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주씨 Jan 18. 2021

도서관에 걸터앉아서

무뎌질 수 없는 마음이 머무는 곳




 도서관은 언제나 쉼터였다. 내 안으로 깊이 파고들었던 중학생 때부터 영영 혼란이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대학생 때까지도 한결같은 공간이었다. 도서관의 고요한 공기에 파묻혀 책을 읽고 있으면 풀리지 않는 인간관계나 오르지 않는 성적에 대한 고민도 잊을 수 있었다. 책과 나, 단 둘만 있는 시간은 너무나 편안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따스한 날에 도서관 창가로 햇빛이 들어오면 그 옆에서 비스듬히 벽에 기대거나 창가 틀에 걸터앉는 것이었다. 한 손엔 책을 들고 조용히 페이지를 넘길 때의 평온함과 풍요로움은 잊을 수가 없다. 한창 정신적 문제로 괴로워할 때도 하루하루를 버틴 건 도서관이 큰 기둥이 되어줬기 때문이다. 손대면 베일 듯이 날카롭게 선 신경이 밤잠을 설치게 해도 도서관 창가에 걸터앉아 있으면 금방 무거운 두통도 가라앉았다. 하나의 신경 안정제 역할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학교를 졸업할 쯤엔 취업이다 뭐다 바빠서 그런 휴식도 취할 시간도 없어졌다. 그러다 보니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라진 여유를 메운 건 강한 자극과 일탈뿐이었다. 끝이 좋지 않았고, 오랜 시간 비릿한 기억을 남기는 날이 이어졌다. 결국엔 난 취업에 실패했고, 또 퇴사를 했고, 다시 도서관 창가에 앉았다. 잊었던 것들이 되살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따뜻한 빛의 감촉과 한계 없는 환상으로 초대하는 글자들이 부드럽게 나를 감싸주었다. 돌아온 몽상가를 반기듯 때마침 창 밖의 가느다란 낙엽 하나가 툭, 떨어지는 걸 봤다.




 결국 제자리에 돌아왔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았다. 글을 읽고 쓰는 것. 이것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 이젠 마음의 힘이 바닥나서 사람과 직면하는 일 자체에 지독한 피로를 느낀다. 고독하지 않고 상처 받지도 않으면서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데, 글을 쓰는 일이 그렇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 작은 욕심을 부리기도 지쳐버린 마음은 그 마저도 대답을 털어버린다.




  아파트 이웃집의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사흘 째 되니 인내심도 바닥을 쳐서 저절로 도서관을 향해 움직인다. 이럴 때도 도서관은 긴급 대피소로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되어주니 고맙다. 집에 앉아 괴로워하지 않고, 얼굴도 모를 이웃집에 열불 내며 수명 단축시키지 말고 그저 도서관으로 직행하면 되는 것이다. 따뜻한 빛과 근사한 책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오늘도 도서관에 걸터앉는다.

작가의 이전글 불현듯 떠오른 음식은 먹어야 좋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