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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Dec 23. 2020

타인의 글씨, 타인의 반점

필체는 필체일 뿐

 



 글씨에 예민한 사람들이 종종 있다. 나의 경우엔 알아보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건성의 반응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적잖이 있어 놀란 적이 있다. 객관적으로 봐도 내 글씨는 예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맞다. 하지만 타인이 내 필체에 대해 왈가왈부하면 기분이 좋을 순 없는 것이다.




 예전에 학생 시절, 집 계약서를 쓴 적이 있는데 집주인이 내 글씨에 대해 혹평을 한 적이 있다. 꽤 솔직한 사람이었는지 내 글씨가 '아주 못 쓰는 글씨'라고 했다. 물론 어릴 때부터 주변에서 어른 글씨 같다는 소리는 많이 듣긴 했다. 그래도 대놓고 악필이라고 지적하다니 무례하게 느껴지고 찜찜했다. 나도 당하지만 있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의 문제점 한 가지를 지적해 주었다. 엉뚱하게도 그는 계약서의 월세 금액에 천의 단위마다 반점을 찍는 게 아니라, 가장 큰 단위의 숫자 옆에만 반점을 찍는 사람이었다. 아무리 해도 그렇지 적어도 그런 사람에게는 악필 지적을 듣고만 있을 순 없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의 허점을 바라보며 허허하고 웃고 말았지만 쓸쓸한 기분은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타인의 글씨를 좋다, 나쁘다 함부로 평가해도 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글씨에는 한 사람의 습관, 나아가 삶의 부분이 담겨 있다고 하더라도 할 말은 있는 법이다. 나는 글씨에 한해서는 눈이 높지 않은 편으로, 글씨는 알아볼 정도만 되면 된다는 관대한 기준을 세워놨다. 글씨가 너무 못나 보이면 그냥 지우고 한 번 더 신경 써서 쓰면 되지 않은가. 글씨가 못났다고 해서 딱히 내가 못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서예도 배워봤고 손글씨도 좋아하는 편이지만 평소에 쓰는 글씨는 내가 편한 정도로 가볍게 휘갈기는 편이다. 작은 것에 에너지를 불필요하게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잘못된 것인가? 이런 성격까지 설명하면서 필체를 변호하기엔 사실 필체 자체의 의미가 내겐 너무 가볍다.




 뒤끝 있는 내가 굳이 한 마디를 덧붙이자면, 정확한 지식이 있고 나서 필체는 조금 나쁜 게 그 반대의 경우보단 낫다고 본다. 그러니 천의 단위마다 반점을 찍지 않는 것보다야 비뚤비뚤한 글씨체가 더 안전하지 않을까. 아주 못 읽을 정도가 아니면 필체를 평가하지 않는 것, 서로의 허물을 들추고 어색한 웃음을 짓지 않는 괜찮은 선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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