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mburg, hamburger?
함부르크가 함박스테이크의 고향? 함박스테이크의 진화된 형태인 햄버거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없기 때문에 여러 설이 있다고 한다. 쇠고기를 갈아 납작하게 만든 패티를 그릴이나 직화로 구워 여러 채소와 함께 빵 사이에 끼워먹는 샌드위치의 일종이 햄버거이다. 햄버거는 1880년 이후부터 먹기 시작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이 이를 세계에 전파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수천 년 고대 이집트인들이 고기를 갈아먹었다고 전해지기는 하기 때문에 그 방법은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13세기에 칭기즈 칸이 유라시아 대륙을 정벌할 때 며칠씩 쉬지 않고 말을 달리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았다고 한다. 남은 양고기 부스러기를 납작한 형태로 만들어 말과 안장 사이에 넣고 다녔는데 이 과정에서 패티가 된 것이다. 말을 타는 동안 반복해서 체중으로 눌러주는 효과로 인해 고기가 부드러워져 익히지 않고도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후 이러한 방법이 러시아로 전해졌고 러시아인들은 여기에 다진 양파와 날달걀을 넣고 양념해서 먹었다고 한다. 이것이 러시아의 타르타르 스테이크라고 하는데, 17세기에 독일 최대 항구도시인 함부르크에 전했고 함부르크 스테이크는 선원들에 의해 뉴욕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이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스테이크를 만들 때의 조리법이 추가되기도 했다.
햄버거의 유래는 미국 뉴욕 주의 햄버거(Hamburg)에서 열린 박람회와 관련된 설이 또 있다고 한다. 어찌 됐든 나는 독일 함부르크에 와 있으니 첫 번째 설을 믿어보며 함부르크의 함박스테이크를 기대해본다. 햄버거라는 어원을 첫 번째 설로 풀면, 독일의 지명 hamburg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hamburger는 ‘함부르크에서 온 사람이나 물건’을 뜻한다고 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참조)
하노버에서 함부르크로 오기 전 나는 고민했다. 사실 베를린으로 향할 예정이었는데 독일 최대의 항구도시인 함부르크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내가 좋아하는 우리나라 부산이 생각났고 해군 복무 시절이 생각났다. 하노버에서도 버스로 2시간밖에 걸리지 않기 때문에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함부르크행을 선택했다. 함부르크는 인구 170만 정도의 대도시로 베를린 다음로 큰 도시이다.
스스로 마련한 생일상을 기분 좋게 마치고 숙소로 오자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다. 6 인실 숙소에 나만 남자고 모두 여자였다. 이게 웬일이지. 생일이 맞나 보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많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렇지 않은 척 인사를 건넨다. 사실 배낭여행객에게는 익숙해져야 하는 여행자 숙소의 풍경인데 내가 아직 적응을 못했나 보다. 스웨덴에서 온 두 명의 친구는 인사만 하고 각자의 이불속으로 머리를 감췄다. 쾌활하게 인사를 건네는 앨리라는 친구는 미국에서 사촌과 함께 왔단다. 오랜만에 익숙한 미국식 발음을 들리니 왠지 아주 깔끔하게 잘 들리는 느낌이 든다. 미국식 영어 교육의 왕성한 효과가 몸에 알코올이 들어가서 나타나는가 보다. 둘은 네덜란드에서 와서 여기 머물다가 덴마크의 코펜하겐으로 간다고 했다. 몇 마디 주고받고 나는 많이 걸어서 피로해진 내 몸을 뜨거운 물에 녹였다.
