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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자 Apr 11. 2021

버티기 위해서는 은은한 희망이 필요해

전문직은 아니지만 전문 직장인

얼마 전, 부서의 동료 여자 직원들과 둥그렇게 모여 앉아 서로의 손을 맞잡고 맹세했다.


우리, 앞으로 동동거리지 않기


진지하게 원탁의 맹세를 마치고는 커피 한 잔씩 쪽쪽 빨며 자리로 돌아가 다시 동동거린 이들이 많겠지만.


회사가 사람을 힘들게 하는 것에는 과도한 업무량이나  맞지 않는 상사, 동료도 있다. 그렇지만 내게 있어 회사 고충의 메인 테마는 언제나 ‘불안이다. 물론 한국 사회에 널리 퍼진 미래에 대한 불안과 초조, 타인과의 비교, 성공에 대한 맹목적인 집착이  몫을 하리라. 회사는 여기에 임원 간의 과도한 경쟁 구조, 상명하복식 조직문화, 어떤 상황에서도 납기를 맞추어야 하는 기이한 프로 정신의 강요를 얹어 불안을 증폭시키는 신묘한 힘이 있다. ,

월요일 오후 세 시면 나의 상사, 내 유관부서의 상사, 그 모든 부서를 아우르는 절대 상사의 명에 따라 서로 다른 세 개의 ‘지급’ 취합이 쏟아진다거나, 대책이 없는 자료를 2분 안에 프린트하고 스테이플러 찍어 회의실에서 떨고 있는 상사에게 눈치껏 건네줘야 한다거나, 단체 메신저 방에 ‘OO 팀 제외 취합 완료 되었습니다’ 같은 압박의 말이 올라오는 일들. 그 모든 일의 배경에는 위에서 요구한 일은 무조건 시간에 맞춰 해내야 한다는 투철한 그리고 정체모를 프로 정신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니 딱히 그렇게까지 프로가 아닌 대부분의 보통 인간들은 불안증을 얻어 약을 먹거나, 잠을 자려 누워서도 업무를 헤아리거나, 월요일 아침이면 없던 병을 얻거나 하며 버티는 심정으로 회사를 다니게 된다. 자꾸만 동동거리며.


그런데 회사에 와서, 특히 이렇게 업무가 힘들어질 때마다 참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이번 보고만 끝나면 올해도 끝이야, 이제 할 거 없어
이것만 하면 이번주도 지나간다
내년엔 그 미친놈 다른 부서 간대, 그럼 나아질 거야


말이야 다양한 버전이 있지만 결국 뜻은 한 가지다.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언젠가 지나갈 거라는 말.힘든 일에도 끝은 있다는 말. 그러니 조금 더 버틸 수 있다는, 버티면 된다는 말. 물론 모든 취합과 보고에는 납기가 있고, 납기가 지나면 끝은 온다. 그러나 나에겐 언젠가부터, 더이상 그 말들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작년 말에 친한 선배가 무의미한 보고를 위해 매일 야근을 하던 시즌이 있었다. 보고가 끝나는 즉시 잊혀질 이런 자료를 왜 만드는지, 그리고 그걸 위해 왜 이렇게 야근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하는 선배에게, 같이 일하는 동료가 이렇게 위로했다.

“S야, 그래도 이번 보고만 마치면 올해도 다 가는 거야. 이거만 하면 끝이야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에, 그 선배가 입술을 깨물며 내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이제 그런 말은 나한테 하나도 위로가 안돼. 어차피 이게 끝나고, 올해가 가도, 난 내년에 또 이런 무의미한 같은 자료를 반복해서 만들 거니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텐데 시간이 가는 게 무슨 상관이야.”

선배는 그 말을 한 뒤로도 비슷한 보고를 두 번 했고, 이번주도 경영진 보고 자료를 준비 중이다.


그때 왜 이곳에서 매일 괜찮지 않은 기분이 되는지, 보다 선명하게 깨달았다. 그건 내일이 오늘보다 나을 거라는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보고가 가면 다음 보고가 오고, 이번주가 가면 다음주 월요일이 오며, 그 미친놈이 가면 저 미친놈이 와서 자리를 채운다. 그리하여 나의 하루하루는 시간이 지나도 오늘과 같이 동동거리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오늘과는 다른 내일이 올 거라는 감각이다. 내 삶이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갈 거라는 믿음, 이게 다가 아니라는 약속, 앞으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기대. 그런 것이 없이 회색빛의 매일을 잠자코 걸어나갈 수는 없다.

물론 인생에 있어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날은 오지 않는다. 어떤 걱정거리도 없이 오직 행복하기만 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중요한 것은 하나의 문제가 해소되고, 또 다른 종류의 문제를 맞이하는, 그런 변화와 굴곡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런 점에서 많은 직장인들을 지치게 하는 질문은 바로,


앞으로 그냥 이렇게 사는 건가?


여기서 일 년, 이 년, 시간을 보내고, 그러다보면 어느새 경력이 쌓이고, 그렇게 나와 함께 동동거리는 과장님과 부장님이 착실히 되어가며. 직장인으로 사는 일은 이런 은은한 절망과 회의를 동반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좀먹는 불안과 회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것은 지금까지 내 회사 생활 최대의 고민이다. 그런 의미에서, 부서원들과 모여앉아 했던 맹세가 마냥 우스꽝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불안에는 전염성이 있다. 대개의 경우 내가 불안을 가장 심하게 느꼈던 것은 함께 일하는 시니어들이 동동거릴 때였다. 그건 그들로서도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뜻이고, 나에게 불똥이 튈 일이라는 뜻이니까. 반면 업무량이 많아도 침착하게 일을 할 수 있었던 때는 함께 일하는 이들이 침착한 태도를 보여줄 때였다. 회사에 일상적인 불안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 다같이 불안해하지 맙시다! 하는 다짐이 유효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다짐에서 그치지 않고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면 앞으로에 대한 막연한 회의에서도 차츰 벗어날 수 있으리라.


존버가 답이라고, 오래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는 말이 많지만 아무래도 그냥 버틸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버티기 위해서는 소량의, 은은한 희망이 필요하다. 별다른 기술도 없고 인맥도 없는 회사원. 그냥 버티며 다니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는 직장인은 어린 시절 어른들이 그렇게 좋다던 전문직이 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전문 직장인이 되어야 한다. 회사에서 강조하는 프로가 되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다. 전문 직장인은 직장인으로 살아남는 기술을 체득한 사람이고, 생활인의 감각을 몸에 두른 사람이며, 무엇이 직장에서 자신을 좀먹고 무엇이 자신을 버티게 하는지 아는 사람이다. 은은한 희망을 위해 싸울 줄 아는 사람, 그런 희망을 만들어내는 사람, 동료와 후배의 직장 생활에 안정감을 더하는 사람. 그 날 회의실에서, 내 양 손을 잡았던 이들. 동동거리지 말자! 하고 깔깔 웃었던 이들.

글로벌과 디지털이라면 내 생에 가장 먼 두 단어로 생각했다가, 글로벌 전자 대기업에서 4년차를 맞았지만 이제 조금은 스스로를 전문 인력이라고 생각한다. 전문적 기술이 늘어서가 아니라, 직장인의 기분과 감각을 몸에 두르고 살아남을 수 있게 되어서다. 직장을 옮겨도,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나 사업가가 되어도, 어떤 종류의 삶을 살게 되어도, 직장에서 얻은 이 기분이 계속해서 내 등껍질의 가장 단단한 층이 되리란 것을 알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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