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주씨 Dec 21. 2020

불러낼 친구가 없다

숨어버린 친구들을 위하여


 생각해 보니 이상하다. 간단히 놀자고 불러낼 수 있는 친구가 없다. 놀자고 말할 순 있지만 '간단한 요청'이 아니다. 어린 시절엔 집까지 무작정 찾아가도 창문에 대고 이름을 부르면 친구가 나왔었다. 우린 화장을 할 필요가 없었고, 신용카드를 챙길 일도 없었다. 몸 하나와 뛰어다닐 기운만 있으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마음 편히 함께 다닐 수 있는 상대가 없다. 가까운 친구만 만나더라도 커피값으로 약 1만 원은 최소로 들고 나와야 한다. 거기에 학생 때처럼 머리도 안 감고 나온다면 조금 부끄러운 하루가 될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떡진 헤어로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이요." 하고 주문하면서 생글생글 웃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떡진 헤어엔 어쩐지 무표정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소비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는 어른의 길에 들어선 이상, 결국 불러낼 친구는 많지 않은 게 보통이 되었다. 또한 힘겹게 만난 후에도 우리의 이야기에는 더 이상 불러도 나오지 않을 듯한 친구는 빠져버렸다. 약속을 잡고 나와서 같이 밥을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화장을 고치지 않는 친구는 어느새 잊히고 말았다. 마지 언제 우리가 함께였냐는 듯, 아주 자연스럽게 존재마저 머릿속에서 말끔히 닦아낸다.




 이러니 불러낼 친구가 극소수, 아니 평균으로는 소수점 이하가 된다. 한 달에 한 번도 친구를 만나지 않고 지나갈 때도 있으니 과언이 아닐 것이다. 화장을 하고 나가지 않아도, 비싼 커피를 마시지 않아도 함께 있을 친구가 필요하다면 내가 먼저 용기를 내야 할까? 잠깐 놀이터에서 산책하면서 얘기하자고, 근처에 저렴한 카페를 알아냈다고, 이제 그만 만남의 허들을 낮춰두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시험이나 취업을 준비한다면서 잠수를 타버린 친구에게는 "너에겐 휴식이 필요해. 바로 지금."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라테 거품처럼 잔뜩 부풀어 있는 오만한 카푸치노의 가격 따위에 몸을 숨길 필요는 없다. 숨어 있는 친구들이여, 차라리 함께 운동장을 돌며 산책을 하더라도 얼굴 구경만 할 수 있다면 나는 만족할 테니, 불러낼 때 반가이 나와줬으면 한다. 숨바꼭질은 이제 끝났으니 제발 쫌 나와도!

작가의 이전글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