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어도 우리끼리는 그것을 존중하고 지지하자
내가 근무하는 회사에는 한 달에 한 번씩 각 분야의 연사들을 모시고 강연을 하는 프로그램이 있다. 과학자, 건축가, 사업가, PD 등 꽤 내로라 하는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는 시간이다. 이 프로그램은 인사팀 내 조직문화를 만들고 관리하는 파트에서 진행하는데, 목적은 구성원들이 잠시 현업에서 벗어나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성장할 수 있게끔 돕는 것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한달에 채 2시간도 안되는 이 시간을 내기가 참 어렵다. 내가 이 회사에 다닌지 5년이 다되어가지만, 막상 이 프로그램에 참석해본 건 딱 한번밖에 없다. 그 시간에 다른 회의가 있었을 때도 있지만, 다른 일정이 없을 때에도 선뜻 발걸음이 떼지지 않았던 것은, "과연 내가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인가?" 라고 묻는 내면의 감시자 때문이었다.
이런 감정은 비단 나만 가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이번주, 오랜만에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나는 동료들에게 '회사일에 대해 고민하는 것만큼, 나에 대해 고민해본적이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요즘 많이 한다고 말했고, 한 동료는, "회사에서 하는 그 강연. 나 6년동안 한번도 그 프로그램에 참석해본적 없다" 라는 얘기를 했다. 그 동료의 마음 또한 나와 비슷했다. '이런 전쟁같은 상황 속에서 나만 혼자 빠져나와 한가하게 거기 앉아있는게 괜시리 민망하고 불편한 마음' 말이다.
수없이 쌓인 슬랙 멘션들에 두 시간동안 신경을 끌 수 있을까? 나의 답을 기다리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두 시간동안 처음보는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을까? 이런 모든 것들을 다 감내할만큼 이 이야기가 가치 있는걸까? 하나둘씩 머릿속으로 따지다보면 할 이유보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밖에 찾지 못한다. 결국 가지 않는 쪽을 선택한다.
나는 말했다.
적어도 우리끼리는 그러지말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거기 가기로 선택했다면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있었을거라고. 적어도 우리끼리는 그 선택을 지지하고 존중해주자고.
"여기 가볼까?" "이거 한번 해볼까?" 라는 그 찰나의 목소리.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올라오는 그 목소리야 말로, 세상이 나에게 보내는 사인이라는 것. 최근 1여년간,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 사실에 대한 강한 확신을 다시 가지게 되면서 요즘의 나는 조금이라도 마음이 끌리는 것이 있다면 일단 가보거나 해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때론 아직 사무실에 남아있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조금 일찍 퇴근할 때도, 주말에 엄마와 하루종일 붙어있고 싶어하는 딸을 서운하게 만들 때도 있지만, 결국 나를 위한 게 모두를 위한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꺼이 그것을 하기로 선택한다.
그러니 타자가 해야할 유일한 것은, 자기를 위한 선택을 하는 각자의 존재를 존중하고 지지하는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