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봄, 꽃의 가치를 감상하는 아름다운 시기
오랜만에 미세먼지가 덜한 화창한 주말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환한 날씨의 빛을 보니 벌써부터 밖에 나가고 싶어 진다. 나는 후다닥 샤워를 마치고 어머니와 누나에게 꽃구경을 가자며 재촉했다. 벚꽃이 예쁘게 핀 중랑천을 따라 걷고 싶었다. 이번 주가 지나가면 벚꽃이 떨어질 것 같기도 했다.
걷기 좋은 벚꽃 길은 아침부터 산책 나온 사람들로 제법 붐볐다. 유모차를 끌고 아이와 함께 나온 신혼부부, 스마트폰 카메라를 어설프게 다루면서도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며 웃는 어른 부부, 서로의 손을 잡고 벚꽃 길을 걷다 다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를 반복하는 커플의 모습이 보인다. 벚꽃 나무에서는 바람을 못 이기는 벚꽃잎들이 살포시 떨어지기 시작한다. 햇빛이 떨어지는 벚꽃잎을 관통해서 감성적인 빛으로 변해 다시 내 눈으로 들어온다.
어머니께서는 나를 바라보며 주말에 애인과 함께 꽃구경을 가지 않는 아들의 모습이 못마땅하신 것 같다. 나는 멋쩍은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지으며 어머니의 어깨를 토닥인다. 좋은 사람 만나서 최고의 효도를 하겠노라고 또다시 다짐하는 말을 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농담을 건넸다. 꽃길만 걸으라는 나의 말에 다시 어머니의 표정이 밝게 빛난다.
어머니는 꽃을 참 좋아하신다. 봄이 되면 산으로, 공원으로 꽃구경을 자주 나가신다. 어머니의 이름에는 봄(春)의 뜻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다른 계절보다 유독 봄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오랜만에 밖에 나온 김에 벚꽃 길을 걷고 개나리와 진달래, 목련 꽃도 만발한 동네 뒷산에 함께 올랐다. 마음먹고 걷는 김에 어머니와 함께 세 시간 동안 걸었다. 봄이 왔으니 혼자라도 꽃구경을 가고, 산에도 가겠다고 하셨지만 막상 아들과 함께 꽃구경을 하며 산에 오르니 기분이 좋으신 것 같다.
사람들은 왜 꽃을 좋아할까. 왜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질까. 겨울이 유난히 춥고 외롭게 느껴져서 봄을 알리는 존재가 더 빛나게 보이는 걸까. 꽃을 자세히 보면 신기하다. 무생물처럼 생긴 딱딱한 껍질에서 부드럽고 생기가 도는 아름다운 생명체가 나오니 말이다. 색채와 함께 향기까지 갖고 있는 꽃이 신비롭다.
꽃에 관심이 쏠려있어 그런지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중에 꽃에 대한 내용에 눈이 갔다. 인류의 의식이 진화함에 따라 꽃은 실용적인 목적에 관계없이, 즉 어떤 식으로든 생존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그 가치를 인정한 최초의 대상이라는 내용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렇다. 길가에 핀 꽃을 바라보며 우리는 그저 그 가치를 인정하고 느끼고 감탄한다. 꽃 자체는 누구를 위해 피는 것도 아닐 터인데 우리는 그 꽃을 보고 아무런 조건 없이 가치를 느낀다. 아름다운 꽃의 가치는 그냥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봄은 꽃의 가치를 감상하는 아름다운 시기다. 천천히 그 가치를 감상하고 싶다. 지금 할 수 있는 아름다운 일이 그냥 여기 펼쳐져 있다. 아주 쉽다. 봄을 만끽하는 일은 다른 무엇을 달성하는 것보다 지금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이다.
2017년 어느 따뜻한 봄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