겠다고 하며 아내에게 저걸 주문하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는  남편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며 너무 손으로 가리키지 말라는 듯했다. 아저씨는 나와 같은 수프와 커피를 주문했다. 그리고는 가져온 빵과 함께 수프를 먹었다. 나는 수프 맛이 좋다며 말을 걸었다. 아주머니는 아주 흥미롭게 내게 말을 걸고 싶어 했다. 아주머니는 내게 여행이 며칠 째이고 어디를 가봤는지 아주 천천히 물으셨다. 그리고 나의 나이를 궁금해하셨는데 아주머니의 첫째 아이와 나이가 비슷하다고 했다. 첫째 아래에는 쌍둥이 동생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자식 같아 보이셨는지 나를 아껴주시듯 바라봐 주셨다.

부부는 독일의 마인츠에서 왔고 주말을 맞아 잠시 여행을 왔다고 했다. 나는 지도를 열어 마인츠가 어디에 있는지 안다고 반가움을 표현했다. 나의 말에 아주 깊게 주의를 기울이며 눈을 맞춰주며 들어주셨다. 그 사이 아저씨는 빵과 수프를 아주 맛있게 드시고 계셨는데 겉이 바삭한 빵을 조각내서 수프에 담가서 수프와 함께 드셨다. 그러면서 아저씨는 빵과 수프를 따로 드시고 계신 아주머니에게 왜 수프에 빵을 넣어서 먹지 않느냐며 말을 건넸다. 그렇게 먹어야 더 맛있는데 왜 그러지 않느냐며 장난을 치신다. 아주머니는 찡끗 웃으시면서 아저씨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또 찌르신다. 내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지어진다. 나는 웃으며 아저씨, 아주머니와 눈을 맞췄다. 그리고 함께 웃었다.

내가 결혼한 지 얼마나 되셨는지 여쭤봐도 되는지 묻자, 아주머니께서는 잠깐 계산을 해야 한다며 웃으셨고 잠시 후 32년이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장난치는 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모습이 정겹다. 내려갈 버스 시간이 거의 다 돼서 나는 먼저 일어나야 했다. 나는 만나서, 잠시지만 이야기해서 정말 즐거웠고 고마웠다고 말했다. 영어를 잘 못하시는 아저씨를 대신해 아주머니는 내게 '우리도 즐거웠고 즐겁게 여행하길 바란다'라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함께 사진을 한 장 찍어도 되겠는지 묻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흔쾌히 사진을 함께 찍어주셨다. 내가 이메일로 보내드리겠다고 하니 이메일 주소도 적어 주셨다.

날씨가 궂은 탓에 멋진 자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보다 더 아름다운 사람들을 우연하게 만났다. 오히려 감사했다. 아쉬웠던 나의 마음은 이미 흐뭇함으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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