함부르크에서의 둘째 날, 눈을 뜨니 모두 꿈나라다. 시간은 7시밖에 되지 않았다. 충분히 잠을 잔 덕분에 더 잠이 오지 않았던 나는 멍도 때리고 여행기도 썼다. 점심때가 다 돼서 숙소를 나선다. 드디어 함부르크에서 함박스테이크를 먹으러 나서는 길이다. 여행 책자에 나온 Jim Block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나는 정식 함박스테이크를 맛보기 위해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렇다고 Jim Block이 정식이 아니라는 건 아닌데 패스트푸드 형식으로 판매한다고 한다. Jim Block은 유명 스테이크 전문 레스토랑 Block house에서 만든 수제 햄버거 전문점이라고 한다. 때문에 맛은 패스트푸드와 비교 불가하다는 책자의 설명과 같이 정말 맛도 좋고 인기도 많다고 한다. 둘 중 선택을 해야 하니 나는 제대로 된 함박스테이크를 찾아 천천히 즐겨봐야겠다는 생각에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막 12시가 지나는 시간에 레스토랑에 들어선다. 독일의 많은 미남과 같이 깔끔하게 생긴 웨이터가 나를 반긴다. 아직 점심시간 전이라 테이블은 한 팀만 있다. 나는 레스토랑 전체가 잘 보이는 한쪽 측면에 앉는다. 미남 웨이터는 세지 않은 영국식 발음으로 경쾌하게 메뉴판을 나에게 건네준다. 물을 마시겠냐는 제안에 나는 흔쾌히 동의한다. 그리고 함박스테이크, 즉 함부르크식 Burger와 독일에서 식사에 빠질 수 없는 맥주를 주문한다. 물을 병에 내어 주는 걸 보니 아차 싶다. 돈을 내야 한다. 맥주로 갈증을 대신하려는 나의 자잘한 계획을 뒤로하고 수분이 부족한 내 몸에 물을 채운다. 돈을 아낀다고 며칠 물을 사서 마시는 것을 안 했더니 괜히 더 마시고 싶어 진다. 시원하게 물을 원샷하고 레스토랑을 둘러본다. 블라인드로 가려진 창문은 햇빛이 블라인드 틈새로 들며 따뜻한 패턴을 그린다. 잘 정돈되어 있는 테이블을 바라보며 나는 여유를 느낀다. 시간도 적당하고 내 배꼽시계의 시장기도 적당하다. 이제 함부르크에서 함박스테이크를 맛보기만 하면 된다.
식전 빵이 나오고 드디어 주문한 함박스테이크가 나왔다. 우선 눈에 띄는 두 줄기의 베이컨을 잘라 맛본다. 고소한 훈제 베이컨 맛이 좋다. 바삭한 베이컨을 씹으며 함박스테이크를 이리저리 살펴본다. 옆에 있던 빵은 사실 햄버거의 위층 빵이었다. 이미 한 번 잘라먹고 난 뒤 다시 함박스테이크 위에 덮어본다. 빵 맛이 부드럽다. 보통의 햄버거 빵과 카스텔라의 부드러움의 중간 정도 느낌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스테이크를 썰어볼 차례다. 한쪽 면을 세로로 자른다. 두꺼운 패티는 그 우람한 두께를 뽐내며 소고기 살점과 함께 육즙을 뿜어냈다. 부드러운 육즙을 흘려보낸다. 빵과 함박스테이크와 곁들여진 채소를 함께 맛본다. 부드럽고 육즙의 향이 느껴진다. 입안에서 소고기의 질감과 신선한 채소가 잘 어우러진다.
함께 나온 BBQ 소스와 SOUR 소스를 곁들여서 먹으니 더 부드럽다. 나는 아주 천천히 함박스테이크를 느껴며 먹었다. 함께 나온 감자튀김도 너무 딱딱하지 않은 부드러움을 선물해준다. 내 몸에 에너지로 보충을 해줄 것 같은 노란색 맥주도 함께 목으로 넘긴다. 아주 만족스러운 점심식사다. 매너 좋은 웨이터는 일을 보며 내게 두 번이나 괜찮냐고 물어본다. 나는 Good을 연발하며 엄지를 치켜올린다. 함부르크에서 맛본 함박스테이크여서 그런지 더 만족스럽게 느껴진다. 가장 중요한 스테이크가 보통 맛보는, 즉 어떨 때는 징걸징걸 씹히는 그런 맛이 아니었다. 고기의 맛과 질감이 느껴지면서도 적절한 간이 되어 다른 재료들과 조화를 이루었다. 그냥 고기를 갈아 무너지는 느낌이 아니다. 소고기의 육질이 느껴진다. 육즙과 함께 은은한 향도 퍼진다. 아마 패티에도 정말 다양한 재료가 들어가 있을 것이다. 이미 한 곡의 교향곡을 마친 패티가 다른 악기들과 함께 더 큰 오케스트라 협주를 하는 듯했다. 조화로운 부드러움이었다. 중간에 사진도 찍어가며 천천히 먹었는데도 유지되는 온기도 풍부한 맛에 한 몫했다.
얼마 안 되지만 나는 독인인 웨이터에게 잔돈을 팁으로 주었다. ‘It was really nice’라고 말했다. 그리고 고맙다고 말하며 나는 레스토랑을 나선다. 외국 여행에서 식사를 할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새로운 음식을 경험하는 정도로 이런 맛이구나, 맛있네, 괜찮네 정도의 생각 말이다. 그런데 오늘은 레스토랑을 나오며 마치 한국에서의 맛집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나오며 배를 두드리는 것과 같은 만족스러움이었다. 함박스테이크의 고향 함부르크에서 맛본 함박스테이크는 정말 나이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