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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의손 Apr 11. 2024

국수 한 그릇 하실래예?

먹어보자

  대장내시경의 여파인지 식욕이 거의 없어 억지로 연명을 위해 먹고 있는 날이 계속되었다. 저녁은 건너뛰기도 하고 점심만 구내식당에서 조금 먹는 정도였다. 어제는 선거일이라 출근을 하지 않아 밀린 일도 하고 집안일 때문인지 오후 늦게까지 잠을 잘 수 있었다. 갑자기 국수가 먹고 싶어 얼른 준비했다. 면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다이어트를 하면서 혈당을 폭발시키는 밀가루 음식은 자제를 하고 있었다. 먹고 싶은 게 생각나니 몸이 빠르게 움직였다. 마침 집에 딱 한 명 먹을 양의 국수가 있었다. 이것마저 없었다면 사러 나가기 귀찮아 또 끼니를 굶었을지도 모른다. 면을 삶을 물을 올리고 냉장고에 있는 야채를 모두 꺼냈다. 동생이 가져다준 부추와 이름 모를 외국 상추가 조금 있고 양배추, 당근볶음이 있었다. 이 정도면 훌륭한 재료다. 아들이 비빔면에서 면만 빼먹고 남긴 비빔장이 눈에 보였다. 간단하게 물 국수와 비빔국수를 동시에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물이 끓자 부추를 데쳐 간단히 소금, 참기름에 무쳤다. 그리고 면을 넣고 양배추를 채 썰어 물에 씻었다. 이제 고명준비는 끝냈다. 삶은 면을 깨끗이 씻어 그릇에 나눠 담았다. 포트에 물을 끓여 육수를 조금 따랐다. 식구들과 함께 먹을 것 같았으면 육수를 따로 냈겠지만 나 혼자 먹을 거니 시판 육수도 무난하다. 옛날 같았으면 사지도 않았을 시판 육수가 내 주방에 있다니 천연재료로 모든 것을 만들어 사용하던 나도 융통성이 좀 생긴 것도 같다.



 사실 나는 한마디로 국수에 환장하는 사람이다. 임신했을 때도 국수를 삶아 양념도 없이 면만 먹으며 버텼었다. 그래서 그런지 내 아이들은 국수를 싫어한다. 혼자서 국수 반다 발은 거뜬히 먹었고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오는 나정이 엄마처럼 국수를 많이 삶았다. 그렇게 먹던 사람이 단칼에 국수를 끊었으니 나도 참 독한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물 국수와 비빔국수를 만들어 느긋하게 TV앞에 앉으니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뿌듯하다. 살짝 익은 김치와 함께 먹으니 입 안 가득 행복감이 밀려왔다. 행복이 별거 없다. 먹고 입가에 웃음이 돌면 그게 행복이다. 두어 젓가락 먹으니 배가 찬다. 결국 비빔국수는 남기고 물 국수만 그릇을 비웠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쓰고 수정하고를 반복했다. 기한이 있는 글이라 마음도 급했다. 일주일 중 쉬는 날이 하루 있으니 몸도 마음도 여유롭다.


 

늦게 먹은 점심이 소화가 전혀 되지 않아 새벽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위가 줄어 음식을 조금만 먹어도 배가 고프지 않다. 내시경 때 본 비쩍 마른 나의 위장이 생각나 억지로 음식을 먹지만 예전처럼 양이 많지는 않아 신경이 쓰인다.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면 좋지만 요즘은 안 먹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생활한다.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지 국수는 아무리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은 음식이었다. 또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은 음식이기도 했다. 지금은 먹을거리가 넘쳐나고 어찌 보면 하찮은 음식같이 느껴지지만 나의 최애 음식인 이 국수를 너무 오랜만에 먹어서 뿌듯하고 행복하다. 먹고 싶은 거 먹고사는 게 이렇게 힘들다니 반성도 해본다. 당분간 국수 생각은 나지 않을 것 같다. 오랜만에 느긋하게 행복한 시간을 즐긴 것 같다.




오늘 간단하지만 맛있는 국수 한 그릇 하실래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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