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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Mar 25. 2024

추억의 맛_ 누룽지

오물거리며 씹어봐.

일주일에 한두 번은 누룽지를 만든다. 파는 간식도 맛있지만 가끔은 집에서 팬에 꾹꾹 눌러 만든 누룽지가 더 좋을 때가 있다. 누룽지를 만드는 것도 생각보다 쉽다. 넓은 냄비나 프라이팬에 밥을 넣고 물을 넣어 얇게 펴주고 기다리면 된다. 가스불이 없는 우리 집은 인덕을 사용하기 때문에 타이머를 해 놓고 다른 일을 하면 되니 누룽지가 탈 일은 없다.


밥을 팬에 얇게 펴도 되지만 나는 도톰하게 밥을 올린다. 물을 넣고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불을 낮춘다. 뽀얀 김이 올라오고 다닥거리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누룽지는 끝난 거나 다름없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가량의 인내심만 있으면 고소한 누룽지는 내 입에 들어온다.

내가 얇게 만들지 않고 두껍게 누룽지를 만드는 이유는 얇으면 바스러지지만 두껍게 밥을 깔고 만든 누룽지는 아래는 바삭하고 위는 밥알이 살아있어 씹는 맛이 좋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렇게 만들어진 누룽지에 설탕을 솔솔 뿌려 어린 시절 엄마가 해주던 추억의 맛으로 만들어서 아이드에게 주면 두말없이 잘 먹는다.


코팅이 잘 된 밥솥은 누룽지 만들기가 쉽지 않다. 가끔 큰 마음먹고 무쇠솥에 밥을 짓기도 하지만 누룽지가 잘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룽지를 만드는데도 기술과 인내심이 필요한 것 같다. 만들어놓은 누룽지를 툭 떼어내 한입에 물고 우물거리며 책상 앞으로 와 오독오독 소리를 내며 씹고 있으면 어릴 적 가마솥 앞에 쭈그리고 숟가락으로 긁어먹던 그때가 생각난다.


시골에서는 특별한 간식이 없다. 논과 밭에서 나는 것들이 밥과 간식이 된다. 지금처럼 마트도 없고 시장도 3일이나 5일마다 열리기 때문에 먹고 싶은 것이 있어도 참아야만 했다. 그래서 가마솥에서 나오는 누룽지는 형제들 간에도 경쟁이 치열했다. 가마솥에 있는 누룽지를 긁는 전용 숟가락은 끝이 갈려 둥글지 않고 일자로 닳아 있었다. 조금이라도 늦게 오면 누룽지는 없었기에 밥을 퍼내고 난 뒤에 부엌은 북새통이 되었다. 할머니는 부엌에서 누룽지를 긁어 둥글게 만들어 숨겨놨다가 혼이 나거나 입이 심심해하는 우리에게 주셨다. 간혹 잔치라도 해서 누룽지가 많이 나오면 솥크기 만한 누룽지가 나왔다. 그걸 말리기도 했지만 엄마는 크게 떼어내 설탕을 뿌려 우리 4남매에게 주었다. 내가 아무리 집에서 누룽지를 만들어 설탕을 뿌려도 그때 엄마가 해 주던 그 누룽지 맛은 절대 나지 않는다. 매일 나무로 불을 때서 대식구의 밥을 책임지던 커다란 무쇠솥도 없고 누룽지를 기다리며 장작을 아궁이에 밀어 넣던 형제들도 없다. 아마 대식구가 함께 생활했고 형제가 함께 있어서 더 맛있었던 것 같다. 



가끔 시골에 가도 냄비밥이나 솥을 걸고 밥을 하지 않는다. 코드만 꽂으면 밥이 되는 전기밥솥이 있기 때문에 어린 시절 먹던 무쇠솥에서 갓 긁어낸 누룽지는 이제 없다. 집에서 가끔 그때 추억이 생각나 프라이팬으로 장작이 아닌 인덕션에서 흉내를 낼 뿐이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아토피로 고생을 해서 현미밥을 지어 아몬드나 해바라기씨, 호박씨를 넣고 누룽지팬에 얇게 구워 과자 포장해 어린이집과 유치원에 보냈었다.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는 일이라 몇 시간을 불 앞에 서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현미밥을 해 견과류를 섞고 한 숟가락씩 떠서 둥글게 만든 다음 하나씩 누룽지팬에 넣고 타지 않게 불조절을 하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다. 잠깐 한눈을 팔면 얇은 누룽지는 숯으로 변하고 온 집안에 탄내가 나고 연기가 났었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까지 나는 아이들에게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같은 시판 음식을 사 주지 않았다. 그 흔한 새우깡도 만들어 먹였다. 그 덕인지 두 아들은 이제 아토피가 사라졌다. 


요즘처럼 기운이 없고 입맛이 없을 때는 이렇게 만든 누룽지를 냉동해 놨다가 꺼내 한 컵 넣고 푹 끓여서 먹으면 온몸이 따뜻해진다. 역시 한국사람은 밥심이라고 했던가? 밥도 눌려서 누룽지를 만들어 먹고 또 이걸 삶아서 먹고 있으니 말이다.


어제 만들어 놓은 누룽지는 작은 아이가 통째로 가져가 먹고 있다. 간식으로 혹은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요긴한 듯하다. 여름이 오기 전에 아이들에게 만들어 주었던 현미 누룽지를 다시 만들어볼 참이다. 고소하게 씹히는 과자 같은 누룽지를 다시 한번 먹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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