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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주씨 Dec 27. 2020

거북이의 이불 덮기

따뜻한 건 알아서




 우리집엔 거북이가 두 마리 살고 있다. 4년 전 수족관에서 입양해온 외래종 반수생 거북이, 리버쿠터. 주로 미국 남부의 따뜻한 지역에 서식하는 종이다. 처음에는 손가락 두 마디쯤으로 작았던 녀석들이 이젠 꽤 커서 손바닥만큼의 아성체가 되었다. 그만큼 우리집에서 추위, 더위 다 버티고 사계절을 네 번이나 타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동안 거북이를 키우면서 참 재밌다고 생각한 점이 많았다. 두 거북이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성격이며 식성, 생김새도 다르고, 이제는 지능마저 다르다고 볼 수 있을 정도다.      




 지능이라고까지 해도 될까 꾀라고 봐야 할까 몰라도 일례를 들어보려 한다. 먼저 거북이 짱구와 공주의 소개부터 해야겠다. 짱구는 동글동글 귀엽지만 머리는 좀 나쁘고 과감한 성격이다. 반면에 공주는 길쭉하게 우아한 상인데 꾀가 있고 겁이 많은 성격이다. 여기서 주인공은 꾀쟁이 공주라고 볼 수 있다. 공주는 탈출에 도가 튼 녀석이다. 어릴 적엔 높은 수조도 타고 나오고 커서는 울타리까지 타고 나왔을 정도다. 탈출하는 데는 여러 번의 시도와 실패가 따르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될 때까지 아주 집요하게 트라이한다. 어머니는 이것을 보시고는 ‘빠삐용처럼 집념이 대단하고 존경할만한 거북이’라고 칭송하셨다. 또 얼마 전에는 탈출 말고도 다른 것에도 머리를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건 바로 '이불 덮기'다.     




 거북이가 이불을 덮는다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물을 것 같다. 우리집은 사실 거북이를 수조에 잘 넣어두지 않는 불량 사육을 하고 있다. 대신에 주변 온도와 먹이 물그릇의 온도를 잘 맞춰주면서 자유롭게 산책하도록 울타리 정도로 대신한다. 그래서 이번 겨울은 실내에서 극세사 이불과 함께 하도록 했다. 사실 진짜 이불은 아니고 다X소에서 파는 파란색의 극세사 걸레로 거북이 전용으로 청소할 때 쓰려고 산 물건이다. 실내에 거북이는 들여놨는데 왠지 추워 보여서 극세사 걸레를 이불처럼 등껍질 위로 살포시 덮어주게 된 것이다. 한 번씩 온수를 마시러 나오면 다시 이불 제자리로 들어가지 못해서 내가 또 덮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공주가 물을 마시는 것을 보고 스윽 지나갔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얘가 이불을 덮고 있는 걸 봤다. 분명 덮어주지 않았는데 스스로 이불 밑을 앞발로 쓱쓱 헤치고 들어간 것 같다. 극세사 이불이 따뜻한 건 아는지, 덮을 때랑 안 덮을 때랑 차이를 느낀 건지 참 용하게도 잘 행동했다. 마치 사람이 겨울에 따뜻한 전기장판 위 이불 속으로 쏙 들어가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일이 있었으니 조그마한 거북이도 머리가 있구나 싶은 생각이 안 들 수 없다. 앞으로도 공주를 꾸준히 관찰해보려고 한다. 이 아이가 또 어떤 재주를 부릴지가 기대된다.  



    

 사실 좀 부끄럽지만 거북이를 집에 들인 초반에는, 거북이의 지능을 조금 과대평가해서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밥 먹어.”, “물 먹어.” 정도를 넘어 강아지 마냥 등짝을 잡고 “기다려.”, 놓아주면서 “이제 먹어.”라든지 보상조차 없는 훈련을 시켰다. 당연히 말을 들을 리가 없었다. 거북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그랬다가 어느 순간엔 포기하고 말았는데, 이번에 이불 덮는 걸 보니 내가 욕심을 부렸다는 걸 알았다. 알아서 머리 쓸 줄 아는 애한테 이래라저래라 했으니. 이러니 사람이나 동물이나 교육열을 너무 태우면 안 된다는 걸 느낀다. 하는 녀석은 스스로 하니까(내 새끼 최고). 앞으로도 거북이 두 마리와 같이 살면서 재미난 광경을 볼 거라 생각하니 미소가 절로 나고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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